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 목사 설교

[설교동영상/본문] 제342회 유익한 열매

홍성필 2022. 6. 7.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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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2회 유익한 열매
2022년 5월 29일 설교 - 로마서 강해 85

홍성필 목사
www.kirin.kr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9장 29절
“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9章29節
“29.また、イザヤがあらかじめ告げたとおりです。「もしも、万軍の主が、私たちに子孫を残されなかったなら、私たちもソドムのようになり、ゴモラと同じようになっていたであ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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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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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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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85번째 시간으로서 “유익한 열매” 有益なる実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사야 1장 9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사야 1장 9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もしも、万軍の主が私たちに生き残りの者をわずかでも残されなかったなら、私たちもソドムのようになり、ゴモラと同じになっていたであろう。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하실 때에, 크게 나누어 두 가지 유형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조금 남겨 두는 경우와 또 하나는 완전히 멸해버리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는 어땠습니까. 비록 당시 소돔에 살고 있던 롯과 그의 가족은 구원을 받았습니다만, 사실 롯은 본래 소돔 주민이 아니었지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는 조카 롯을 함께 데리고 나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지 롯을 부르시지는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일이 잘 안 풀립니다. 아브라함 네 가축들과 롯의 가축들이 다툽니다. 분쟁이 생깁니다. 그래서 창세기 13장에 의하면 그들이 서로 헤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롯이 소돔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소돔이 멸망함을 당할 때, 그는 구원을 받게 됩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그는 의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롯이 구원을 받은 이유를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창세기 19장 29절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神が低地の町々を滅ぼしたとき、神はアブラハムを覚えておられた。それで、ロトが住んでいた町々を滅ぼしたとき、神はロトをその滅びの中から逃れるようにされた。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는 아브라함 덕분에 구원 받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의 원주민인 경우는 어떻습니까.

성경에 보시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는 모습을 단 두 줄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9장 24절~25절
“24.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25.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そのとき、主は硫黄と火を、天から、主のもとからソドムとゴモラの上に降らせられた。
こうして主は、これらの町々と低地全体と、その町々の全住民と、その地の植物を滅ぼされた。

예전에 어떤 방송에서 보니까 고고학자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보면, 지금은 그들이 이루어 놓았던 그 어떠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고 해요. 정말 영상을 보니까 그냥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에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지역 땅바닥에 보면 아직도 유황성분이 있다는 것이죠. 보통 유황성분이 발견되는 지역을 보면 그 땅속 깊은 곳에서도 유황이 나와야 하는데, 거기는 정작 땅밑에는 유황성분이 없는데도 그 표면에만 있다는 것이에요.

이는 대단히 부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는 무엇을 가리키냐 하면, 그 지역은 본래 전혀 유황성분이 없는 곳이었지만,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당할 때, 하늘에서 유황과 불이 쏟아졌기 때문에 아직도 표면에만 유황성분이 남아 있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기도 하고 그리고 무서운 일이지요. 그러나 그보다 앞서 성경이라고 하는 기록은 거짓이나 과장이 없는, 진정한 사실만을 기록한 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끔찍한 심판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원주민 출신인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남김 없이 모두가 그 유황과 불로 인한 심판 때에 멸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9장 29절
“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また、イザヤがあらかじめ告げたとおりです。「もしも、万軍の主が、私たちに子孫を残されなかったなら、私たちもソドムのようになり、ゴモラと同じようになっていたであろう。」

자, 여기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멸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요, 이처럼 살아서 예배도 드리고 찬양도 드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멸하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 착해서? 우리 믿음이 정말 좋아서일까요?

우리가 이미 공부한 부분이지만 로마서 3장 25절을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3장 25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神はこの方を、信仰によって受けるべき、血による宥めのささげ物として公に示されました。ご自分の義を明らかにされるためです。神は忍耐をもって、これまで犯されてきた罪を見逃してこられたのです。

여기서 “간과하다”라는 말씀은 다른 번역에 의하면 제가 생각하기에 <죄를 눈감아 주셨다>는 표현이 제일 가까운 것 같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은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를 눈감아 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어서 화목제물로 세워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의 죄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소돔과 고모라처럼 심판을 받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야 마땅한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채찍을 맞으시고 징계를 받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회복되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눈감아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전에 저는 길을 가다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서울이나 동경 같은 대도시 같은 경우를 보면 대부분 도시가스를 사용하지만, 군마현 같은 경우를 보면 아직 LP가스를 사용하는 곳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네를 걷다 보면 여기저기 가스통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제가 이렇게 좀 덩치가 크고 그렇기는 합니다만, 사실 좀 겁이 많거든요. 그래서 그런 가스 통 옆을 지나간다거나, 아니면 차를 운전하다 보면 그런 가스 통을 여러 개 실은 트럭도 있잖아요? 그러면 저도 모르게 좀 떨어져서 가기도 합니다.

그걸 보면서 든 생각이 이래요. 좀 무서운 말씀일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 가시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참 쉽겠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내가 그런 가스 통 옆을 지나가고 있을 때 뻥~ 하면 그냥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만이 아니라 뉴스 같은 것을 보더라도, 멀쩡히 대낮에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차가 돌진해서 대형참사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운전하다 보면, 다행히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하마터면 사고가 일어날 뻔한 일도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정말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래,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가려고 하셨다면 언제든지 한순간에 데려가실 수도 있었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다행히 아직도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제가 먼저 간 사람들보다 착해서요? 믿음이 좋아서요?

그렇다고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벌을 받아서 그렇다는 말씀은 절대로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가게 되어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마치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우리가 아직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우연이 아니라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왜 아직도 여기서 살아가게 하실까요.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시는 기준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열매’인 것이지요.

이사야 5장 2절~6절
“2.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3.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4.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5.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6.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彼はそこを掘り起こして、石を除き、そこに良いぶどうを植え、その中にやぐらを立て、その中にぶどうの踏み場まで掘り、ぶどうがなるのを心待ちにしていた。ところが、酸いぶどうができてしまった。
今、エルサレムの住民とユダの人よ、さあ、わたしとわがぶどう畑との間をさばけ。
わがぶどう畑になすべきことで、何かわたしがしなかったことがあるか。なぜ、ぶどうがなるのを心待ちにしていたのに、酸いぶどうができたのか。
さあ、今度はわたしがあなたがたに知らせよう。わたしが、わがぶどう畑に対してすることを。わたしはその垣を取り払い、荒れすたれるに任せ、その石垣を崩して、踏みつけられるままにする。
わたしはこれを滅びるままにしておく。枝は下ろされず、草は刈られず、茨やおどろが生い茂る。わたしは雨雲に命じて、この上に雨を降らせないようにする。」

하나님께서는 참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여러가지 일을 얼마나 열심히 일하셨습니까. 그리고 극상품 포도, 그냥 포도가 아니에요. 비싼 포도가 뭐죠? 거봉이나 샤인머스켓 같은 포도보다도 훨씬 더 좋은 포도를 심었다고 합니다.

그게 누구냐 하면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말씀을 들으면, 에이 내가 무슨 극상품 포도야……라고 혹시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니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전에 제 대학 동기가 생각이 납니다. 그 친구는 법대는 아니고 의대였는데, 그 친구를 처음 만난 건 대학 1학년 때였는데, 그 친구는 벌써 딱 보면 의사처럼 생겼어요. 정말 참 똑똑하고 착한 친구였는데,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현재 한국에서 제일 큰 병원에서 외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 친구가 옛날에 했던 말이 있는데,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이제 의대에서 공부하는 과정에 보면 해부실습이 있다고 해요. 연구용으로 기증을 받거나 아니면 임자가 없는 시신을 통해서 의대생들이 실제로 해부실습을 한다고 하는데, 이 친구가 그걸 몇 번하고 느낀 것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뭐냐 하면, 실제로 해부 실습을 하다 보면 정말로 인체가 너무나도 정교하다는 거예요.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냥 대충대충 만든 것 같지가 않다는 거예요. 이 눈동자 하나만 보더라도, 실제로 해부를 해보면 정말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정교하고 기가 막히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대충대충 만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별볼일 없어 보이십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극상품 포도를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극상품 포도가 자라날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난 다음에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어요. 그게 뭐냐 하면, 극상품 포도 열매가 맺어져야 하는데, 뭐 가 맺어졌대요? 그렇습니다. 들포도, 아무런 쓸모가 없는 열매가 맺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신다고 합니까. 그렇습니다. 철저하게 그 자리를 황폐하게 만들어버리겠다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보십시오. 애초에 롯이 소돔으로 간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창세기 13장 10절~11절
“10.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ロトが目を上げてヨルダンの低地全体を見渡すと、主がソドムとゴモラを滅ぼされる前であったので、その地はツォアルに至るまで、主の園のように、またエジプトの地のように、どこもよく潤っていた。
ロトは、自分のためにヨルダンの低地全体を選んだ。そしてロトは東へ移動した。こうして彼らは互いに別れた。

사실 하나님께서 맨 처음에 아브라함을 인도하신 가나안 땅은 척박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그렇고 이삭도 그렇고 어디를 가면 반드시 우물을 파야 했습니다. 그래야 물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반면에 소돔과 고모라는 어땠습니까. 거기는 힘들게 우물을 필 필요가 없어요.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이미 물이 넉넉해서 그야말로 여호와의 동산 같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땅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죄악으로 물들었습니다.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좋은 땅에 좋은 씨를 심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타락해서 전혀 쓸모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황폐하게, 아주 흔적도 없이 만들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좋은 포도를 맺을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4절~5절
“4.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わたしにとどまりなさい。わたしもあなたがたの中にとどまります。枝がぶどうの木にとどまっていなければ、自分では実を結ぶことができないのと同じように、あなたがたもわたしにとどまっていなければ、実を結ぶことはできません。
わたしはぶどうの木、あなたがたは枝です。人がわたしにとどまり、わたしもその人にとどまっているなら、その人は多くの実を結びます。わたしを離れては、あなたがたは何もす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

요한복음 15장 8절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あなたがたが多くの実を結び、わたしの弟子となることによって、わたしの父は栄光をお受けになります。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예수님 없는 노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다음에 나와야 할 말은 무엇이겠습니까.

“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이라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예수님과 붙어 있음으로 말미암아 좋은 열매를 맺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라고 하면 여러분께서는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아멘” 하시겠지요? 그렇게 해서 말씀을 끝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교회에서도 그렇게 말씀을 전하시겠지요.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문제를 내드릴까 합니다. 예수님에 붙어 있기만 하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찝찝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 앞에 있는 구절입니다.


요한복음 15장 2절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わたしの枝で実を結ばないものはすべて、父がそれを取り除き、実を結ぶものはすべて、もっと多く実を結ぶように、刈り込みをなさいます。

이는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께 붙어 있는다고 해서 모두가 다 열매를 맺지 않을 수 도 있다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서 교회에 다니기만 한다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감사나 찬양 없이 그저 교회만 왔다 갔다 한다면 이는 허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없는 예배만이 아니라, 마음이 없는 예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 같으십니까.


이사야 1장 11절~13절
“11.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あなたがたの多くのいけにえは、わたしにとって何になろう。──主は言われる──わたしは、雄羊の全焼のささげ物や、肥えた家畜の脂肪に飽きた。雄牛、子羊、雄やぎの血も喜ばない。
あなたがたは、わたしに会いに出て来るが、だれが、わたしの庭を踏みつけよとあなたがたに求めたのか。
もう、むなしいささげ物を携えて来るな。香の煙、それはわたしの忌み嫌うもの。新月の祭り、安息日、会合の召集──わたしは、不義と、きよめの集会に耐えられない。

우리의 마음이 없는 예배나 예물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예물은 가져오지도 말고, 그런 예배는 드리지도 말라. 마당만 더럽힐 뿐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한 번 드리는 예배라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서, 아무리 작은 예물이라 하더라도 간절한 감사의 마음으로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하겠지요. 그렇다면 과연 열매란 무엇일까요.

열매에 대한 설교를 한다면 보통 갈라디아서 5장 22절~23절 말씀을 많이 인용을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23절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しかし、御霊の実は、愛、喜び、平安、寛容、親切、善意、誠実、
柔和、自制です。このようなものに反対する律法はありません。

이는 이른바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라고 하는데, 사실 이 아홉가지를 우리가 쉽게 외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이를 다 외운다고 해서 꼭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은 조금 더 쉽게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나무에게 있어서 열매란 무엇일까요. 기본적으로 나무 자신이 배부르기 위해서 열매를 맺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해서 열매를 맺느냐 하면 그 열매를 따먹는 사람이나 다른 생물들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열매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유익함을 주는 것이 열매요, 우리 이웃에게 유익함을 주는 것이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보기 좋은 열매라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한테만 유익하고 하나님이나 이웃에게 유익하지 않다면, 이는 주님 안에서 값진 열매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유익이라 하더라도 그 마음에 주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있고, 그 유익함이 우리 주님께 유익하고 우리 이웃에 유익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값진 열매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께서 심으신 귀한 값진 극상품 포도라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값진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주님께 유익하고 우리 이웃에게 유익한 진정으로 값진 극상품 포도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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