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 목사 설교

[설교동영상/본문] 제321회 우리를 보내시는 주님

홍성필 2022. 2. 9.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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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1회 우리를 보내시는 주님
2022년 1월 2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kirin.kr
kirin@kirin.kr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9절~21절
“19.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19節~21節
“19.被造物は切実な思いで、神の子どもたちが現れるのを待ち望んでいます。
20.被造物が虚無に服したのは、自分の意志からではなく、服従させた方によるものなので、彼らには望みがあるのです。
21.被造物自体も、滅びの束縛から解放され、神の子どもたちの栄光の自由にあずか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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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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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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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66번째 시간으로서 “우리를 보내시는 주님” 私たちを遣わされる主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자, 오늘 말씀인데,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이해가 되십니까.

다시 한 번 읽어드리겠습니다.

로마서 8장 19절~21절
“19.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19.被造物は切実な思いで、神の子どもたちが現れるのを待ち望んでいます。
20.被造物が虚無に服したのは、自分の意志からではなく、服従させた方によるものなので、彼らには望みがあるのです。
21.被造物自体も、滅びの束縛から解放され、神の子どもたちの栄光の自由にあずかります。


이해를 좀 돕기 위해서 생명의말씀사에서 나온 ‘현대인의 성경’을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로마서 8장 19절~21절

19.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20.피조물이 헛된 것에 복종한 것은 스스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21.그래서 그것들도 썩어질 것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리는 영광스런 자유를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 피조물들이 헛된 것에 복종하고 있는데, 그것은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헛된 것에 복종하도록 하셨대요.

그래서 피조물들도 썩어질 것, 그러니까 헛된 것에 대한 복종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리는 자유를 누리기를 원한대요.

이 말씀에 대해서 주석서들을 찾아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대로 읽어드리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 나오는 ‘피조물’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구원의 초점을 인간에게 맞추었으나 이제는 보다 영역을 넓혀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이것은 장차 있게 될 성도의 영광이 성도들뿐 아니라 전체 피조물의 회복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다른 피조물조차 악의 지배를 받게 되어 전 우주가 무질서 가운데 빠졌다.”

또 다른 주석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이제 바울은 고도의 문학적인 기법을 통해서 전체 피조물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놀란 세상에 나타나게 될 때를 고대하고 있는 모습으로 의인화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아담이 죄를 범했을 때 그의 범죄는 인류만이 아니라 생물과 무생물을 망라한 모든 피조물에게 영향을 끼쳤다. 땅이 저주를 받는다. 많은 야생동물들이 무참히 죽어간다. 질병이 날짐승과 뭍짐승 및 물고기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죄의 결과는 충격파와 같이 모든 피조물에게로 파문이 미쳤다.

따라서 바울의 설명대로 피조물이 허무와 좌절과 혼돈에 굴복한 것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첫 조상의 불순종으로 인한 하나님의 선언에 의한 것이다.


피조물은 에덴에서 존재하던 이상적인 상태를 회고한다. 그리고 죄의 유입으로 말미암은 재앙을 둘러본다. 그들은 항상 이상적인 상태로 복귀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는데 그 때가 이르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 중에 나타나는 그 영광스런 시대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피조물 자신도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될 것이다.”

즉 이 주석들의 주장에 의하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피조물’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이나 땅이나 산이나 바다나 동물이나 식물 같은, 말하자면 사람 외의 모든 것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에덴에서 사람이 범죄를 저지름으로 인해서 사람 외의 모든 피조물들까지도 저주를 받았다는 것이에요.

지금도 자연재해나 환경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사람으로 인해서 이 세상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래서 그런 자연세계에 있는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이런 식으로 설명을 해놓았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성경 본문과 이 해석을 비교해볼 때, 아무리 읽어봐도 이와 같은 주장이 전혀 와 닿지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생물이나 무생물을 막론하고 모두 저주를 받았다?

생각해보십시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린 왕이 누구입니까. 그는 바로 이스라엘 3대 왕인 솔로몬입니다.

솔로몬 왕이 누렸던 풍요로움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열왕기상 10장 21절
“솔로몬 왕이 마시는 그릇은 다 금이요 레바논 나무 궁의 그릇들도 다 정금이라 은 기물이 없으니 솔로몬의 시대에 은을 귀히 여기지 아니함은”


ソロモン王が飲み物に用いる器はすべて金であった。「レバノンの森の宮殿」にあった器もすべて純金で、銀の物はなかった。銀は、ソロモンの時代には価値あるものとは見なされていなかった。

그 중 하나의 예로 솔로몬이 마시는 그릇은 다 순금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이는 솔로몬만이 아니라 당시에는 은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만큼 풍요로웠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리고 또 성경은 기록합니다.

열왕기상 10장 23절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세상의 그 어느 왕보다 큰지라”

ソロモン王は、富と知恵において、地上のどの王よりもまさっていた。

요즘은 대통령이나 총리보다도 더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은 많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당시에는 왕보다 더 많은 부귀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은 당시 전세계에서 가장 재산이 많고 지혜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이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부귀영화를 누렸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 27절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草花がどのようにして育つのか、よく考えなさい。働きもせず、紡ぎもしません。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栄華を極めたソロモンでさえ、この花の一つほどにも装ってはいませんでした。”

솔로몬이 누린 모든 영광이 한낱 백합화 한 송이가 입은 영광 보다도 못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와 같은 백합화도 저주를 받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모든 피조물들 중에서 백합화는 유일하게 저주를 받지 않은 피조물이라는 뜻입니까.

그리고 그보다 앞에 보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 24절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烏のことをよく考えなさい。種蒔きもせず、刈り入れもせず、納屋も倉もありません。それでも、神は養っていてくださいます。あなたがたには、その鳥よりも、どんなに大きな価値があることでしょう。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마저도 기르신다고 하는데,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저주를 받았다고 한다면, 까마귀나 다른 새들도 역시 저주를 받았다는 뜻인데, 그 저주를 받은 까마귀도 하나님께서 기르신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인가요?


그리고 또 이와 같은 성경 주석의 설명이 옳다고 한다면, 아니 왜 갑자기 뜬금없이 사도 바울이 사람 외의 피조물에 대한 언급을 하는지, 생물이나 무생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기다린다고 하는 말을 갑자기 언급하는지를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서 다른 목사님들께서 적어놓으신 글들을 봤는데 역시 하나같이 그 성경 주석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점에 대해서 적지 않은 의문을 갖습니다.

성경은 누구를 위한 책입니까. 다시 말해서 누구더러 읽으라고 적힌 말씀입니까. 이는 바로 우리 읽으라고 적힌 글이요, 우리를 위해 기록된 하나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물론 사람 외의 다른 피조물에 대한 글이 있기는 합니다.

출애굽기 34장 26절 후반부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あなたは子やぎをその母の乳で煮てはならない。”

하나님께서는 요리를 위해 염소 새끼 고기를 삶을 때에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이와 같은 문화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기 전에, 그 때까지 가나안 땅에 있었던 이방인들에게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새끼 염소를 삶을 때에 그 어미의 젖으로 삶으면 맛이 더 좋아진다고 하는 그들의 미신적인 문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이방인들의 문화를 따르지 말라고 하셨던 것이 이를 금하셨던 첫번째 이유라고 합니다.

그리고 둘째 이유라고 한다면 이는 사람을 위한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본래 어미의 젖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새끼를 기르기 위한, 말하자면 생명을 지키고 성장시키기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미의 젖을 오히려 새끼 염소를 죽이고 먹기 위해서 사용한다는 것은 이는 너무나도 잔인한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한테 잔인한 행위이겠습니까.

제가 염소를 너무 과소평가한다는 말씀을 들을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솔직히 어미 염소나 새끼 염소가 누구 젖으로 무엇을 삶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어미 염소가 자기 젖으로 자기 새끼를 삶는다는 것을 알겠습니까. 만에 하나 안다고 해서 사람들한테 항의하겠습니까.

이 말씀은 염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사람을 위한 말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반복해서 그들의 문화를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생명에 대해서 아끼는 마음을 갖도록 함으로써, 나아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할 것을 원하셨기에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는 염소를 위한 말씀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말씀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그와 같이, 그러니까 본문에 나오는 ‘피조물’을 우리 인간 외의 모든 사물이라고 해석하게 된다면 앞뒤가 말이 안 맞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등장하는 ‘피조물’이라고 하는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이는 바로 19절과 21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 ‘하나님의 자녀들’과 대조되는 의미, 즉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이해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은 어떻게 해석이 될까요.


먼저 본문부터 다시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8장 19절~21절
“19.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19.被造物は切実な思いで、神の子どもたちが現れるのを待ち望んでいます。
20.被造物が虚無に服したのは、自分の意志からではなく、服従させた方によるものなので、彼らには望みがあるのです。
21.被造物自体も、滅びの束縛から解放され、神の子どもたちの栄光の自由にあずかります。

피조물 즉 믿지 않은 사람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 그러니까 구원받은 영혼들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믿지 않은 사람들은 허무한 데에 굴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자기가 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굴복하도록 만드셨다는 거예요.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썩어지는 것에 대한 종 노릇, 즉 허무한데 굴복하는 데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과 자유에 이르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말씀으로 이해를 하여야 하겠습니다.

자, 그러면 먼저 20절과 21절을 해석한 다음에 19절로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8장 20절~21절
“20.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0.被造物が虚無に服したのは、自分の意志からではなく、服従させた方によるものなので、彼らには望みがあるのです。
21.被造物自体も、滅びの束縛から解放され、神の子どもたちの栄光の自由にあずかります。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허무한 데에 굴복을 합니다. 허무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는 전혀 유익한 것이 없는, 반대로 완전히 무익하고 오히려 악하기만 한 것에 굴복합니다.

오늘 교회 오시는 길에 못 보셨습니까. 그렇다면 가시는 길에 보십시오. 이 추운 날에도 불구하고 우상들한테 돈을 바치고 절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들어가는지 모릅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지만 갈급함이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붙잡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어요. 하지만 무엇을 붙잡아야 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헛된 우상들한테 돈을 바치고 마음을 바치면서 그것들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의하면 이는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굴복하게 하시는 것이라고 기록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는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출애굽기 7장 3절~5절을 한 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7장 3절~5절
“3.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4.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5.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

わたしはファラオの心を頑なにし、わたしのしるしと不思議をエジプトの地で数多く行う。
しかし、ファラオはあなたがたの言うことを聞き入れない。そこで、わたしはエジプトに手を下し、大いなるさばきによって、わたしの軍団、わたしの民イスラエルの子らをエジプトの地から導き出す。
わたしが手をエジプトの上に伸ばし、イスラエルの子らを彼らのただ中から導き出すとき、エジプトは、わたしが主であることを知る。」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모세를 보내서 노예 생활에 괴로워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에서 구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모세가 바로 왕을 만나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내보내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내가 데리고 갈게.” 라고 말하자, 바로가 말하기를 “오오. 그렇다면 어서 데리고 가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해서 좀처럼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출애굽기 8장 10절 후반부에서 모세는 애굽 왕 바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출애굽기 8장 10절 후반부
“……왕에게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니”

それは、あなたが、私たちの神、主のような方はほかにいないことを知るためです。

만약에 모세가 애굽 왕 바로에게 가서 말하기를,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라고 하셨으니까 당장 내보내라……라고 했을 때 즉시 이를 승낙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렇게 되었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애굽 왕을 주목했을 것입니다. 은혜로운 바로 왕, 자비로운 바로 왕……이라면서 하나님이 아닌 바로 왕에게 감사와 영광을 돌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서 진정으로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것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바로 왕을 완악하게 해서, 하나님이 여러 가지 재앙을 내리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안 내보내려고 합니다.

이제 마지막에 가니까 바로의 신하들이 뭐라고 합니까.

출애굽기 10장 7절
“바로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하고”

家臣たちはファラオに言った。「この男は、いつまで私たちを陥れるのでしょうか。この者たちを去らせ、彼らの神、主に仕えさせてください。エジプトが滅びるのが、まだお分かりにならないのですか。」

이제 애굽의 신하들까지 난리입니다. 계속되는 재앙으로 이제 애굽은 망했습니다. 어서 저들 이스라엘 자손들을 내보내셔야 합니다. 이렇게 아우성을 칩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재앙, 애굽에서 사는 각 집안의 장자가 죽는 열 번째 재앙을 당하고서야 애굽 왕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내보내게 됩니다.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자 그 누구도 바로 왕에게 감사하는 사람들이 없어요. 이스라엘 자손만이 아니라 애굽 사람들이 보기에도 바로의 자비로 내보낸 것이 아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내보냈다고 하는 사실이 너무나도 명백하게 드러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로지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분, 영광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6년전에 여기 군마로 와서 교회 상항을 보니까, 이건 뭐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아, 교회만 가지고는 도저히 먹고 살 수가 없겠다 해서, 여러 가지 다른 일을 해보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만약에 제가 교회 만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해가면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이는 누구 노력이겠습니까.


그렇죠. 제가 열심히 일해서, 정말 평일에는 직장에 다니고 주일에는 예배를 인도하고, 뭐 이렇게 주7일, 1년 365일을 열심히 세상 일도 하고 주님 일도 하고 그랬더니 생활이 유지가 되더라……라고 하면 이로 인해서 칭찬을 받는 건 누구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저 자신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힘이 아니라, 내 힘과 내 노력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증거로 제가 그 동안 해왔던 세상적인 다른 모든 일들이 막히게 됩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냐 하면 오로지 하나님 일만 할 수밖에 없게 되고, 밤이나 낮이나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못 버틸 줄 알았습니다. 이제 교회도 텅텅 비고 다른 일도 할 수 없게 되고 하니 버틸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몇 개월만 버티다가 안 되면 한국으로 돌아가자……그렇게 다짐했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부터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한국과 일본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께서 기도와 섬김의 손길로 이렇게 지금까지 올 수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만, 일이 이렇게 되니,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들은, 내 힘과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는 일이라고,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일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지요.

오로지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 영광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それから、イエスは彼らに言われた。「全世界に出て行き、すべての造られた者に福音を宣べ伝えなさい。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님을 멀리 하고 오로지 우상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전하고 예수님을 전해도 좀처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어디 그 뿐인가요. 때로는 얼마나 심한 말을 하는지 모릅니다. 저도 메일을 보내면 참 심한 말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저는 그 분이 누구인지 알아요. 무슨 마구잡이로 메일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적으로 나와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이니까 그 분의 이름이 무엇이고 직업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인터넷에 나와 있는 분들은 그래도 대체적으로 웬만큼 배운 분들이고 웬만큼 교양이 있는 분들입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리도 심한, 정말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는지 몰라요.


그런데 왜 복음을 전합니까. 우리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으니까 전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면 가는 곳마다 복음이 전해지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불만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러니까 우리가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셨을 때도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지 못했는데, 모세보다 못해도 한참 못한 제가 한다고 해서 어찌 단번에 모든 일들이 성사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만약 제가 복음을 전하니까 그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변화를 받아요. 그렇게 된다면 어쩌면 사람들은 주님을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저를 주목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를 완악하게 하신 것이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시기 위해서였다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헛된 우상에 복종하고 있는 것은 이 또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드러내시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여보세요. 당신들의 답답한 심정을 압니다. 그러나 우상들에게 아무리 절을 해봐야. 우상들을 아무리 의지하려고 해봐야, 그건 헛것입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경배하고 의지해야 할 분은, 우리를 위해 채찍을 맞으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려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부활해 주신 예수님을 믿는 그 길 뿐이라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로마서 1장 23절~25절과 오늘 본문을 비교해봅니다.



먼저 로마서 1장 23절~25절

“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3.朽ちない神の栄光を、朽ちる人間や、鳥、獣、這うものに似たかたちと替えてしまいました。
24.そこで神は、彼らをその心の欲望のままに汚れに引き渡されました。そのため、彼らは互いに自分たちのからだを辱めています。
25.彼らは神の真理を偽りと取り替え、造り主の代わりに、造られた物を拝み、これに仕えました。造り主こそ、とこしえにほめたたえられる方です。アーメン。


그리고 오늘 본문인 로마서 8장 19절~21절입니다.

로마서 8장 19절~21절
“19.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19.被造物は切実な思いで、神の子どもたちが現れるのを待ち望んでいます。
20.被造物が虚無に服したのは、自分の意志からではなく、服従させた方によるものなので、彼らには望みがあるのです。
21.被造物自体も、滅びの束縛から解放され、神の子どもたちの栄光の自由にあずかります。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허무한 데 굴복하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 백 년 동안 노예 살이를 하도록 내버려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3장 10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今、行け。わたしは、あなたをファラオのもとに遣わす。わたしの民、イスラエルの子らをエジプトから導き出せ。」

이제 이와 같이 주님께서는 우리를 보내십니다.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しかし、聖霊があなたがたの上に臨むとき、あなたがたは力を受けます。そして、エルサレム、ユダヤとサマリアの全土、さらに地の果てまで、わたしの証人となります。」

일부에서는 이 땅끝이 예루살렘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 근거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곳이 예루살렘이고, 그리고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땅끝은 바로 예루살렘을 가리킨다는 주장이에요.


그러면서 또 마태복음 24장 14절을 근거로 듭니다.

마태복음 24장 14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御国のこの福音は全世界に宣べ伝えられて、すべての民族に証しされ、それから終わりが来ます。

그러니까 지구를 한 바퀴 삥 돌아서 땅끝인 예루살렘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기 때문에, 예루살렘 선교에 힘을 써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게 사실입니까. 만약에 이게 사실이라면 한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우리 모두 당장 예루살렘으로 가야지요. 그게 진정한 예수님의 명령이라면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불순종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성경을 자꾸만 그렇게 사람의 생각으로 풀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땅끝, 주님께서 우리를 보내신 땅끝은 어디입니까. 그것은 바로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우리 이웃, 허무한 우상에 굴복하고 있는 우리 이웃, 진정한 하나님, 진정한 구세주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영광과 자유에 이르게 해야 하는 우리 이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보내신 땅끝인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중에서 19절을 봅니다.

로마서 8장 19절
“19.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19.被造物は切実な思いで、神の子どもたちが現れるのを待ち望んでいます。

믿음이 없는 분들은 그 영적인 괴로움 속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로지 예수님을 믿는 것일 뿐이며,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의 손길을 진정으로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わたしが道であり、真理であり、いのちなのです。わたしを通してでなければ、だれも父のみもとに行くことはできません。

우리가 구원을 받는 길,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님을 통해서 가는 길 그 하나 뿐이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해 2022년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보내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먼 옛날 애굽으로 모세를 보내셨던 것처럼, 아직 믿음이 없는 우리 이웃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보내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제 이와 같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진정한 땅끝인 우리 이웃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모세보다도 더욱 충성된 하나님의 자녀로 쓰임을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으로부터 크나큰 축복을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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