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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세태와 풍자의 집약 - 센류(川柳)

위어조자(謂語助者) 2018.05.17 15:47


센류(川柳)라고 하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하이쿠(俳句)와 그 형태가 비슷하여, 역시 5 7 5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큰 차이점이 있는데, 이는 하이쿠에서 필수적인 요건인 '계어(季語)'의 삽입이라는 제한이 없습니다. 따라서 계어가 들어가지 않고 단지 5 7 5라는 형태만 갖춘 것을 센류(川柳)라고 합니다. 

하이쿠, 특히 탄카에서 보듯이 계어, 그리고 '마쿠라 코토바(枕語)' 같은 제약이 있는 이유는 보다 문학적이고 아름다운 시를 만들기 위한 것이겠으나, 반대로 말하자면 그 만큼 귀족적이고 서민층과는 거리가 있는 작품들입니다. 따라서 햐쿠닌 잇슈(百人一首)에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곳에서도 남아있는 탄카나 하이쿠의 작품은 모두가 귀족이나 이른바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것밖에는 없습니다. 

반면 특별한 제약이 없는 '센류'는 대부분 서민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에, 풍자나 그 시대의 생활상을 그린 것들이 많습니다. 

예컨대 이런 센류가 있습니다. 

'本降(ほんぶ)りに なって出(で)ていく 雨宿(あまやど)り' 

本降り : 본격적으로 비가 내릴 때 

雨宿り : 비를 피해 처마 밑 같은 곳으로 잠깐 비를 피하는 일, 또는 그 사람. 

이 내용은 비가 본격적으로 오기 시작했을 때 비를 피하던 사람이 나간다는 뜻으로, 가랑비가 왔을 때 처마 밑에 잠깐 들어가 조금 개이면 나가려고 했는데, 기다리면 기다릴 수록 비가 점점 더 세차게 내려, 하는 수 없이 나갈 때는 결국 가장 비가 본격적으로 내릴 때라는, 사실감과 아이러닉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도 있습니다. 

1) 孝行(こうこう)の したい時分(じぶん)に 親(おや)はなし  

2) 寢(ね)ていても 團扇(うちわ)のうごく 親(おや)ごころ  

1번은 우리들 사이에도 가끔 나오는 말이기도 하지요. 효도를 하고 싶을 때 부모는 없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효(孝)에 대한 말입니다. 

2번은 조금 해설이 필요할 것 같네요. 뜻을 그대로 옮겨쓰면 '잠이 들어도 부채가 움직이는 부모님 마음'이 됩니다. 더운 여름날 밤, 지금처럼 선풍기나 에어콘이 없을 때 자식이 잠이 들면 곁에서 어머니가 부채질을 해 줍니다. 하지만 밤이라서 어머니도 피곤해 잠이 들고 말지만, 그래도 자식을 위해 부채 만은 계속 움직인다는,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노래한 것입니다. 

한편, 그 시대의 풍자를 노래한 센류를 하나 살펴보도록 합니다. 

泣(な)き泣(な)きも よい方(ほう)を取る 形見分(かたみわ)け 

形見(かたみ:카타미) 라고 하는 것은 죽은 사람이 생전에 쓰던 물건들 (유류품(遺留品))을 말하며, 形見分け(카타미 와케)란 유족들이 고인의 물건이나 옷을 서로 간직하기 위해 각자 유류품을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센류를 해석하면 '울고불고 하면서도 유류품을 나누어가질 때에는 비싼 물건부터 먼저 가진다'는 것을 풍자한 노래입니다. 

이러한 센류는 것은 대략 에도시대(江戶時代) 중반부터 시작하였으며, 당시에는 前句付(まえくづけ) 라는 백일장 같은 행사가 있어, 먼저 출제자가 마에쿠(前句)라고 하는, 7 7을 제시합니다. 사실 명칭은 '마에쿠'이지만, 탄카에서 보듯 5 7 5 뒤에 붙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제시되는 7 7로 된 '마에쿠'는 같은 문장을 (거의) 되풀이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제시된 '마에쿠'를 보고 응모자들이 선정료(入花料:입화료)와 함께 자신이 생각한 5 7 5로 구성이 되는 츠케쿠(付句)를 응모합니다. 그 중 가장 '마에쿠'와 잘 어울리고 작품성이 높은 것을 시상하는 것이었으며, 시상내용은 상금이나 고급 도자기였는데 상당히 고가였다고 합니다. 

그럼 당시 입선작 중 하나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제시된 '마에쿠'는 이것이었습니다. 

'切(き)りたくもあり 切(き)りたくもなし' 

(잘라버리기도 싶고, 잘라버리기도 싫고) 

이 마에쿠 앞에 해당하는 츠케쿠 5 7 5를 응모하는 것인데, 선정된 작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泥棒(どろぼう)を 捕(と)らえてみれば 我(わ)が子(こ)なり 

(도둑놈을 잡아보았더니 내 자식이더라) 

즉, 이 둘을 합치면 '泥棒を 捕らえてみれば 我が子なり 切りたくもあり 切りたくもなし' 라는 하나의 시가 되며, 이를 합쳐서 해석하면 '도둑놈을 잡아보았더니 내 자식이더라, (인연을) 끊고도 싶고 끊기도 싫고(끊을 수도 없고)' 라는 식이 되는 것입니다. 

선정위원 중 유명했던 사람이 바로 柄井川柳(からい せんりゅう(1718~1790):본명 柄井 八右衛門(からい はちえもん))였다고 합니다. 

이런 백일장이 회를 거듭하면서, 굳이 '마에쿠'가 없이 '츠케쿠' 만으로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고 하여 카라이 센류와 몇몇이 함께 모여 1765년 誹風柳多留(はいふう やなぎだる)를 출간하게 됩니다. 

그 무렵부터 이러한 시를 카라이 센류의 이름에서 따서 '센류'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카라이 센류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 책은 시리즈로 꽤 오랜동안 나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표어나 구호 같은 것을 예컨대 '내가 아낀 / 종이 한 장 / 자원 절약 / 나라 발전' 이라는 식으로 4자씩 구성이 되는데, 일본은 센류의 영향 때문인지 대략 5 7 5로 구성되는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狹(せま)い日本(にっぽん) そんなに忙(いそ)いで どこへ行(い)く'라는 교통표어가 있는데, 뜻은 '좁은 일본, 그렇게 서둘러 어딜 가는가' 라는 의미로서 과속금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에게는 여전히 센류에 대한 인기도 많아, 일부 일간지에는 '時事川柳(시사 센류)'라고 하여 정치나 사회를 풍자한 투고 코너도 있고, 홈페이지 중에서도 이에 대한 투고나 강좌도 많이 개설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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