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 목사 설교

[설교동영상/본문] 제284회 믿음의 발걸음

홍성필 2021. 7. 3.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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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회 믿음의 발걸음
2021년 4월 25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4장 17절~22절
"17.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4章 17節~22節
"17.「わたしはあなたを多くの国民の父とした」と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彼は、死者を生かし、無いものを有るものとして召される神を信じ、その御前で父となったのです。
18.彼は望み得ない時に望みを抱いて信じ、「あなたの子孫は、このようになる」と言われていたとおり、多くの国民の父となりました。
19.彼は、およそ百歳になり、自分のからだがすでに死んだも同然であること、またサラの胎が死んでいることを認めても、その信仰は弱まりませんでした。
20.不信仰になって神の約束を疑うようなことはなく、かえって信仰が強められて、神に栄光を帰し、
21.神には約束したことを実行する力がある、と確信していました。
22.だからこそ、「彼には、それが義と認められた」ので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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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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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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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30번째 시간으로서 “믿음의 발걸음” 信仰の歩み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7장 5절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あなたの名は、もはや、アブラムとは呼ばれない。あなたの名はアブラハムとなる。わたしがあなたを多くの国民の父とするからである。

하나님께서는 너의 자손을 끊어지지 않게 해 주시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한 나라를 주시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있어서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그들이 가장 원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첫째 기도 제목이었던 셈이지요.


창세기 15장 1절~6절
"1.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1.これらの出来事の後、主のことばが幻のうちにアブラムに臨んだ。「アブラムよ、恐れるな。わたしはあなたの盾である。あなたへの報いは非常に大きい。」
2.アブラムは言った。「神、主よ、あなたは私に何を下さるのですか。私は子がないままで死のうとしています。私の家の相続人は、ダマスコのエリエゼルなのでしょうか。」
3.さらに、アブラムは言った。「ご覧ください。あなたが子孫を私に下さらなかったので、私の家のしもべが私の跡取りになるでしょう。」
4.すると見よ、主のことばが彼に臨んだ。「その者があなたの跡を継いではならない。ただ、あなた自身から生まれ出てくる者が、あなたの跡を継がなければならない。」
5.そして主は、彼を外に連れ出して言われた。「さあ、天を見上げなさい。星を数えられるなら数えなさい。」さらに言われた。「あなたの子孫は、このようになる。」
6.アブラムは主を信じた。それで、それが彼の義と認められた。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큰 상을 주시겠다, 큰 축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한 말은 무엇이었습니까.

창세기 15장 2절을 다시 한 번 보실까요?

창세기 15장 2절
“2.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2.アブラムは言った。「神、主よ、あなたは私に何を下さるのですか。私は子がないままで死のうとしています。私の家の相続人は、ダマスコのエリエゼルなのでしょうか。」

이 말씀을 생명의 말씀사에서 나온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현대인의 성경판 창세기 15장 2절
“그러나 아브람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주 여호와여, 나는 자식이 없어 내 재산을 상속할 자가 다마스커스의 엘리에셀뿐입니다. 그런데 나에게 주의 상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는 무슨 뜻입니까.

“에휴, 제가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우리 아이 하나 갖는 것인데, 제게는 상속자가 없으니 그냥 저 하인인 엘리에셀에게 다 물려줄랍니다. 아이 하나 없는 상황에서 아무리 하나님께서 큰 상이나 축복을 주신다고 한들, 내 아이 것이 아닌 저 하인 것이 될 텐데,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지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렇게 하소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5장 4절~5절
“4.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4.すると見よ、主のことばが彼に臨んだ。「その者があなたの跡を継いではならない。ただ、あなた自身から生まれ出てくる者が、あなたの跡を継がなければならない。」
5.そして主は、彼を外に連れ出して言われた。「さあ、天を見上げなさい。星を数えられるなら数えなさい。」さらに言われた。「あなたの子孫は、このようになる。」


이처럼 하소연을 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네 상속자는 너랑 피 한 방울 안 섞인 그 하인이 아니라, 네 친자식이 상속자가 될 것이야. 그리고 어디 그 정도인 줄 알아? 하늘에 나가서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세어봐. 네 자손들이 그렇게 많아질 거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즘은 대도시에서는 대기오염 때문에 별들이 많이 안 보입니다만, 당시에는 밤에 하늘을 바라보면 수많은 별들이 보였을 것입니다. 네 자손을 그렇게 많이 늘려주겠다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지금 제가 배가 고파요. 밥 한 그릇만 주세요. 이렇게 하나님께 말씀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야, 밥 한 그릇 정도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큰 식당을 전세계에 셀 수 없이 많이 세우는 축복을 줄 거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께서는 어떤 심정이 들겠습니까. 믿음이 좋으신 여러분께서는 이 말씀을 듣자마자 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라고 하시겠지만, 저는 아마 이러지 않았을까 합니다.

아니, 세상에서 가장 큰 식당을 셀 수 없이 많이 세우는 축복도 좋지만, 지금 당장 배가 고픈데 우선 밥 한 그릇부터 먼저 주시고, 그 다음에 말씀하세요. 솔직히 그런 생각이 안 드시겠습니까.

지금 굶어 죽을 지도 모르는데, 몇 년 뒤 축복이 무슨 소용이 있나, 저 같으면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하고도 남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아브라함은 어땠습니까. 창세기 15장 6절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이 말씀에 대해서 ‘아멘’하고 그대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보통 믿음이 아니지요. 이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의로 여기셨다고 성경은 기록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서 17절~18절까지를 보실까요?

로마서 4장 17절~18절
“17.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7.「わたしはあなたを多くの国民の父とした」と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彼は、死者を生かし、無いものを有るものとして召される神を信じ、その御前で父となったのです。
18.彼は望み得ない時に望みを抱いて信じ、「あなたの子孫は、このようになる」と言われていたとおり、多くの国民の父となりました。

오늘 이 말씀이 바로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은 아브라함의 크나큰 믿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축복의 약속을 해주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은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8장 10절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すると、そのうちの一人が言った。「わたしは来年の今ごろ、必ずあなたのところに戻って来ます。そのとき、あなたの妻サラには男の子が生まれています。」サラは、その人のうしろの、天幕の入り口で聞いていた。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고 계신 이 시기가 언제인가 하면, 이는 아브라함이 구십 구세 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란 땅을 나선 때가 아브라함이 몇 살 때였는지 기억하십니까.

창세기 12장 4절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アブラムは、主が告げられたとおりに出て行った。ロトも彼と一緒であった。ハランを出たとき、アブラムは七十五歳であった。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란 땅을 떠났던 것은 그의 나이 칠십 오세 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처음 들었던 것이 하란 땅에 머물렀을 때였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혹시 잊으셨을 지 모르니까 간단하게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도행전 7장 4절에 보면 스데반 집사님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도행전 7장 2절~4절
“2.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4.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するとステパノは言った。「兄弟ならびに父である皆さん、聞いてください。私たちの父アブラハムがハランに住む以前、まだメソポタミアにいたとき、栄光の神が彼に現れ、
『あなたの土地、あなたの親族を離れて、わたしが示す地へ行きなさい』と言われました。
そこで、アブラハムはカルデア人の地を出て、ハランに住みました。そして父の死後、神はそこから彼を、今あなたがたが住んでいるこの地に移されましたが、

여기서의 메소보다미아는 갈대아인의 우르를 가리킵니다. 아브라함은 하란 땅에 이르기 전에 메소보다미아 즉 갈대아인의 우르라는 곳에 있을 때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에 하란이라고 하는 곳에 정착하였고, 거기서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세상을 떠나자 다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글쎄요. 하란 땅에 그들이 얼마나 머물렀는 지는 모르지만, 거기에서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머물렀다고 하고, 그 하란 땅을 출발했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였다고 하니, 그 이전인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날 때는 당연히 75세보다 더 젊은 나이였습니다.

좋습니다. 적게 잡아 75세부터 따진다 하더라도 99세까지라고 한다면 24년이고, 75세를 포함한다고 하면 25년이겠지요. 그 25년 동안, 아브라함과 사라의 첫 기도 제목인 아이를 언제 갖게 될 것인지 하나님은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 말씀을 안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99세가 되던 해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고는 드디어 구체적인 시기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창세기 18장 10절에서 바로 내년 이맘때!(来年の今ごろ)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요. 할렐루야가 절로 나왔을 것입니다. 드디어 수십 년에 걸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는구나.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하지만 당시 아브라함의 심정이 되어 본다면 그리 기뻐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18장 10절 다음 구절인 11절을 보시면, 그 때 사라는 이미 늙어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이었습니다.

저 같았으면 그랬을 것입니다. 아니, 지금까지 얼마나 기다렸는데, 주실라면 좀 더 일찍 주시던지 하지, 꽃다운 젊은 날을 다 보내고, 이제 나이 늙어서 체력도 떨어지고, 어디 그 뿐인가요? 이미 육체적으로는 아이를 못 낳게 되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아이를 주신다고 그러십니까.

그러나 아브라함과 사라는 어땠습니까.

오늘 말씀 중 로마서 4장 19절~22절까지 보시겠습니다.

“19.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19.彼は、およそ百歳になり、自分のからだがすでに死んだも同然であること、またサラの胎が死んでいることを認めても、その信仰は弱まりませんでした。
20.不信仰になって神の約束を疑うようなことはなく、かえって信仰が強められて、神に栄光を帰し、
21.神には約束したことを実行する力がある、と確信していました。
22.だからこそ、「彼には、それが義と認められた」のです。

그들은 이처럼 인간적인 시각으로 볼 때에는 전혀 가망성이 없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믿었으며,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의로 여겨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로마서 4장 18절 말씀대로 그들의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望み得ない時に望みを抱いて信じる信仰)이었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가능성이 10%나 20%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혀 가망성이 없는 0%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까지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을 본 받아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축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라고, 말씀을 끝내도 아무런 손색이 없겠지요? 그런데 시계를 보니까 시간이 좀 남은 것 같습니다. 어떡하죠?.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늘 드릴 설교 말씀은 이제부터 본론입니다.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서 다른 곳은 다 좋아요. 하지만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디냐 하면, 로마서 4장 19절~21절 말씀입니다.


로마서 4장 19절~21절
“19.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19.彼は、およそ百歳になり、自分のからだがすでに死んだも同然であること、またサラの胎が死んでいることを認めても、その信仰は弱まりませんでした。
20.不信仰になって神の約束を疑うようなことはなく、かえって信仰が強められて、神に栄光を帰(き)し、
21.神には約束したことを実行する力がある、と確信していました。

이 말씀,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성경에 적혀 있으니까 모두 진리의 말씀, 거짓이 없고 오류도 없는 하나님 말씀이겠지요. 하지만 좀 성격이 못된 저는 이 말씀에 대해서 이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정말?”이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믿음의 삶에서 의심이 없었을까요? 작은 의심도 없이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100% 순종하는 삶이었나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손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주시지를 않아요. 그러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어떻게 말합니까.


창세기 16장 2절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サライはアブラムに言った。「ご覧ください。主は私が子を産めないようにしておられます。どうぞ、私の女奴隷のところにお入りください。おそらく、彼女によって、私は子を得られるでしょう。」アブラムはサライの言うことを聞き入れた。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가 안 생기니까 사라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합니다. 그러자 사라는 더 이상 못 기다리겠다. 내 여종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라. 어쩌면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일지 누가 아느냐. 이렇게 아브라함을 다그칩니다.

이 모습을 보시면 어떻습니까. 역시 여자는 인내심이 없어. 좀 더 기다려야지, 그렇게 성질이 급해서 어쩌나. 그런 생각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사라는 과연 얼마 동안이나 참고 기다렸을 것 같으십니까. 1년이요? 아니면 2년이요? 성경에 기록을 바탕으로 계산을 해보면 이 때는 아브라함의 나이 85세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란 땅을 나선 것이 몇 살 때요? 예, 75세였지요.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그 이전에 갈대아인의 우르를 출발했던 것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적게 잡아서 하란 땅을 출발했을 때부터 계산을 해본다 하더라도 자그마치 10년이나 믿고 참고 기다렸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전혀 응답을 안 해 주심에도 불구하고 10년 동안 참고 기도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는 성질이 급한 것도 아닙니다. 인내심이 부족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오히려 상당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못 기다리겠다면서 자기 남편을 다그쳐서, 사람의 생각으로 아이를 갖게 됩니다. 결국 사라의 여종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만 이 아이의 어미인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 때문에 그 집안에 불화가 생깁니다. 그 때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평화로웠던 가정에 다툼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분란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기계에 기름을 붓는 일입니다. 기계가 윤활유로 인해서 아주 잘 돌아갑니다. 우리의 삶이 30배 60 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 말씀을 거스르고 사람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삶은, 기계에 모래를 붓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원활하게 돌아가야 할 기계가 멈추고, 소리가 나고, 불이 나고, 이상하게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그 아이가 자기 아이니까, 그 이스마엘이 자신의 상속자라고 착각을 합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신에게 아이가 없을 때에는 창세기 15장 2절에서 자기 상속자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라고(私の家の相続人は、ダマスコのエリエゼルなのでしょうか。」) 하더니만, 이제 이스마엘이 생기니까 뭐라고 합니까.


창세기 17장 18절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そして、アブラハムは神に言った。「どうか、イシュマエルが御前で生きますように。」

이제 됐다는 거예요. 이스마엘이 있으니까 자기 상속자는 그냥 이스라멜로 해주세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7장 19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神は仰せられた。「いや、あなたの妻サラが、あなたに男の子を産むのだ。あなたはその子をイサクと名づけなさい。わたしは彼と、わたしの契約を立て、それを彼の後の子孫のために永遠の契約とする。

아무리 아브라함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계획을 완전히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여종 사이의 아들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의 아들로 인하여 믿음의 족보를 이어 가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하나님의 계획을 잘못 이해함으로 인해서 사람의 생각으로 이스마엘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스마엘의 후손이 누구냐 하면 바로 중동 이슬람 사람들입니다.

이 이스마엘의 출생으로 인해서 그 가정에 다툼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앞서 말씀 드렸습니다만, 이는 비단 아브라함 가정의 평화를 헤쳤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본다 하더라도 이슬람을 둘러싼 종교적 갈등이 얼마나 심했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사람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자기 멋대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외에도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의심했던 적이 있습니다.

창세기 18장 10절을 다시 한 번 살펴봅니다.

창세기 18장 10절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すると、そのうちの一人が言った。「わたしは来年の今ごろ、必ずあなたのところに戻って来ます。そのとき、あなたの妻サラには男の子が生まれています。」サラは、その人のうしろの、天幕の入り口で聞いていた。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놀라운 말씀, 드디어 내년에 아들을 갖게 된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사라는 어떻게 했을까요? 할렐루야를 외쳤을까요?


창세기 18장 12절~15절
“12.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サラは心の中で笑って、こう言った。「年老いてしまったこの私に、何の楽しみがあるでしょう。それに主人も年寄りで。」
主はアブラハムに言われた。「なぜサラは笑って、『私は本当に子を産めるだろうか。こんなに年をとっているのに』と言うのか。
主にとって不可能なことがあるだろうか。わたしは来年の今ごろ、定めた時に、あなたのところに戻って来る。そのとき、サラには男の子が生まれている。」
サラは打ち消して言った。「私は笑っていません。」恐ろしかったのである。しかし、主は言われた。「いや、確かにあなたは笑った。」

이 사라의 웃음이 기뻐서 웃은 웃음인가요? 아니요. 기쁨의 웃음이 아니라 오히려 비웃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나도 늙고 내 남편도 늙었는데 어떻게 아이를 가질 수 있단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게 비웃었던 것이지요. 그러자 이 사라의 비웃음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이와 같이 사라의 믿음도 보면 많이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이 출생하게 되고, 그리고 이처럼 하나님 말씀도 비웃은 적도 있었던 것이지요.

자, 그렇다면 문제입니다.

이처럼 사라는 아들을 얻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에 대해서 비웃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은 적이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사라가 하나님 말씀을 비웃어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아니면, 아브라함이라 하더라도 아들을 갖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은 적이 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되십니까.

창세기 17장 15절~18절을 보시겠습니다.


창세기 17장 15절~18절
“15.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16.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17.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8.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また神はアブラハムに仰せられた。「あなたの妻サライは、その名をサライと呼んではならない。その名はサラとなるからだ。
わたしは彼女を祝福し、彼女によって必ずあなたに男の子を与える。わたしは彼女を祝福する。彼女は国々の母となり、もろもろの民の王たちが彼女から出てくる。」
アブラハムはひれ伏して、笑った。そして心の中で言った。「百歳の者に子が生まれるだろうか。サラにしても、九十歳の女が子を産めるだろうか。」
そして、アブラハムは神に言った。「どうか、イシュマエルが御前で生きますように。」

여기서 일부 신학자들은 이 아브라함의 웃음을 기뻐서 나온 웃음이라고 해석을 합니다만, 그렇다면 아들을 주신다는 말씀에 기뻐한 아브라함이 기뻐 웃으면서, “그러지 마시고 그냥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합니다”라고 하겠습니까. 이는 대단히 부자연스러운 해석입니다.

이 부분도 역시 현대인의 성경판 창세기 17장 17절~18절을 보시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현대인의 성경판 창세기 17장 17절~18절
“17.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으나 속으로 웃으며 `100세가 된 사람이 어떻게 자식을 낳을 수 있을까? 사라는 90세나 되었는데 어떻게 자식을 낳을 수 있겠는가?' 하고 중얼거리다가
18.하나님께 말하였다. `이스마엘이나 주의 축복 가운데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문맥상으로 본다면 이 웃음은 기쁨의 웃음이 아니라 역시 비웃음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사라가 비웃은 것은 18장이었습니다만, 아브라함은 그보다 앞서 17장에서 벌써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어떻게 적혀 있었습니까.

로마서 4장 20절~22절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0.不信仰になって神の約束を疑うようなことはなく、かえって信仰が強められて、神に栄光を帰し、
21.神には約束したことを実行する力がある、と確信していました。
22.だからこそ、「彼には、それが義と認められた」のです。”


아브라함과 사라의 부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생각해서 이스마엘을 낳기도 하고, 그리고 자기들이 그토록 소망했던 아이를 낳게 해주겠다고 하신 말씀을 남편 아내 할 것 없이 똑같이 비웃었던 부부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 본문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확신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의로 여기셨다고 하는데, 이 내용은 그럼 좀 아브라함 부부에 대해서 사실보다도 미화한 기록인가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말씀 드리는 바와 같이 성경은 위인전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을 미화하기 위해서 일부를 삭제하거나 일부를 사실보다도 과장되게 포장한 책도 아닙니다.

성경은 다른 사람들을 높이는 위인전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서 높임을 받으실 분은, 오로지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 사람들 중에서 완벽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없습니다. 그 점은 누가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아십니다.

창세기 8장 21절 중반부에 보시면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8장 21절 중반부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人の心が思い図ることは、幼いときから悪である

로마서 3장 10절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次のように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義人はいない。一人もいない。

아무리 착한 척을 하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인간인 이상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악하대요. 그리고 아무리 믿음이 좋은 척, 의로운 척을 해봤자, 자기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합니다. 그런데 어찌 아브라함이나 사라를 믿음이 없다고 비판하거나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목사라면 좀 특별할 것 같으십니까. 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는 날이면 언제나 마음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송이 넘쳐나왔을 것 같으십니까.

아니요.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도대체 이게 지금 내가 맞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것이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분들이라면 오죽하겠습니까. 어려움이 닥쳐오면 우리의 마음은 때로는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릴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사라가 성질이 급하거나 믿음이 적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서로 다투기도 하고 고민하기도 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의심하기도 하고 비웃기도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비록 아브라함과 사라의 모습을 보면 분명 완벽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 닥쳐 와도 그들은 무엇을 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인생이 잘 안 풀릴 때도 있고, 그리고 부부가 서로 싸우거나 할 때도 있기는 했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거나, 믿음을 버리거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란 땅으로 돌아 간다거나 아니면 우상을 섬기거나 하는 일이 없이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 한 걸음씩 나아갔던 모습을 우리는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점을, 오늘 성경에서 아브라함과 사라에 대한 기록에서 보듯이, 훗날에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잠언 16장 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人は心に自分の道を思い巡らす。しかし、主が人の歩みを確かにされる。

마태복음 24장 13절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しかし、最後まで耐え忍ぶ人は救われます。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우리의 발걸음, 믿음의 발걸음을 인도해주시는 주님,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주님을 끝까지 믿고 견디심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과 사라가 받은 축복,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주신 축복을 하나도 남김 없이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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