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야기

욥기가 주는 위로

홍성필 2018. 4. 25.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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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욥기를 접할 때 많은 사람들은 매우 의아하게 여깁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탄이 하는 참소를 듣고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욥에게 사탄으로 하여금 극심한 고난을 가하도록 하십니다. 그 고난은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쳐 조금씩 오는 것이 아니라 재난 소식을 알리는 사자의 말을 듣고 정신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그들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도 계속하여 상상을 초월한 환난 소식을 전해옵니다. 그 결과 욥은 엄청난 재산과 자녀들을 눈깜짝할 사이에 모두 잃고 맙니다. 그것도 모자라 사탄의 참소는 계속 됩니다. 욥의 뼈와 살을 치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을 할 것이라는 참소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탄이 치도록 허락하시고 결국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났으며 깨진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예전과 달리 비참하였으면 그를 위로하기 위해 멀리서 온 세 친구들 (엘리바스, 빌닷, 소발) 조차 욥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변한 몰골을 보고는 입을 열 수가 없어 밤낮 7일 동안이나 함께 앉았으면서도 차마 말 한마디 건넬 수가 없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욥기 2:13)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 문제가 해결되며 질병이 고침을 받고 모든 길이 평탄하게 된다고 우리는 믿으며,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소망도 가져보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잠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잠 24:19)

 이 말씀을 뒤집어보면 세상 눈으로 볼 때 잠시 동안은 악인이 형통하게 보일 경우도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였다면 징계를 받아 마땅하겠으나 욥의 경우는 죄를 저지르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충실히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웬만한 악인조차 받지 않을 그와 같은 처참한 고통을 왜 허락하셨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구약에서 만이 아니라 신약에 보면 그 사람에게 죄가 없더라도 고난이나 죽음이 닥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한복음 9:1~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요한복음 11:3~4)

 욥에게 재앙이 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들이 찾아옵니다만, 분명 그들은 위로하러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대화하면서 상황은 점차 논쟁을 벌이게 되더니 어느새 욥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정죄하기에 이릅니다. 이를 두고 독일의 신학자 벵겔(Johann Bengel)은 “욥기의 경우야 말로 훌륭한 위로자가 어떻게 정죄자로 변신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모델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온전하고 정직하며 믿음이 좋았던 욥에게 닥친 고난은 극심한 것이었으나 기원전에 쓰여진 욥기로 말미암아 그 동안 주님 안에서 고통을 받았던 이들이 위로를 받은 사람 수를 생각하면 실로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때때로 아무런 잘못 없이 근심과 질병과 어려움이 찾아올 때가 있다고 하여도 불필요한 논쟁 속에서 해답을 찾을 수는 없으며 오히려 그와 같은 일이 있었다면 서로 화해하고 회개하여 참된 위로자이신 하나님을 의지할 때 비로소 욥기에서와 같이 (욥기 42:10~) 주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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