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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목사 설교

[설교동영상/본문] 제333회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

by 홍성필 2022.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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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3회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
2022년 3월 27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kirin.kr
kirin@kirin.kr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9장 10절~14절
“10.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9章10節~14節
“10.それだけではありません。一人の人、すなわち私たちの父イサクによって身ごもったリベカの場合もそうです。
11.その子どもたちがまだ生まれもせず、善も悪も行わないうちに、選びによる神のご計画が、
12.行いによるのではなく、召してくださる方によって進められるために、「兄が弟に仕える」と彼女に告げられました。
13.「わたしはヤコブを愛し、エサウを憎んだ」と書かれているとおりです。
14.それでは、どのように言うべきでしょうか。神に不正があるのでしょうか。決して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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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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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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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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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78번째 시간으로서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 私たちを選ばれた神様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 복습을 잠깐 해볼까 합니다.

지난 주에는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넘어오는 과정에 대해서 말씀 드렸지요. 아브라함은 아이가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대로 이삭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을 포함해서 총 여덟 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오직 약속의 자녀인 이삭이 아브라함의 대를 이을 자손으로 선택하셨다는 말씀을 드렸었지요.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삭을 선택 하셨을까요. 어쩌면 사라가 아브라함의 정식 아내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성경을 보면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다윗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스라엘 제2대 왕이 된 다윗에게는 이미 아내들이 많았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하 11장에 의하면 자신의 충신 우리아가 전쟁터에 나가 있는 틈을 타서, 그의 아내를 대단히 부적절한 방법으로 빼앗게 됩니다.

다윗의 죄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신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를 숨기기 위해 잔꾀를 부립니다만 이게 생각대로 되지 않아요. 그래서 어떻게 했냐 하면 결국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일부러 전사하게끔 만들어버리고는 그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삼습니다.

세상에 이런 나쁜 짓이 어디 있습니까. 이 일로 인해서 그 때까지 승승장구했던 다윗의 기세는 완전히 꺾이고 맙니다. 집안에는 나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남매 사이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고, 이 일로 인해서 형제들이 서로 살해하는 일이 발생하고, 한 아들이 반역을 일으켜서 다윗 왕이 광야로 쫓겨나기도 하고, 결국은 그 아들이 처참하게 살해되고 맙니다.

당시까지의 다윗 왕의 인생에서 본다면 전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불행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게 되지요.

이러한 맥락으로 본다면 어떻습니까. 자신의 충신을 전쟁터에서 일부러 죽게 만들면서까지 빼앗은 그의 아내라고 한다면 다윗과 밧세바는 말하자면 죄악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무엘하 12장에 의하면 그와 같은 부적절한 관계에서 갖게 된 다윗과 밧세바 사이의 첫 아이를 하나님이 치셨고, 그 결과 병으로 결국 사망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결론이지요.

하지만 밧세바가 다윗 사이에서 또다시 아이를 갖게 되는데 그 아이가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솔로몬입니다.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 솔로몬을 다윗에 이어 이스라엘의 제3대 왕으로 선택을 하시게 되는 것이지요.

밧세바 전에 있던 아내들 사이에도 아이들이 있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굳이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솔로몬을 다음 왕으로 세우십니다.

왜 멀쩡한 다른 자녀들은 놔두고 하필이면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솔로몬을 선택 하셨을까요. 이를 보면 참 우리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선택은 이것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내용이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이삭, 이제 그가 장성해서 아내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 아내의 이름은 리브가입니다.


창세기 25장 21절 이후에 의하면,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을 했지만 좀처럼 아이를 갖지 못했나 봅니다. 그래서 이삭이 하나님께 간구를 했더니 마침내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조금씩 배가 불러오는데 가만히 보니까 아무래도 쌍둥이 같아요.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이 두 아이들이 뱃속에서 싸웠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제가 여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이 하나가 뱃속에 들어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둘이나 들어있어요. 그것만으로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 두 아이들이 뱃속에서 서로 싸웠다고 합니다. 참 그 엄마 리브가도 고생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남편 이삭도 많이 당황 했나 봐요.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만, 아마도 리브가가 밤에 잠도 충분히 자질 못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그러니까 어떻게 할 줄 몰랐나 보죠.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더니, 하나님이 대단히 묘한 말씀을 하십니다.


창세기 25장 23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すると主は彼女に言われた。「二つの国があなたの胎内にあり、二つの国民があなたから分かれ出る。一つの国民は、もう一つの国民より強く、兄が弟に仕える。」

이 말씀을 알기 쉽게 보시면 두 아이가 있는데 여기에는 두 민족으로 나누인다고 하시면서, 둘 중에서 한 쪽이 강하대요.


아직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는 아이 이름이 없습니다만, 태어난 후에 붙여진 이름이 형은 에서이고 동생은 야곱입니다.

그러면 보통 아, 형이 동생보다 강하게 될 것이다……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겠다” 즉 이는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그러니까, 동생 야곱이 형 에서보다 더 강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아무리 쌍둥이라 하더라도 위 아래가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냥 형을 강하게 하시면 되잖아요. 그런데 왜 굳이 하나님께서는 형보다 동생을 강하게 하셨냐 하는 것이죠.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답이 나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중에서 13절을 보실까요?

로마서 9장 13절
“13.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3.「わたしはヤコブを愛し、エサウを憎んだ」と書かれているとおりです。

이 말씀은 구약 말라기 1장 2절~3절에 나와 있는 말씀을 요약한 것인데, 여러분께서는 이 하나님의 답을 들으시면 이해가 가시나요?

하나님께서 형 에서가 아닌 동생 야곱을 택하신 이유가 뭐래요? 형 에서는 미워하고 동생 야곱은 사랑했기 때문이래요.

아니, 그런데 잠깐요. 지금 이 두 아이는 어디 있어요? 예, 엄마 리브가 뱃속에 있어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형 에서였다면 이 말을 듣고서 어떻겠습니까. 납득이 가시나요? 아니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나를 미워하는 게 어디 있냐고 그런 말이 안 나오겠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호 하십니다. 망설임이 없으세요.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섬기도록 하겠다. 그 이유는 내가 형 에서는 미워하고 동생 야곱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상 끝. 이게 다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가 있겠지요.

그 의문이 뭐겠습니까. 이거 하나님 조금 이상한 것 아니야? 좀 잘못하신 것 아니야? 그런 의문을 가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은 참 대단합니다. 이런 의문을 우리가 가질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2천년 전에 예상하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바울은 말합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십니다.

로마서 9장 14절
“14.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4.それでは、どのように言うべきでしょうか。神に不正があるのでしょうか。決して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 
이는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럼 하나님이 잘못했다고 할 수 있겠냐 하는 것이지요. 아니다. 절대로 그럴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뭐냐 하면 하나님께는 불의가 없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이와 같은 자세는 비단 이 에서와 야곱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대전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항상 말씀 드리는 세 가지가 믿음과 말씀과 행함입니다. 말씀이 물론 중요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말씀에서 벗어나는 순간, 마치 선로를 벗어난 전철처럼 곤두박질 치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그 말씀에 앞서 우선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 성경을 읽게 되면, 말씀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성경의 시작인 창세기 1장 1절부터 보세요.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はじめに神が天と地を創造された。


이 말씀을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봤다고 생각해보세요. 말이 됩니까. 이 우주는 오래 전에 빅뱅, 그러니까 대폭발이 일어나서 우주가 생겨났고, 그 과정에서 자연의 힘으로 인해서 은하계나 태양계가 생겨나고, 그리고 지구도 생겨난 것이지, 무슨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어……이렇게 되면 그 다음부터 전혀 이 말씀이 우리 마음 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믿음을 가지고 이 말씀을 읽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는 어마어마한 힘을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아, 그래. 지금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 나를 지으신 하나님, 나와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은 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시다.
이 우주 세상 천하 만물을 다 만드신 하나님, 지금 이 순간도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데,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해결하지 못하실 문제가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지 못하실 질병이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私を強くしてくださる方によって、私はどんなことでもできるのです。 
사람의 힘으로는 못하더라도,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슨 문제든 해결해 주실 수 있다.

사람의 힘으로는 치료하지 못하더라도,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슨 질병이라도 치료해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것도 잘못됐다 저것도 잘못됐다 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는 전혀 잘못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이신 이 성경말씀은 전혀 오류가 없다. 잘못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이삭의 아들인 에서와 야곱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여기에 대한 답이 바로 오늘 본문 11절~12절에 나와 있습니다.


로마서 9장 11절~12절
“11.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1.その子どもたちがまだ生まれもせず、善も悪も行わないうちに、選びによる神のご計画が、
12.行いによるのではなく、召してくださる方によって進められるために、「兄が弟に仕える」と彼女に告げられました。


에서와 야곱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이 야곱을 택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택하실 때에는 그 행위에 따라서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즉 하나님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자, 우리 한 번 복습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택하셨습니까. 아니면 선택하지 않으셨습니까. 예, 선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에베소서 1장 22절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また、神はすべてのものをキリストの足の下に従わせ、キリストを、すべてのものの上に立つかしらとして教会に与えられました。

마태복음 18장 20절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二人か三人がわたしの名において集まっているところには、わたしもその中にいるのです。」

요한복음 6장 44절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わたしを遣わされた父が引き寄せてくださらなければ、だれもわたしのもとに来ることはできません。わたしはその人を終わりの日によみがえらせます。

우리가 지금 이렇게 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교회라고 해서 반드시 건물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지요. 예수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주님도 함께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두세 사람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 바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지 않으신다면 아무도 예수님께로 갈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 있다면, 이 곳이야 말로 진정한 교회, 예수님이 머리 되신 교회인 것이요, 우리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이는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예수님께로 인도해주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언제 선택하셨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렇습니다.

에베소서 1장 4절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すなわち神は、世界の基が据えられる前から、この方にあって私たちを選び、御前に聖なる、傷のない者にしようとされたのです。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냐 하면, 하나님께서 야곱을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택하신 것이 너무 일러요? 아니요. 우리를 택하신 것은 엄마 뱃속은 고사하고 우리 조상님들도 태어나기 전, 이 세상이 생겨나기 전에 이미 우리를 예수님 안에서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불평을 하시겠습니까? 불만을 하시겠습니까? 아이, 참, 하나님도 이상하지. 왜 나를 선택하셔서 괜히 구원하고 천국에 가게 만들고 그래……이렇게 불평을 하시겠습니까?

그럴 리야 없겠지요. 그렇다면 불평이나 불만 대신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감사입니다. 이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가 임하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아무 것도 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야곱을 사랑하시고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次のように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義人はいない。一人もいない。

여기서 의인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오랜만에 그 질문 한 번 해볼까요?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겨주신다는 것은 무슨 뜻이었지요?

그렇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진다는 뜻이었지요.

그렇다면 의인은 없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갈라디아서 2장 16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しかし、人は律法を行うことによってではなく、ただ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ことによって義と認められると知って、私たちもキリスト・イエスを信じました。律法を行うことによってではなく、キリストを信じることによって義と認められるためです。というのは、肉なる者はだれも、律法を行うことによっては義と認められないからです。
만약에 의인이 있었다면, 그는 예수님이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필요 없습니다. 자기 힘으로 구원 받아 천국에 갈 수 있어요.
하지만 성경은 뭐라고 기록합니까. 그렇습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기록합니다.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뜻은, 이는 자신의 능력이나 자신의 율법적인 행위만으로 의롭게 되어서 구원을 받을 사람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어, 구원을 받게 되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전에 미국에 있을 때 어느 목사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미국 시민권을 받기 위해서는, 물론 여러 가지 자격도 갖추어야 하고 서류도 필요하다고 하는데, 마지막에는 반드시 면접을 보아야 한다고 해요. 그래서 질문에 잘 대답을 해야지만 합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 목사님은 시민권을 가지고 계셨는데, 이번에는 이 목사님의 어머님께서 시민권 면접을 받게 되셨다고 해요.

그 때도 벌써 목사님 연세도 많으셨으니까 목사님 어머님은 훨씬 더 고령이셨겠지요. 그런데 미국 시민권 면접에서는, 당연히 영어로 물어보면 영어로 대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 어머님께서도 이거 떨어지면 안 된다고 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셨다고 해요.

자, 이제 면접 당일이에요. 이 고령이신 어머님이 얼마나 긴장을 하셨겠어요. 이제 어머님 차례가 와서, 면접 보는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자리에 앉으니까 서류를 보던 면접관이 영어로 질문을 하더래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이름은 무엇입니까.” (링컨 16대, 케네디 35대, 조 바이든 46대, 키시다 101대, 문재인 19대)

자, 미국의 초대 대통령 이름이 누구죠? 예, “조지 워싱턴”이죠.

당시 미국 대통령은 빌 클린턴 대통령일 때였는데, 이 어머님이 긴장을 하셨어요. 그래서 그 문제도 분명히 전날에 공부해 간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조지 워싱턴”이라고 대답해야 하는 것을, “조지 클린턴”이라고 대답해 버렸대요.

그러니까 오히려 면접관이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어머님이 눈치를 채시고는, 아차차차…… 그러면서 다시 “조지 워싱턴”이라고 대답을 했대요.

그러자 이 말을 들은 면접관이 뭐라고 했냐 하면, 딱 한 마디,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굿”이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이 질문 하나로 면접이 끝났대요.

뭐, 젊은 사람들한테는 이런저런 어려운 질문들도 많이 하고 그러겠지만, 나이도 많으신 분이라고 해서 좀 봐 주었는지도 모르죠. 딱 그 질문 하나만 하고 통과하셨다고 해요. 그리고 무사히 시민권을 받을 수 있었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そして、人間には、一度死ぬことと死後にさばきを受けることが定まっているように、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반드시 그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여러분께 묻습니다.

“너는 무엇으로 구원 받는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아, 제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주었고요, 교회를 얼마나 많이 세웠고요, 얼마나 많은 봉사를 했고요, 얼마나 많은 학위를 땄고요, 얼마나 많은 직분도 받았고요, 얼마나 많이 착한 일도 했고요…….

그러시겠습니까. 이는 무슨 말이에요? 다 자기가 잘 나서, 자기가 노력해서, 자기의 힘으로 구원을 받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천국 시험에 합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대답하셔야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 하실까요.

분명 엄지를 세우시면서 “굿”이라고 하시고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을 활짝 열어주실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의 행위가 아닌, 한량없는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 드리며,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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