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 목사 설교

[설교동영상/본문] 제329회 넉넉히 이기는 믿음

홍성필 2022. 3. 2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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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9회 넉넉히 이기는 믿음
2022년 2월 27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kirin.kr
kirin@kirin.kr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5절~37절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35節~37節
“35.だれが、私たちをキリストの愛から引き離すのですか。苦難ですか、苦悩ですか、迫害ですか、飢えですか、裸ですか、危険ですか、剣ですか。
36.こう書かれています。「あなたのために、私たちは休みなく殺され、屠られる羊と見なされています。」
37.しかし、これらすべてにおいても、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た方によって、私たちは圧倒的な勝利者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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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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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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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74번째 시간으로서 “넉넉히 이기는 믿음” 圧倒的に勝利する信仰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살펴볼 내용은 세 구절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이를 차례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35절 말씀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だれが、私たちをキリストの愛から引き離すのですか。苦難ですか、苦悩ですか、迫害ですか、飢えですか、裸ですか、危険ですか、剣ですか。

여기서 바울은 질문을 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있겠는가. 사실 이 질문은 8장 마지막인 39절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누가 무엇이겠는가. A, B, C이겠는가…… 라는 문장 구성은, 쉽게 말해서 A도 B도 C도 아니다……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있겠는가.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겠는가 하는 말씀은, 다시 말하자면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위험이나 적신이나 칼이라 하더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없다고 한 말씀들을 우선 간략하게 살펴보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기에는 일곱 가지가 등장합니다.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그리고 칼입니다.

먼저 환난이라고 하는 것은 외부적인 어려움이라고 하겠습니다. 2022년 2월 현재까지도 전세계를 힘들게 하고 있는 코로나도 그렇습니다.

코로나 초기에는 독감처럼 금새 사라질 알았는데, 조금 있으니까 마스크조차 구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평소라면 하더라도 마스크 30장을 100엔이면 살 수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는 돈을 주고서도 살 수 없게 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도무지 줄지 않아요. 좀 줄어가나 하면 다시 늘어가고, 줄어드나 하면 또다시 늘어나는 일의 반복입니다. 음식업, 관광업을 비롯해서 많은 곳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몇 대 째 걸쳐 내려온 사업장들이 문을 닫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이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전면전이 벌어졌습니다. 현지 기자들은 말합니다. 바로 전날까지도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볐던 지하철역이 하루 사이에 피난민으로 넘친다고 합니다. 어제까지 함께 식사를 했던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전 예고도 없이 총알이 날라오고 폭탄이 터집니다.

이와 같은 환난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칩니다.

성경 욥기에 보면 이와 같은 재앙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합니다.


욥기 1장 13절~19절
“13.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14.사환이 욥에게 와서 아뢰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15.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6.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7.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8.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19.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ある日、彼の息子、娘たちが、一番上の兄の家で食べたりぶどう酒を飲んだりしていたとき、
一人の使者がヨブのところにやって来て言った。「牛が耕し、そのそばでろばが草を食べていると、
シェバ人が襲いかかってこれを奪い取り、若い者たちを剣の刃で打ち殺しました。私一人だけが逃れて、あなたに知らせに参りました。」
この者がまだ話している間に、もう一人が来て言った。「神の火が天から下って、羊と若い者たちを焼き滅ぼしました。私一人だけが逃れて、あなたに知らせに参りました。」
この者がまだ話している間に、もう一人が来て言った。「カルデア人が三組になって、らくだを襲い、これを奪い取り、若い者たちを剣の刃で打ち殺しました。私一人だけが逃れて、あなたに知らせに参りました。」
この者がまだ話している間に、もう一人が来て言った。「あなたのご子息やお嬢さんたちは、一番上のお兄さんの家で食べたりぶどう酒を飲んだりしておられました。
そこへ荒野の方から大風が吹いて来て、家の四隅を打ち、それがお若い方々の上に倒れたので、皆様亡くなられました。私一人だけが逃れて、あなたに知らせに参りました。」


여기에 보면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この者がまだ話している間に)”가 세 번이나 나옵니다. 멀쩡히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쳐들어오고,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큰 바람이 불어와서 가족과 가축들이 죽고 집이 무너집니다. 정말로 숨쉴 겨를조차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욥이 잘못을 저질렀나요? 욥이 뭔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이와 같은 환난을 당하는 것인가요?

욥기 1장 1절에는 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욥기 1장 1절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ウツの地に、その名をヨブという人がいた。この人は誠実で直ぐな心を持ち、神を恐れて悪から遠ざかっていた。

그는 전혀 잘못이 없었습니다.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욥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환난을 당할 수 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곤고입니다. 환난은 외부적인 요인이 강하다고 한다면, 곤고는 고뇌나 번민이라고 하는 것은 내부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고뇌나 번민의 원인이 환난이나 고난 때문에 일어날 수도 있겠습니다만, 꼭 그렇다고 만은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울증 같은 경우는 환난이나 고난이 없더라도 일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가끔 보면 부유층이나 돈 많은 연예인들이 도박이나 마약에 빠지는 경우를 뉴스를 통해서 보게 됩니다. 돈 없는 사람들은 맨날 하는 고민이 돈 걱정인데, 아니, 돈도 많고 시간도 많고 나이도 젊다면 얼마든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도, 왜 도박을 하거나 마약에 손을 대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겠지요.

하지만 이와 같은 사람들은 말로 할 수 없는 공허함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돈이 없고 가난할 때에는 어떻게든지 부자가 되기 위해서 이를 악 물고 공부하거나, 아니면 궂은 일도 마다 않고 일을 했는데, 이제 넉넉해 지니까 목적이 상실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돈은 많지만 오히려 마음이 공허해 져서, 마치 실이 끊긴 연처럼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마음의 질병이 곤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셋째는 박해입니다. 여기에는 차별이 있을 수 있고, 사회적인 스트레스도 포함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요즘은 흔히들 하는 말에 무슨 하라스먼트라는 것이 있지요.

성희롱을 나타내는 섹슈얼 하라스먼트나, 상사가 자신의 권위를 내세워서 부하직원들에게 이른바 갑질을 하는 파워 허라스먼트 같은 것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 보니까 이 허라스먼트의 종류가 무려 40가지가 넘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유형의 허라스먼트가 있다고는 하나 이는 모두가 다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일종의 박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넷째는 기근이고 다섯째는 적신입니다. 참고로 적신이라고 하는 것은 입을 것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는 위험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물리적인 위험만이 아니라 질병이나 정신적인 위험도 포함될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은 ‘칼’입니다. 눈에 보이는 힘에 의한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위태로움을 말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일곱 가지 재앙 중에서 하나라도 우리가 겪게 된다면 이는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집니다. 참으로 견디기 어렵게 되겠지요.

이러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상황이 바로 36절입니다.

로마서 8장 36절
“36.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こう書かれています。「あなたのために、私たちは休みなく殺され、屠られる羊と見なされています。」

혹시 여러분 중에, 나는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되더라도 끄떡없을 것 같다는 분 계십니까. 사실 알고 보면 사람이라고 하는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 지 모릅니다.

제아무리 근육질에다가 힘이 센 사람이라 하더라도 집에서 옷장 모퉁이에 새끼발가락을 부딪쳤는데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 있습니까.

솔직히 새끼발가락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실 지 모르지만, 이 새끼발가락 뼈가 부러진 사람을 봤는데,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 다리 전체에 깁스를 한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가시 하나라도 손가락에 박히면 얼마나 아픕니까.

나는 괜찮아.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끄떡없다고 장담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닙니다. 우리의 존재는 정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양이나 다름 없다고 성경에 기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또한 성경은 뭐라고 기록합니까. 로마서 8장 37절에 보면 기적의 단어가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접속사인 ‘그러나’입니다.


로마서 8장 37절
“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しかし、これらすべてにおいても、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た方によって、私たちは圧倒的な勝利者です。

이 ‘그러나’는 정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적의 접속사입니다.

혹시 여러분께서는 야구를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야구에 보면 ‘홈런’이라고 하는 것이 있지요? 쉽게 말하자면 내가 공을 쳐서, 저기 담장을 넘어가면 홈런입니다.

보통 투수가 공을 던져서 내가 방망이로 공을 쳤을 때 수비수들이 잡거나 하면 아웃이 되어버려요. 그런데 수비수들이 아무리 다리가 빠르거나 실력이 좋더라도 이를 완전히 무력화 하는 것이 바로 홈런입니다. 홈런을 한 번 치면, 보통 야구는 수비수가 9명이지만, 9명이 아니라 90명이 있다 하더라도 소용 없습니다. 높이 공이 올라가면 아무도 못 잡아요. 그리고 그대로 담장을 넘어가면 점수를 따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이른바 인과관계라고 하지요? 인과관계라고 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라는 것이에요. A라고 하는 원인이 있기 때문에 B라고 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면, 만약 A라고 하는 원인이 없었다면 B라고 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한다면 이 때 A와 B는 인과관계가 있다는 뜻이 됩니다.

우리에게 환난이 있어요, 우리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요. 경제적인 문제, 물리적인 위협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고난들이 많아요.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죠? 이럴 때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은 ‘그래서’입니다. A 그래서 B, 이는 뭐예요? A 이기 때문에 B라는 거예요.


나한테 이러이러한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불행해요. 그렇기 때문에 절망해요. 슬퍼해요. 낙심해요.

여기서 더 가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버립니다. 예수님을 버립니다. 내가 이상해? 내가 하나님을 믿어도 예수님을 믿어도 이렇게 어려움이 닥쳐오고 고난과 고통을 겪는데, 하나님을 믿어서 뭐하고 예수님을 믿어 봤자 뭐해?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은 여기서 어떻게 합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가 아니라 ‘그러나’입니다.

놀라운 수비수들이 수 십 명, 수 백 명 깔렸어요. 그래서 나는 못해. 그래서 나는 안 돼. 많은 사람들은 여기서 물러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8장 37절에서는 뭐라고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러나”입니다.

“그러나” 홈런 한 방이면 우리 앞에 있는 모든 장애물들이 무력화가 됩니다.

환난이 있어요. 어려움이 있어요. 배도 고프고 돈도 없고 건강도 안 좋고, 온통 내 앞길을 가로막는 사람들 투성이에요……이 때 무슨 말을 떠 올려야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러나”입니다.


우리 눈앞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는 “그러나”의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로마서 8장 37절
“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しかし、これらすべてにおいても、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た方によって、私たちは圧倒的な勝利者です。


“그러나” 뒤에 뭐라고 기록하나요?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첫째로,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요즘 한국 대통령선거를 보면 참 서로가 서로를 원색적으로 비난을 합니다. 정말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물고 뜯고 그렇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이유 중 하나가 지지율이 거의 박빙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설문조사를 하는 기관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 이른바 유력후보들의 지지율이 거의 오차 범위 내에서 왔다 갔다 한다고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0.몇 프로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니까 서로 어떻게든 작은 흠집이라도 하나 내보려고 서로 비난하고 비방하고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에 한쪽 지지율이 90프로가 넘고, 다른 한쪽 후보가 10프로도 안 된다고 해봐요. 그럼 90프로도 넘는 후보가 상대방을 그렇게 심하게 깎아내리려고 하겠어요? 오히려 점잖게 자기 길을 가겠지요.

여러분, 우리가 어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그리고 이웃에 대해서 야박하게 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는 믿음, 넉넉하게 이긴다는 믿음을 갖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 아멘 하기는 쉽습니다. 그런데 막상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쳐오면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아요.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 가벼워지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입입니다.

그럴 때 보면 우리의 입이 얼마나 가벼워지는 지 몰라요. 아무리 믿음이 좋은 척 하다가도, 금새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 나옵니다.

우리는 말을 할 때 정말로 조심을 해야 합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가나단 땅을 정탐하고 온 열두 정탐꾼 중에서 열 사람들의 말을 믿고는 절망을 합니다. 낙심을 합니다. 그리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민수기 14장 2절~3절
“2.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イスラエルの子らはみな、モーセとアロンに不平を言った。全会衆は彼らに言った。「われわれはエジプトの地で死んでいたらよかった。あるいは、この荒野で死んでいたらよかったのだ。
なぜ主は、われわれをこの地に導いて来て、剣に倒れるようにされるのか。妻や子どもは、かすめ奪われてしまう。エジプトに帰るほうが、われわれにとって良くはないか。」

이게 지금 무슨 말이에요? 이제 놀라운 축복,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하나님께서 주시려는데, 그들은 에잇, 차라리 광야에서 죽거나 했으면 좋았을 것을, 이제 가나안 사람들한테 죽게 생겼다……지금 이러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를 하나님께서 가만히 보고만 계시겠습니까.


민수기 14장 28절~30절
“28.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29.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彼らに言え。わたしは生きている──主のことば──。わたしは必ず、おまえたちがわたしの耳に語ったとおりに、おまえたちに行う。
この荒野におまえたちは、屍をさらす。わたしに不平を言った者で、二十歳以上の、登録され数えられた者たち全員である。
エフンネの子カレブと、ヌンの子ヨシュアのほかは、おまえたちを住まわせるとわたしが誓った地に、だれ一人入ることはできない。

아니, 지금 내가 놀라운 축복을 주려고 하는데, 뭐 어째고 어째? 차라리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겠다고? 그래. 알았어. 내 귀에 들린 대로 너희들한테 해주마.

너희들, 내가 주려고 했던 축복 못 받아. 가나안 땅? 못 들어가. 너희들이 한 말처럼 광야에서 다 죽게 해주겠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는 이처럼 어려움이 닥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욥, 그야말로 당대에 욥만큼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가 없었다고 하는데도 엄청난 환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 때 욥은 어떻게 했습니까.

욥기 1장 20절~22절
“20.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21.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2.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このとき、ヨブは立ち上がって上着を引き裂き、頭を剃り、地にひれ伏して礼拝し、
そして言った。「私は裸で母の胎から出て来た。また裸でかしこに帰ろう。主は与え、主は取られる。主の御名はほむべきかな。」
ヨブはこれらすべてのことにおいても、罪に陥ることなく、神に対して愚痴をこぼすようなことはしなかった。


욥기 2장 9절~10절
“9.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10.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すると、妻が彼に言った。「あなたは、これでもなお、自分の誠実さを堅く保とうとしているのですか。神を呪って死になさい。」
しかし、彼は妻に言った。「あなたは、どこかの愚かな女が言うようなことを言っている。私たちは幸いを神から受けるのだから、わざわいも受けるべきではないか。」ヨブはこのすべてのことにおいても、唇によって罪に陥ることはなかった。

여러분, 운전을 잘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평소 때 알지 못합니다. 무슨 과속을 하거나 급커브를 빠른 속도로 끼기긱 소리 내면서 도는 것이 운전 잘하는 것이 아니에요. 운전을 잘하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갑작스러운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제대로 대처를 할 줄 아느냐 못하느냐 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는 그 사람이 믿음이 좋은지 안 좋은지를 알 수가 없어요. 그러면 언제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위기가 닥쳤을 때 알 수 있습니다.

저기 사과나무가 있어요. 크고 작은 사과들이 많이 열려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 사과가 제일 단단하게 매달려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렇습니다. 흔들어보면 됩니다. 보기에는 꽤 단단히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조금 흔드니까 후두두둑 하고 떨어지는 것이 있나 하면, 반면에 아무리 흔들어도 끝까지 안 떨어지는 사과도 있는 것이지요.

평소에는 믿음이 좋은 척은 있는 대로 다 하다가, 조금 시련이 닥쳐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좌절하고 절망하고 낙심고, 불평불만을 쏟아내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예수님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끝까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 끝까지 예수님을 의지하는 사람, 입술로 죄를 짓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이 마침내 승리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37절에 보시면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긴다고 하시나요?

로마서 8장 37절
“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しかし、これらすべてにおいても、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た方によって、私たちは圧倒的な勝利者です。

그렇습니다. 우리의 힘이 아닙니다. 우리의 노력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예수님의 힘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긴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어떠한 환난이 닥쳐오더라도,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우리 주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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