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 목사 설교

[설교동영상/본문] 제312회 사랑으로 이루신 주님

홍성필 2021. 11. 3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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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2회 사랑으로 이루신 주님
2021년 11월 7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절~4절
“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3節~4節
“3.肉によって弱くなったため、律法にできなくなったことを、神はしてくださいました。神はご自分の御子を、罪深い肉と同じような形で、罪のきよめのために遣わし、肉において罪を処罰されたのです。
4.それは、肉に従わず御霊に従って歩む私たちのうちに、律法の要求が満たされるためな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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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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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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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58번째 시간으로서 “사랑으로 이루신 주님” 愛によって成し遂げられた主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요즘 가을이 되면 여기저기에서 단풍 소식이 들려옵니다. 올해의 경우 저희는 아직 못 갔습니다만, 특히 자연이 넘치는 이곳 군마현의 경우를 보면 조금만 나가도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특히 화려한 것은 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한국도 물론 그렇습니다만 특히 일본은 벚꽃이 국화라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벚나무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매년 봄이 되면 시내라고 하더라도 여기저기에서 화려하게 자태를 자랑하는 벚꽃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계절에는 정말 어디를 찍어도, 조금 과장을 하자면 눈을 감고 대충 카메라 셔터를 눌러도 멋진 사진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 로마서를 보면 마치 그와 같은 풍경이 떠오릅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로마서 어디를 도려내서 본다 하더라도, 마치 봄철에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곳에서 사진을 찍듯이 어디를 보더라도 진정한 복음 중의 복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보십시오. 이 말씀 또한 진정한 복음 중의 복음, 주님의 말씀이 넘치는 구절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른바 법치국가에 있어서 법이라고 하는 것은, 이 법을 지키기만 한다면 자유와 평등사회, 평화로운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입법부인 국회에서는 많은 법을 만들고 행정부에서는 이 법에 따라서 정책을 추진하고, 여기에 있어서 문제가 생긴다면 사법부에서 이를 판단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 율법을 통해서 진정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되는 것이요,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나라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나도 연약해서, 너무나도 부족해서 우리는 율법을 온전히 이룰 수가 없습니다. 율법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법을 지키지 않으면 범죄자가 되는 것처럼,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우리는 율법 아래에서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즉 율법이 요구하는 조건들을 모두 충족 시켜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일거수일투족이 죄에서 시작하여 죄로 끝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을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느냐 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천국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마태복음 7장 28절~29절
“28.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イエスがこれらのことばを語り終えられると、群衆はその教えに驚いた。
イエスが、彼らの律法学者たちのようにではなく、権威ある者として教えられたからである。

그 때까지의 서기관들, 율법학자들, 바리새인들이 전하는 말들은 그 속에서 소망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구원을 맛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을 하지 말라. 저것을 하지 말라. 이것을 하면 벌받는다. 저것을 하면 벌받는다 하면서, 백성들에게 자꾸만 무거운 짐들을 지우게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소망은 고사하고 마음이 우울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어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사람들 마음 안에 들어오게 되자 기쁨이 넘쳐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됩니다.

아, 하나님이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시는구나. 하나님이 우리를 죄 가운데에서 진정으로 구원하시기를 원하고 계시는구나. 이와 같은 기쁨과 소망이 넘쳐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돼요. 이제는 사람들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를 이제 확실이 구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니까 그 때까지 진짜였던 척을 했던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의 권위가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전하지 않는다고 퍼뜨리고 다닙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자 그들은 뭐라고 말합니까.

마가복음 3장 22절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また、エルサレムから下って来た律法学者たちも、「彼はベルゼブルにつかれている」とか、「悪霊どものかしらによって、悪霊どもを追い出している」と言っていた。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역사를 보고 그들이 한 말은, 예수님이 마귀 사탄의 힘으로 이와 같은 일을 행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예전에 제 기억이 떠오릅니다. 제가 이제 학교를 갓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인데, 그 때 첫 직장에서 처음 근무했던 부서가 기획실이었거든요. 보통 기획실은 사장실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당시 저는 입사한지 몇 개월 안 된 신입사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무실에 앉아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나이 드신 할아버지가 혼자 쓰윽 들어오더니, 누구한테 뭘 물어보거나 하는 것도 없이 곧바로 사장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그 날은 사장님이 외부에 나가 계셨던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사장님 비서도 자리를 비우고 있었던 찰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노인네 한 분이 들어와서 텅 빈 사장실에 혼자 들어가니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저는 그냥 멍하니 있었더니, 옆 부서인 관리부 선배가 저를 보고 하는 말이, 가만히 보고만 있어?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황급히 사장실에 가보니까, 사장실에 있는 접대용 쇼파 중에서 제일 상석에 혼자 앉아 있더라고요.

순간 저도 어이가 없었습니다만, 그렇다고 나이 드신 분이신데 다짜고짜 끌어낼 수도 없고 해서 조심스럽게 그 분을 보고 “저……누구시죠……?” 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저를 슬쩍 보고 하시는 말이, “아, 모르는구만……” 이 한 마디를 해요.

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있었는데, 저기서 제 직속 상사인 기획실장이 황급하게 달려와요. 그러면서 저한테, 저리 비키라고 손짓을 합니다. 그래서, 아, 자기가 끌어내려고 하나보다 했더니만, 이 기획실장님이 사장실 입구에서 그 분한테 90도 인사를 하고 들어가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그 나이 드신 할아버지가 누구였냐 하면 제가 들어간 회사의 그룹 회장님이셨습니다.

그럼 저는 자기가 입사한 회사의 회장님 얼굴을 왜 몰랐느냐 하면, 그때까지의 대주주였던 회사에 문제가 생기고, 그래서 막 그때가 다른 회사로 인수가 된지 얼마 안된 시기였거든요. 그리고 그 할아버지가 제가 들어간 회사를 인수한 회사의 회장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뭐 어디에 사진이 걸려 있는 것도 아니고, 입사 시험 때 면접관으로 들어왔던 것도 아니고 하니까 제가 알 길이 없었던 것이지요.

참고로 저한테 가보라고 했던 그 관리부 선배도 사실 그 양반이 누구인지 몰랐다는 거예요.

결국 이렇게 되니까 말단 신입사원이 그룹 회장님한테 “저……누구시죠……?” 라고 말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참 민망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도 이와 비슷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에서는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본체(神の御姿)”시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등한 조물주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에 예수님께서 가시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가시는 곳마다 맹인이 보게 되고,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사람이 듣게 되며, 죽은 자가 살아나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예수님이 가시면 누가 먼저 알아보냐 하면, 영적인 존재인 마귀들이 먼저 알아봅니다.

마태복음 8장 29절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すると見よ、彼らが叫んだ。「神の子よ、私たちと何の関係があるのですか。まだその時ではないのに、もう私たちを苦しめに来たのですか。」

누가복음 4장 34절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ああ、ナザレの人イエスよ、私たちと何の関係があるのですか。私たちを滅ぼしに来たのですか。私はあなたがどなたなのか知っています。神の聖者です。」

마귀들은 예수님이 그냥 다가가시기만 해도 먼저 알아보고 벌벌 떱니다. 그러나 이를 누가 모르느냐 하면, 그렇습니다. 혼자서 똑똑한 척만 하는 사람들은 정작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당대에 똑똑하다고 자랑했던 대제사장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왜곡시킨다고 주장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주장 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마태복음 5장 17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わたしが律法や預言者を廃棄するために来た、と思ってはなりません。廃棄するためではなく成就するために来たのです。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논리로 하신다는 것이냐 하면, 바로 그 방법이 오늘 본문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8장 3절~4절
“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3節~4節
“3.肉によって弱くなったため、律法にできなくなったことを、神はしてくださいました。神はご自分の御子を、罪深い肉と同じような形で、罪のきよめのために遣わし、肉において罪を処罰されたのです。
4.それは、肉に従わず御霊に従って歩む私たちのうちに、律法の要求が満たされるためなのです。”

예를 들어서 어떤 왕이 있었습니다. 그 나라에는 왕이 직접 만든 법이 있는데, 그런데 백성들이 죄를 지었어요. 왕은 백성들의 죄를 해결해주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때까지 있었던 법을 없애요? 만약에 법을 없앤다고 한다면 그것은 왕이 스스로 선포했던 법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어떠한 방법으로 해결하기를 원했느냐 하면, 일단 외국에 살고 있는 자기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얘야, 잘 지내니? 네가 좀 내 백성이 사는 나라로 가 줘야겠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가 다스리는 나라로 갔습니다.

그렀더니 아버지가 또 말씀하십니다. 외교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까 네가 살고 있던 나라 국적을 버리고 죄 많은 백성들이 사는 국적을 취득해라.

그래서 아들은 왕이신 아버지의 말씀대로, 자기가 살던 좋은 나라의 국적을 포기하고, 죄 많은 나라로 귀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이 한 장을 보여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 종이에 싸인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자신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하는 자백서입니다.

참으로 황당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 아들은 아무런 죄도 지은 적이 없습니다. 죄는 그 나라 백성들이 지었습니다. 그런데 왕인 아버지는 아들한테 그 자백서에 싸인을 하라는 거예요.

네가 싸인을 하면 저 죄 많은 백성들이 구원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싸인을 했어요.

그러자 왕인 아버지는 말합니다. 내가 판결을 내리겠다. 내 백성들은 무죄. 그리고 내 아들 너는 사형!

이렇게 해서 죄 많은 백성들은 용서를 받았고, 반면에 아무런 죄가 없는 왕의 아들은 백성들의 죄를 모두 다 뒤집어쓴 채로 죽었습니다.

만약에 이런 옛날 동화 이야기가 있었더라면 지금까지 남아 있었을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하면서 벌써 사라져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원하셨습니다. 구원하시는 방법은 율법을 없애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을 없앤다는 것은 성경 모두를 부정하는 것이요, 하나님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루기를 원하셨느냐 하면, 우선 죄 없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죄 있는 사람이 벌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자기의 죄로 인해서 벌을 받게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이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이 있냐 하는 것이지요.

성경은 뭐라고 기록합니까.


로마서 3장 10절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次のように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義人はいない。一人もいない。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죄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의롭게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게 아니라 한 사람도 없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 예, 죄가 없는 온전한 예수님이 감당하실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아니에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십니다. 조물주 하나님이세요. 반면에 율법은 누가 지켜야 할 법입니까. 그렇죠. 사람이 지켜야 할 법입니다.

예를 들어서 한국이나 일본이나 그 나라 법으로 외국에서 잘 살고 있는 외국인을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에 그랬다가는 외교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생기게 되겠지요.

하지만 그 외국인이 우리나라로 들어와서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면 이제 그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이 된 것이니까 아무런 외교적인 문제 없이 처벌할 수가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인 우리가 율법을 어겨서 벌을 받아야 하는데, 내국인을 대신해서 외국인이 벌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을 대신해서 하나님이 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을 대신해서 벌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일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성자 하나님의 모습으로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아니라,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이 땅에 보내주시고는 우리의 모든 죄를 그 아들에게 모두 덮어씌우시고, 율법을 어기면 죽음에 처하라는 율법 규정 그대로 그 유죄판결을 내리고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으로써 율법을 모두 이루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율법 앞에서 죄인입니다. 아무도 율법 앞에서 나는 죄가 없다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율법 앞에서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죽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예수님께서 다 받아 주셨습니다.

여러분께서는 혹시 전 사형수라는 말씀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말인데 일본에서는 전 사형수 元死刑囚 라는 말인데 이는 사형이 집행된 사형수에게 사용합니다. 이는 무슨 말이냐 하면 이미 사형이 집행된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사형수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즉, 사형수는 이미 죽음으로써 자신의 죄값을 치렀기 때문에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율법적으로 보았을 때 죄인인 우리를 대신해서, 죄가 없는 예수님이 우리와 똑 같은 죄인의 모습으로 오셔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로 인해서 우리의 죄가 모두 사해지고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행전 16장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장면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16장 29절~32절
“29.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看守は明かりを求めてから、牢の中に駆け込み、震えながらパウロとシラスの前にひれ伏した。
そして二人を外に連れ出して、「先生方。救われるためには、何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か」と言った。
二人は言った。「主イエスを信じなさい。そうすれば、あなたもあなたの家族も救われます。」
そして、彼と彼の家にいる者全員に、主のことばを語った。

저는 얼마 전에 어떤 신앙이 없는 분으로부터 대단히 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질문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을 여러분께서 들으셨다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어쩌면 많은 분들이, 교회에 오래 다니셨다고 해도 의외로 많은 분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올바른 믿음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넘치는 축복을 못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병이 낫는다? 예수님을 믿으면 부자가 된다?

예,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질병을 고쳐 주십니다. 우리를 부요하게도 해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단순히 그것 만을 믿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큰 오해가 될 수가 있습니다.

왜 예수님을 믿으면 병이 낫습니까. 왜 예수님을 믿으면 문제가 해결됩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로 인해서 우리가 받아야 할 채찍을, 우리가 받아야 할 고난을,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그리고 우리가 받아야 할 죽음을,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모두 받아 주심으로 인해서 우리의 죄가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병이 나음을 받을 자격이 주어졌고, 우리의 문제가 해결될 자격이 주어졌고, 우리가 축복을 받을 자격이 주어졌고,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천국으로 들어갈 자격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생각해보세요.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죄로 인하여 내일 당장 멸망하게 된다면, 아무리 내 질병이 나음을 받고, 아무리 큰 돈을 벌고, 아무리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슨 기쁨이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축복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십자가를 통해서 사랑으로 이루신 주님께 감사하며,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받은 죄인으로서,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과 동행하여, 마침내 기쁨으로 주님 품에 안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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