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 목사 설교

[설교동영상/본문] 제124회 입어야 할 새 사람

홍성필 2021. 6. 29.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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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회 입어야 할 새 사람
2018년 4월 22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24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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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한 달에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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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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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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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입어야 할 새 사람” 着るべき新しい人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렇게도 추웠던 겨울이 갔나 했더니 조금 있으니까 화려한 꽃들이 만발했습니다. 참 일본에 있는 벚꽃들은 아름답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조금 있으니까 무슨 여름이라도 된 것처럼 따뜻해지고 그랬지요. 이럴 때일수록 건강관리를 잘 하셔야 되겠습니다.

길가에 폈던 벚꽃이 조금 지나면 이제 서서히 파란 잎새가 나옵니다. 그런 모습, 여러분은 어떠세요? 아름다운가요? 벚꽃이 분홍빛으로 화려한 색상을 자랑할 때에는 대단히 아름답습니다만, 여기에 잎사귀가 나오기 시작해서 서로 섞이면, 제가 보기에는 솔직히 좀 아름답지가 않아요. 오히려 지저분해 보입니다.

이게 꽤 오랫동안 사실 좀 이해가 안 갔습니다. 제가 분홍색도 좋아하고, 초록색도 좋아합니다. 분홍색 꽃잎과 초록색 잎사귀, 얼마나 잘 어울리는 배색입니까. 그런데 이게 섞이니까 영 보기가 안 좋아요. 그래서 저는 또 제가 마음이 좀 깨끗하지 못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 아마도 저보다는 마음이 깨끗하리라 짐작되는 제 집사람한테 물어보았습니다. 나는 벚꽃도 좋아하고 나뭇잎도 좋아하는데, 벚꽃과 나뭇잎이 같이 달려 있는 걸 보면 어떻게 보이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랬더니 자기도 지저분해 보인다는 것이에요. 이 대답을 듣고 참 얼마나 제 마음에 위안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왜 지저분해 보이는 것일까요. 잘 생각해보니까 이해가 갔습니다.

이에 대한 결론을 말씀 드리기 전에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리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고, 옷장에는 입을 옷이 몇 벌이나 들어 있습니다. 참 이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요. 이 세상에는 집이 없어서 길가나 지하도 같은 곳에서 잠을 자기도 합니다. 이는 한국이나 일본 모두 마찬가지지요.


이 분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참 가슴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여름에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겨울에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어려움이 많으시겠지요.

그런데 간혹 보면 이 분들이 여름철에 동사를 당한다고 합니다. 동사, 그러니까 체온이 떨어져서 사망한다는 것이지요. 겨울에 그렇다면 그나마 이해가 갑니다만, 어떻게 여름에 동사를 당할 수가 있을까요.

저도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졌던 생각은, 아하, 여름철에 날씨가 더우니까 옷을 벗고 자다가 밤에 기온이 떨어져서 사망하게 되는가 보다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멀쩡히 옷을 입고 있었는데도 여름철에 동사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원인을 알아보니 그 분들은 옷가지나 물건들을 얻으면 놓지 않으려고 한답니다. 그래서 옷도 한 번 입으면 안 벗는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비가 올 때에도 옷을 입은 채로 비를 맞게 되는데, 비가 그친 후에도 옷을 안 벗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형편이 어렵다 하더라도 옷이 젖으면 벗어서 말리고, 더러워지면 빨아서 입고, 그리고 오래된 옷가지들은 때가 되면 버리고 그래야 할 것입니다만, 온몸이 비에 젖은 채로 잠을 자거나 하게 되면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잘못하면 큰 변을 당할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앞서 말씀 드렸던 벚나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분홍색과 초록색의 조화, 참 잘 맞을 것 같지만 지저분해 보인 이유. 그것은 아마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분홍빛 벚꽃도 예쁘고, 초록빛 잎사귀도 보기에 시원합니다만, 한 쪽을 버리지 못하고 다른 쪽을 더하게 되니까 결국 지저분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새로운 것이 들어오면 옛 것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죠. 버려야죠. 그런데 가끔 우리는 이 버리는 것을 잘 못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생활에 있어서 보다 나은 삶을 산다고 한다면,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 무엇을 사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대로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것은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예를 들어서 쓰던 냉장고가 고장 났어요. 그래서 새것을 샀습니다. 그러면 쓰던 냉장고는 어떻게 해야 되요? 예, 버려야죠. 그것도 고장이 났는데 그걸 계속 가지고 있어봐야 뭘 하겠습니까. 꼭 버리지 않더라도, 누가 수리해서 쓰겠다고 하면 그 사람을 준다거나, 아니면 고물상한테 판다던가, 어떻든 간에 바깥으로 내보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계속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밥솥도, 세탁기도, 텔레비전도, 자동차도 망가져서 이제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새것을 샀어요. 그런데도 옛날 쓰던 것을 아깝다면서, 그러면서 고치지도 않고 계속 가지고 있다면 집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엉망진창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잘 살아보려고 해 봤자 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조금 더 극단적인 말씀을 드려볼까요? 예를 들어서 스시를 먹었어요. 아니면 장어요리를 먹었습니다. 비싸서 웬만해서는 못 먹잖아요? 그런데 어쩌다가 그걸 먹게 되었어요. 참 맛이 있게 잘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랜만에 모처럼 먹은 맛있는 스시나 장어가 아깝다면서 화장실에 안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먹기는 아주 잘 먹습니다. 양식 일식 중식 한식……주는 대로 다 받아 먹었어요. 그런데 화장실에 안 갑니다. 그러면 몸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서 건강하게 살겠대요? 그건 불가능한 일이지요. 심해지면 생명에까지 지장이 생길 수 있는 일입니다.

새 것을 얻으면 옛 것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24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その教えとは、あなたがたの以前の生活について言うならば、人を欺く情欲によって滅びて行く古い人を脱ぎ捨てるべきこと、またあなたがたが心の霊 において新しくされ、真理に基づく義と聖をもって神にかたどり造り出された、新しい人を身に着るべきことでした。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를 위해서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 옛 사람이라는 것은 어떻다고 합니까. 옛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것, 그것이 바로 옛 사람이라고 하는 한다는 것입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 이것이 무엇입니까. 내 욕심을 따라서 유혹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면서 살아가는 인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욕심과 유혹, 사실 이렇게 말을 하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에이, 나 그렇게 욕심이 많은 사람 아니에요. 유혹이요? 아니 뭐 별로 유혹 같은 걸 당하지는 않아요. 이렇게 마치 자신과 무관한 것처럼 생각이 되십니까.

사실 한국이나 일본 뉴스를 보십시오. 안 좋은 내용에 관한 것은 모두가 다 이 욕심과 유혹에 대한 것입니다. 돈에 대한 욕심과 유혹, 이성에 대한 욕심과 유혹, 권력에 대한 욕심과 유혹, 여기에 휘말리고 휩쓸리다 보면 어느새 모두가 다 썩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최고의 천재라고 하면 너무나도 유명한 아인슈타인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Insanity: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expecting different results.

정실질환, 그것은 같은 일을 계속해서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어디 한 번 쉬운 예를 들어볼까요?

어떤 음식을 하는데 소금을 넣었어요. 그랬더니 맛이 아주 없어졌습니다. 다음에도 똑같은 요리를 하는데 소금을 넣었어요. 역시 맛이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요리를 할 때 소금을 넣어요.

그래서 그걸 보고 있던 사람이 묻습니다.

맛이 없어지는 걸 알면서 왜 소금을 또 넣느냐고 하자, 그 사람이 말합니다.
언젠가는 맛이 있게 되지 않을까 해서 그렇습니다.

만약에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예, 문제가 심각하죠. 이건 그야말로 정신질환입니다.

같은 일을 계속해서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 이것이 정신질환이라고 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이를 좀 확장해서 해석을 했더군요. 어떻게 해석을 했냐 하면,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달라진 내일을 꿈꾸지 말라”

참 멋진 해석입니다. 어제 했던 것, 그제 했던 것과 똑같이 오늘도 하면서 새로운 내일을 꿈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며 하루하루를 사는데 어떻게 새로운 내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런 것을 기대한다면 그야말로 정신질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새 사람을 입으나 안 입으나 상관 없다고 한다면 괜찮습니다. 그대로 사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새 사람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권리가 아니라 의무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새 옷을 입기 위해서는 먼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되어 있어요? 그렇습니다. 옛날 옷을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먹고는 자신들이 벗은 몸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했다고 해요?


창세기 3장 7절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このようにして、ふたりの目は開かれ、それで彼らは自分たちが裸であることを知った。そこで、彼らは、いちじくの葉 をつづり合わせて、自分たちの腰のおおいを作った。

그렇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아무리 자기 자신을 가리고자 노력하더라도 그것은 천상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치마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 아담과 하와를 불쌍히 여겨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냐 하면 21절에 나와 있습니다.

창세기 3장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神である主は、アダムとその妻のために、皮の衣を作り、彼らに着せてくださった。

사람 같으면, 아니, 저 같으면 어쭈, 내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고 지배할 특권까지도 주었는데, 그런 내 말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어? 이런 고얀 것, 다 없애버리고 새로 만들어야겠다……이럴 만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부족한 아담과 하와를 생각하셔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지금 아담이나 하와가 잘한 것이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잘한 것은 고사하고, 모든 것을 허락하시고 모든 것을 주신, 모든 축복을 주신 하나님의 명을 거역한 죄를 지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명을 어기면 반드시 죽는다고까지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어겼습니다.

그렇다면 죽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겠죠. 미리 말씀을 다 해 놓고, 이를 어기면 죽는다고 했는데 이를 어겼잖아요. 그러면 무슨 변명의 여지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아담과 하와를 죽이는 대신 다른 동물을 희생 삼아서 가죽옷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자기가 손으로 열심히 만든 무화과 나뭇잎 치마와 하나님께서 주신 가죽옷. 어떤 것이 좋습니까. 이건 두 말 하면 잔소리죠. 아무리 훌륭한 솜씨로 만들었다고는 해도 나뭇잎은 나뭇잎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시들해지고 결국 말라 비틀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가죽옷은 어떻습니까. 이는 요즘에도 가죽옷이라고 하면 튼튼하고 비싼 옷이지요.

그토록 큰 축복을 받고서도 죄를 지은 자신들한테 하나님께서 그 좋은 옷으로 선물을 주셨어요. 그러면 가죽옷을 입어야 할 텐데, 그러면 무화과나뭇잎 치마는 어떻게 할까요?

“아휴, 내가 이걸 만드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걸 어떻게 버려.”

그러면서 나뭇잎 치마를 입은 채로 가죽옷을 입어야겠어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아무리 최고급 가죽옷을 입어봤자 그 속은 말라 비틀어진 나뭇잎 치마로 살갗이 찔리고 따갑고 그렇겠죠.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지금 받은 축복이 충분합니까? 축복을 못 받은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어디에 문제가 있을까요.

직장에 다니다 보면 가끔 컴퓨터가 잘 안 된다고 누가 그럽니다. 그러면서 제게 고쳐달라고 해요. 그런데 보면요, 컴퓨터가 안 될 때에는,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크게 보면 원인은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컴퓨터가 이상할 때의 원인 두 가지. 그것은 바로 컴퓨터에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컴퓨터를 쓰는 사람한테 문제가 있는 경우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느 쪽인 경우가 더 많을 것 같으세요? 예, 두 번째 원인, 컴퓨터가 안 된다고 할 때 가서 보면, 컴퓨터는 멀쩡한데, 쓰는 사람한테 문제가 있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아니, 프린터가 안 된다고 하는데, 프린터 스위치를 꺼놓고 안 된다고 하면 어쩌란 말이에요?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받은 축복이 충분합니까? 아니에요. 지금 우리가 받아야 할 축복은 훨씬 더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많은 축복을 아직 못 받았어요.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한테 문제가 있어서 그렇습니까, 아니면 우리한테 문제가 있어서입니까. 예, 그렇죠. 문제는 바로 우리입니다. 제대로 새사람을 입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새사람을 입지 못했습니까. 예, 지금까지 제 말씀을 들어오셨다면 이제 아시겠지요? 그렇습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제까지 해왔던 것, 그제까지 해왔던 것을 오늘도 계속해서 하게 된다면 새로운 내일을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축복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구습을 어제도 버리지 못하고, 그제도 버리지 못했는데, 오늘도 버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서 내일 새사람이 받을 수 있는 축복을 받을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だれでもキリストのうちにあるなら、その人は新しく造られた者です。古いものは過ぎ去って、見よ、すべてが新しくなりました。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를 원하십니까. 밖에 있기를 원하십니까. 예, 안에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더러 새로운 피조물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힘으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가 없습니다. 기껏 한다는 게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치마입니다. 정말로 훌륭한 솜씨,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봐야 훌륭하고 뛰어난 무화과 나뭇잎 치마밖에는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예요.


하지만 이런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희생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로서 우리는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 우리의 죄악을 해결하는 일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말미암아 단번에 해결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허술하기 짝이 없는 무화과 나뭇잎 옷을 벗어버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가죽옷을 입어야지요. 새사람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까요. 예, 지금까지 해오던 구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구습이 무엇입니까.

하나를 꼽으라면 먼저 증오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큰 축복을 못 받은 이유가 어쩌면 그 사람, 정말 미워하는 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고 하는 구습, 무화과 나뭇잎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 구습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우리 몸에 덕지덕지 붙은 말라 비틀어진 무화과 나뭇잎을 떼어내야 합니다. 어서 벗어버리지 않으면, 잘못하면 여름 날에 얼어 죽는 변을 겪게 될지도 모르는 노릇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새 사람을 입어야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지금까지 해보지 못했던 것을 합시다. 무엇입니까. 예, 그 사람을 용서해보시기 바랍니다. 조금만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에라, 모르겠다, 내가 용서해버리자……이렇게 마음을 먹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적어도 내 마음은 편해집니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이 들겠지요. 그래, 그 사람이 참 나한테 미운 짓, 나쁜 짓도 했지만, 나는 그럼 다른 사람 앞에서 어떨까. 그래, 나도 남들한테 미운 짓도 해왔고 나쁜 짓도 해왔지.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미운 짓도 하고 나쁜 짓도 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슬프게 했을까. 그래, 좋아, 용서하자.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 용서를 하게 되면 적어도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안 될 것 같으면 억지로라도 해보세요. 그러면 내 마음 안에 평안이 옵니다. 감사가 나옵니다. 내 주변에서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없애는 방법은,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없애면 됩니다.

그러면 내게 있어서 적이 없어져요. 그러면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웃을 사랑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제 복음이 전파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천국의 기쁜 소식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이제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이제 새사람을 입고 큰 축복을 받는, 지금까지 받지 못했던 축복까지도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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