티스토리 뷰

하늘이야기

참된 성탄절의 회복

위어조자(謂語助者) 2018.04.25 22:36

 이제 며칠 후면 올해도 성탄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날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많은 민족들이 기뻐하는 날이며 축제분위기로 휩싸이게 됩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해를 거듭할수록 변질되어 가는 성탄절이 다소 불안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조금 유심히 주변을 관찰해보면 분명 성탄절은 예수님께서 오신 날임에도 불구하고 거리에는 예수님 모습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청교도들에 의해 세워지고 가장 먼저 제정된 국경일이 추수감사절이라고 하는 미국에서는 성탄절 인사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홀리데이”가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휘황찬란하게 거리를 수놓는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나 화려한 장식물에서도 예수님은 안 계십니다.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거리를 메우고, 무리들을 헤치며 간신히 음식점으로 들어가 보면 평소보다 몇 배나 가격이 뛰어 있는 메뉴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번화가와 향락가가 소란해지고 번쩍번쩍 빛나는 성탄절은 이제 산타클로스와 루돌프가 선물보따리를 지고 오는 날이며 연인들과 젊은이들이 세상 속에서 즐기는 날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올해에는 크리스마스 트리 전구를 10월 15일부터 켜기 시작했다는 일본. 그 곳에 사는 지인 중 하나는 성탄절 날 이웃에 사는 일본인에게 “크리스마스인데 교회에 나오세요.” 라고 하자 “교회에서도 크리스마스 행사를 하나요?” 라고 반문했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불상이나 염주를 판매하는 사찰용품점에서도 크리스마스 특별세일을 하기도 한다는군요. 얼마 전 일본을 찾았을 때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 중 1%도 안 되는데도 거리에서 여기저기에 제법 교회가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그 동안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열매를 거두는구나 하며 매우 감명 깊게 바라보았으나 알고 보니 그와 같은 교회 대부분은 “결혼식만 올리는 교회”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도 “결혼식은 교회에서 올리고 싶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지만, 그들에게 교회는 결혼식장이라는 개념 그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텔레비전 등을 보니 간혹 “결혼식은 진짜 교회인 ○○ 교회에서” 라는 광고가 나오는 것을 보고 참으로 암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을 우리도 이제 웃고만 있을 수는 없게 된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은 도대체 왜 일어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귀신의 왕(마 9:34), 악한 자(마 13:19), 공중권세 잡은 자(엡 2:2), 거짓의 아비(요 8:44) 등으로 불리는 사탄은 창세 이래 에덴동산에서 시작하여 구약을 넘어 지금 현재까지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위대한 언약을 맺기 위해 아브라함(당시는 아브람)에게 명을 내려 재단을 쌓아놓게 하자 이를 막으려고 솔개가 먼저 내려와 아브라함이 이를 쫓았다고 하며(창 15:11). 다니엘서에 따르면 기도 응답을 위해 천사가 가는 길을 사탄(바사국군)이 21일 동안이나 막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단 10:13). 크고 작은 하나님의 역사를 끝까지 훼방하는 사탄이 막아야 했던 가장 큰 사건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고 천국이 선포되며 보혈을 흘려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는 역사가 일어나면 그야말로 사탄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일이 되고 말기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았어야 했을 것입니다. 구약에서 최후의 선지자 말라기의 예언이 끝나고 예수님이 태어나시기까지 약 400년이 걸렸을 때 사탄은 자신들의 방해공작이 성공하고 있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일정대로 정확히 맞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오셨을 뿐만 아니라 죄 많은 우리들을 위해 천금보다 귀한 보혈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흘리시고 화목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짐으로 말미암아 그 때까지는 꿈도 꾸지 못했던 구원을 향한 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성경에서 예수님이 빠진다면 이는 그야말로 두껍기만 한 휴지조각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성경은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라고 하셨으며(요 5:46), 우리에게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요 16:6). 사도 바울은 예수님 외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고 고백하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하나님 나라란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찬송가 495장)”, 즉 장소를 불문하고 어느 곳이든지 주 예수님을 모신 곳 바로 그 곳이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예수님 탄생”이라는 사실이 사라짐과 동시에 물거품이 됩니다. 그렇다면 사탄은 어떤 전술을 택했을까요.

 그렇습니다. 달력에서, 사람들 기억 속에서 예수님을 지워버리는 작전을 펴기 시작합니다. 성탄절 속에서도 예수님을 빼어내어 크리스마스란 그저 기독교에서 기념하는 하나의 명절이고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가져다 주며 젊은이들이 먹고 마시며 즐기는 잔칫날로 변질시켜버리는 것입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정확히 성탄절 바로 한 달 전에 마귀들이 설치는 날인 할로윈이라는 것을 통하여 성탄절이 오기 전에 모든 것을 온통 마귀판으로 만들어놓으려는 것입니다.

 만약 부모님 생신 날 집에서 맛있는 음식들을 차려놓고 가족과 이웃, 친인척들이 모여 즐겁게 지내는데 막상 당사자인 부모님이 식사는 하셨는지, 함께 계신지, 어느 방에서 주무시고 계신지, 나가셨는지 어땠는지조차 무관심했다면 아무리 부모님 생신을 축하하려 모였다고는 하나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일부 신학자들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은 12월이 아니라 다른 날이며 12월 25일 을 기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알고 보니 12월이 아니라 한 여름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고 한들 우리가 지금 성탄절을 기념하며 감사 드리는 예배가 어찌 무의미할 수 있을까요. 그 정확한 날짜가 언제인가를 불문하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사실이며 그 은혜에 감사하고 찬양을 드린다면 우리는 성탄절을 거룩하게 주님께 바쳤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의 모습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기를 원했을까요.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눅 10:24)”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구약에서 아무리 위대하고 능력이 많았던 왕이나 선자자라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으나 우리는 마음껏 주님의 말씀을 읽을 수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제 직장 동료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웃었다는 기록이 없다고 하네요.”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을 살펴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롬 15:3)”라고 하였으며, “야훼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야훼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사 53:10)”,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 2:6~7)”,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자신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고 십자가에 달린 후 부활하기 위해 오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모든 앞날을 알고 계셨던 주님, 그리고 마지막 날 밤 감람산에서 기도하실 때는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던 주님께서는 어쩌면 이 땅에 계실 동안 웃을 기회가 없으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셨으며(요 16: 33),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징계를 받으시고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게 되었으므로(사 53:5),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웃도록 만들어드릴 차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 자신만을 바라보아도 여전히 예수님을 즐겁게 해드릴 때보다 울게 만들 때가 많아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이제 며칠 후에는 또다시 우리에게 성탄절이 찾아옵니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 중 하나는 바로 성탄절에 예수님을 회복시켜드리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주님의 탄생이 가져다 주는 기쁨을 교회 내에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니라 세상 밖으로 전파하는 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는 지상명령을 이루는 첫 단추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하늘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장 단단한 방패를 깨기 위하여  (0) 2018.04.25
빛으로 오신 예수님  (0) 2018.04.25
참된 성탄절의 회복  (0) 2018.04.25
욥기가 주는 위로  (0) 2018.04.25
나무늘보 ‘마츠’  (0) 2018.04.25
이 땅의 마지막 과학자  (0) 2018.04.22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