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 목사 설교

[설교동영상/본문] 제122회 믿음의 기승전결

홍성필 2021. 6. 29.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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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회 믿음의 기승전결
2018년 4월 8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사기 13장 21절~23절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 마노아가 그제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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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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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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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믿음의 기승전결”信仰の起承転結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혹시 영화를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사실 여유롭게 영화를 즐겨 볼 시간이 없습니다만, 예전에는 그래도 가끔 보곤 했습니다.

한국영화, 일본영화도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세계적이 영화라고 한다면 미국영화, 말하자면 할리우드 영화를 꼽을 수 있겠지요. 한마디로 할리우드 영화라고 해도 그 장르는 무수히 많겠습니다만, 어떤 영화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이 할리우드 영화는 대체적으로 구도가 단순하다고 합니다.

우선 맨 처음에 도입이 있고, 조금 있으면 그 도입으로 인해서 어떤 사건이 발전합니다. 좀 내용이 커지는 것이지요. 그렇게 점점 이야기가 발전하다가, 막판에 클라이맥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엔딩이 있지요. 이처럼 단순한 이야기 흐름이 있기 때문에 할리우드 영화는 남녀노소 누가 보더라도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소설에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기승전결이라고 하지요. 역시 맨 처음에는 어떤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러면 이를 받아서 사건이 이어지고, 이렇게 이어진 사건이 나중에 크게 전환된 다음에 마지막에 맺어진다는 진행입니다.

물론 그렇겠죠.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학교 갔다가, 수업 듣고 도시락 먹고 공부하고 집에 와서 잤다……이건 영화도 아니고 소설도 아닙니다. 소재가 어떻든 간에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 기승전결에 맞게 잘 구성을 하야지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야기의 구성이라는 것은 그 작품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흐름을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은 이야기를 쓰는 쪽이나 보는 쪽 모두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오늘 본문이 등장하는 때는 사사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아직 왕이 없었습니다.

사사기 17장 6절과 사사기 21장 25절을 보면 이 사사 시대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そのころ、イスラエルには王がなく、めいめいが自分の目に正しいと見えることを行っていた。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끝내고 모세에게 이끌려서 광야로 나왔습니다. 그들은 40여 년 동안의 광야생활을 마친 후에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수아를 앞세워서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점령하게 되지요.

여호수아가 죽고 난 다음에 사울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기까지 대략 340년 정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시대가 바로 사사 시대입니다. 당시에는 사사라고 하는 리더가 있긴 했으나 그렇다고 왕처럼 막강한 권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요.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수아가 사망하자 곧바로 우상숭배라고 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 그대로 놔두시나요. 경고를 해도 듣지 않으면 외세를 일으켜서 괴롭게 합니다. 그제서야 회개를 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이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사사라고 하는 리더를 세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죠.

그렇게 되면 평화가 임하게 되는데, 그러면 뭘 합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죠. 이처럼 우상숭배, 침략, 회개, 구원, 평화…또 우상숭배……이와 같은 반복이 계속되던 시대가 바로 사사시대였습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13장 1절을 보시겠습니다.

사사기 13장 1절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イスラエル人はまた、主の目の前に悪を行ったので、主は四十年間、彼らをペリシテ人の手に渡された。

참 암울한 시절 아니었겠습니까. 그런데 당시 단 지파의 마노아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부인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십니다.

사사기 13장 3절~5절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
v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主の使いがその女に現れて、彼女に言った。「見よ。あなたは不妊の女で、子どもを産まなかったが、あなたはみごもり、男の子を産む。
今、気をつけなさい。ぶどう酒や強い酒を飲んではならない。汚れた物をいっさい食べてはならない。
見よ。あなたはみごもっていて、男の子を産もうとしている。その子の頭にかみそりを当ててはならない。その子は胎内にいるときから神へのナジル人(びと)であるからだ。彼はイスラエルをペリシテ人の手から救い始める。」

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제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에 따른 지켜야 할 규례에 대해서 설명을 해줍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나는 아기가 바로 그 유명한 삼손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주인공은 삼손이 아니라 바로 그의 아버지 마노아입니다. 그 동안 별로 주목 받을 일이 없었던 이 삼손 아버지 마노아입니다만, 그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면 대단히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마노아의 아내가 여호와의 사자로부터 이와 같은 수태고지를 듣게 되지요.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때 그 자리에는 남편 마노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인은 서둘러 남편을 찾아가서는 여호와의 사자가 자기한테 나타나서 이러이러하게 말하더이다 하고,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을 말합니다.

그랬더니 이 남편 마노아가 어떻게 했냐 하면 8절에 나와 있습니다.

사사기 13장 8절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니”

そこで、マノアは主に願って言った。「ああ、主よ。どうぞ、あなたが遣わされたあの神の人をまた、私たちのところに来させてください。私たちが、生まれて来 る子に、何をすればよいか、教えてください。」

마노아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자기 아내에게 보내주셨던 사자를 다시 보내달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가르쳐달라고 합니다.

제가 만약에 하나님 같았으면, 아니 내가 네 아내한테 말했잖아. 한 번 말했으면 그걸 믿어야지, 니가 뭔데 귀찮게 오라 가라야? 라고 말했을 만도 한데, 하나님은 참 친절하십니다. 이 기도를 들어주셨어요.

그래서 다시 나타나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한테는 이미 아내한테 삼가라고 했던 포도주와 독주도 멀리 하라고 사자가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남편 마노아, 믿음이 참 있는 분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를 대접하겠다고 하지요. 그랬더니 사자는 말합니다.


사사기 13장 16절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내가 네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마노아가 알지 못함이었더라”

すると、主の使いはマノアに言った。「たとい、あなたがわたしを引き止めても、わたしはあなたの食物は食べない。もし全焼のいけにえをささげたいなら、それは主にささげなさい。」マノアはその方が主の使いであることを知らなかったのである。

대접하려면 나를 대접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대접해드려야 한다고 합니다. 과연 여호와의 사자답습니다. 그래서 염소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 바쳤습니다. 그랬더니 불꽃이 거기서 하늘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것을 본 마노아. 그제서야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던 사람이 바로 여호와의 사자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다음에 그가 한 말이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22절 말씀입니다.
“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

それで、マノアは妻に言った。「私たちは神を見たので、必ず死ぬだろう。」

이게 지금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께서는 이해가 되시나요? 여기서 잠시 지금까지의 진행상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먼저 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서 아들이 태어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를 남편에게 말하자 남편 마노아는 어떻게 했다고요? 예, 자기는 못 봤으니까 하나님이 보냈던 사자를 다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다시 보내주셨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다음에 이 마노아가 한 말이 무엇입니까.

아, 우리가 하나님을 봤으니까 이제 죽을 거라는 것입니다. 이건 완전 코미디 아닙니까.

여러분,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역사는 철저하게 기승전결에 입각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다가 그냥 심심해서 툭 하고 축복을 주시거나, 또 심심해서 툭 하고 징벌을 내리시거나 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실 때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고, 징벌을 하시는 것도 분명히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물론 이 마노아가 한 말이 전혀 뜬금없는 소리는 아닙니다.

출애굽기 33장 20절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また仰せられた。「あなたはわたしの顔を見ることはできない。人はわたしを見て、なお生きていることはできないからである。」

하지만 앞뒤 진행상황, 기승전결을 보아야 하지요. 하나님의 사자가 친히 나타나서 아들이 태어날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 아버지를 죽이신다는 게 말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그 아내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 중에서 13장 23절을 다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사기 13장 23절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妻は彼に言った。「もし私たちを殺そうと思われたのなら、主は私たちの手から、全焼のいけにえと穀物のささげ物をお受けにならなかったでしょう。これらのことをみな、私たちにお示しにならなかったでしょうし、いましがた、こうしたことを私たちにお告げにならなかったでしょう。」

아니, 여보,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이 만약에 우리를 죽이려고 생각하셨다면 우리가 바친 제물을 받으셨겠어요? 우리에게 아들이 태어난다고 말씀하셨겠어요? 무엇보다 우리한테 나타나셨겠느냐는 것이죠. 아내는 믿음의 기승전결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참으로 지혜 없는 남편과, 지혜 있는 아내의 환상적인 커플 아닙니까.

이 글을 읽으면서, 아이고 쯧쯧……딱한 마노아 같으니라고……하면서 그냥 지나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 이러 내용이 성경에 적혀 있냐 하는 것이죠.

성경을 읽다 보면, 아, 이 부분은 정말 적혀 있으면 좋겠는데, 안 적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안 적혀 있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우리 인간적으로 보면 궁금할 수도 있겠으나 하나님께 있어서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안 적어놓으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보기에는 하찮은 내용,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적혀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구절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사실 이 믿음의 기승전결, 정작 마노아는 알지 못했으나 이름 없는 마노아의 아내가 알고 있던 믿음의 기승전결은 축복을 얻기 위한 어마어마한 큰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큰 부귀와 영광을 누린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솔로몬이 아닐까 합니다. 열왕기상 10장에 기록된 내용만 보더라도 그 재산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은 어떻게 해서 그처럼 크나큰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믿음의 기승전결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솔로몬. 물론 그는 다윗 왕의 아들로 태어나서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는 환경에서 자라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출생배경은 어떻습니까.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는 본래 다윗의 신하 우리아의 아내였습니다. 다윗의 충신 우리아가 전쟁터에 나가서 다윗 왕을 위해, 그리고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고 있을 때, 정작 다윗 왕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부정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 결과 밧세바가 임신을 하게 되자, 이 일이 들통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전사하도록 만들고는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취하고 맙니다.

사무엘하 11장 26절에 보면 남편 우리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밧세바가 소리 내어 울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참 이 얼마나 잔혹한 일입니까.

솔로몬은 그와 같은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불편함이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와 같은 배경을 갖고 있던 그는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솔로몬은 물론이거니와 밧세바도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아무리 왕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남편을 죽이고 자신을 빼앗은 다윗 왕을 밧세바가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이를 불쌍히 여겼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죄책감 때문인지, 열왕기상 1장 17절에 보면 다윗이 밧세바에게 말하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자신의 왕위를 물려줄 맹세를 했다고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밑에 30절을 보면 다윗도 이를 시인하는 것으로 보아 사실이라고 여겨집니다.

결코 축복된 만남이라고 할 수 없는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자신을 두고 솔로몬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특히나 예민한 시기에는 마음의 큰 상처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믿음의 기승전결, 신앙의 기승전결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비록 축복받는 만남의 결과로 맺어진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하나님은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다. 그리고 나를 왕으로까지 삼으셨다.

아, 여기에는 하나님의 기승전결,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셔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분명히 있을 텐데, 나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내가 이 일을 잘 감당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열왕기상 3장 5절을 봅니다.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その夜、ギブオンで主は夢のうちにソロモンに現れた。神は仰せられた。「あなたに何を与えようか。願え。」

그러자 솔로몬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저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고, 왕으로까지 삼아 주셨습니다만, 저는 아직 부족해서 왕으로서 제대로 다스릴 자신도 없고,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 백성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잘 다스릴 수 있게 해주세요.

이 말을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열왕기상 3장 10절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この願い事は主の御心にかなった。ソロモンがこのことを願ったからである。

그래, 네가 이제 내 마음을 아는구나. 맞았어. 내가 너한테 원했던 게 바로 그거야. 좋아. 그러면 말씀하십니다.


열왕기상 3장 11절~13절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
v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神は彼に仰せられた。「あなたがこのことを求め、自分のために長寿を求めず、自分のために富を求めず、あなたの敵のいのちをも求めず、むしろ、自分のために正しい訴えを聞き分ける判断力を求めたので、
今、わたしはあなたの言ったとおりにする。見よ。わたしはあなたに知恵の心と判断する心とを与える。あなたの先に、あなたのような者はなかった。また、あなたのあとに、あなたのような者も起こらない。
そのうえ、あなたの願わなかったもの、富と誉れとをあなたに与える。あなたの生きているかぎり、王たちの中であなたに並ぶ者はひとりもないであろう。

이 말씀을 보면, 정말 하나님께서 무척이나 기뻐하셨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웃음소리가 막 들려오기까지 하는 것 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좋아하실 수가 있어요? 이처럼 전무후무한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받고, 그 뿐만이 아니라 솔로몬이 사는 동안 솔로몬보다 큰 부귀와 영광을 가진 왕들이 없도록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렇게 되었나요?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10장 23절에 보면,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세상의 그 어느 왕보다 큰지라”

ソロモン王は、富と知恵とにおいて、地上のどの王よりもまさっていた。


어떤 분은 솔로몬이 축복을 받은 이유가 지혜를 구해서 그랬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맨날 지혜만 달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일,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구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토록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기승전결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이렇게 기쁘게 해드릴 수 있고, 우리도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축복을 받으실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건강을 구합니다. 축복을 구합니다. 문제 해결을 구합니다. 때로는 돈을 구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돈을 구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가요? 아닙니다. 하나님께 체면 차릴 것이 무엇입니까. 돈도 중요합니다. 구하십시오. 좋은 집도 구하십시오. 좋은 차도 구하십시오. 그러나 구하실 때에 하나님의 기승전결, 믿음의 기승전결을 생각하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러이러한 상황을 통해서 나를 이러한 상황에 놓으셨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무엇을 구해야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까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건강? 문제 해결? 돈? 집? 차? 좋아. 그러면 내가 너한테 그것을 주면 너는 그것을 가지고 뭘 할 텐데? 라고 하나님께서 물으시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이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과 딱 맞아떨어졌어요. 하나님이 저에게 맡기신 일을 위해서 이렇게 쓰겠습니다. 저렇게 활용하겠습니다. 이렇게 고백했을 때 그 마음이 하나님 마음에 드셨어요.

만약에 그렇다면요. 하나님께서 마음에 드는 것을 우리가 구한다면, 집이나 차 정도가 아니라 온 천하라도 여러분께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를 위해서, 죄 많고 부족한 우리들을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의 생명까지도 우리에게 주신 분이십니다. 그런 분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호세아 6장 3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私たちは、知ろう。主を知ることを切に追い求めよう。主は暁の光のように、確かに現れ、大雨のように、私たちのところに来、後の雨のように、地を潤される。」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인도해오시면서 지금 여기에 나를 있게 하셨는데, 그렇다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무엇을 원하기를 하나님께서 바라실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힘써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믿음의 자녀가 되어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크나큰 축복을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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