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 목사 설교

[설교동영상/본문] 제154회 감사함으로 채우는 삶

홍성필 2021. 7. 1. 05:57
반응형
제154회 감사함으로 채우는 삶
2018년 11월 18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5절~8절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한국어 동영상


일본어 동영상

 

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한 달에 1,000원>
<물 한 그릇 선교후원>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KB 국민은행
079-21-0736-251
홍성필



성경소설 <요셉의 재회> 다운로드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감사함으로 채우는 삶” 感謝で満たす人生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물건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욕심이 있다면 좀 넓은 책상을 갖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동경에서 살 때에는, 집이 워낙 좁다 보니 독립된 구조의 제 방이 없었습니다. 기껏 있는 방이라고 하면 미닫이문으로 연결된 방이었지요. 하지만 제 책상은 계속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책상에 대해 그리 만족해본 일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방은 좀 좁더라도 좀 넓은 책상을 갖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은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한 다음에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책상은 상당히 넓었습니다만, 별로 넓다는 생각을 못 해보았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텔레비전에서 어떤 영화배우가 새 집을 구입했는데, 그 이유가 그 집에 보니 큰 책상이 있었더라는 거예요. 바로 그게 마음에 들어서 그 집을 샀다고 했는데, 그 말이 저는 참 이해가 될 것 갈았습니다.

그런데 문득 제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 어떤 직원의 책상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좀 늦은 시간, 이 분이 퇴근한 다음이었는데, 그 때 그 책상을 보니까 참 넓어 보이는 것이에요. 그래서 왜 이렇게 넓어 보일까 했더니만, 아하, 알았습니다. 그 책상 위가 너무나도 깨끗하게 치워져 있던 것입니다. 정말 책상 위에 아무것도 없어요. 물론 모니터는 있지요. 키보드도 마우스도 있었지만 저기 한 쪽으로 딱 밀어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책상이 얼마나 깔끔해 보이는지 몰라요. 정말 저 같아도 다음날 아침에 출근해서 그 책상을 보면 정말 일하고 싶어질 마음이 생길 것 같아요. 그런데 뭐 그 때는 그러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그걸 보고 제가 뭘 어떻게 해보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던 차에 며칠 전, 문득 제 책상을 봤어요. 그랬더니 거기에는 무슨 프린트다, 영수증이다, 책이다 해서 빈 공간이 별로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간만 비어있어요. 그 때 마침 예전에 봤던 그 분의 책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그러면 어디 한 번 치워보자……자고로 정리의 기본 원칙이 뭐겠어요? 예, 안 쓰는 것을 치우자……하면 역시 마찬가지거든요. 이것도 써야 하고, 저것도 써야 하고……그러면 책상은 여전히 똑같게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 하면, 일단 모든 것을 없애버렸습니다. 정말 당장 필요한 것을 빼고 모든 것을 버리든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겨놓았습니다.

하……그러자 정말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책상이 어마어마하게 넓어진 거예요. 아마도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썼던 책상 중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사용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할 정도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어질러진 책상을 보면서도 나름 핑계를 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20세기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책상, 그리고 일본의 유명 작가인 사카구치 안고의 서재 사진 같을 것을 보면 책상이 정말 지저분합니다. 방도 엉망진창이에요. 거기에 비하면 제 책상은 양반이지요.

하지만 책상을 깨끗이 치우면서 든 생각이 무엇인가 하면, 두 가지입니다.
첫째, 나는 천재 물리학자나 유명 작가가 아니다.
그리고 둘째, 아인슈타인이나 사카구치 안고가 책상 정리를 좀 잘 하고 살았다면 더 뛰어난 성과를 남겼을지도 모른다.
이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책상을 좀 깨끗하게 치우고 연구를 했다면, 그가 평생 동안 연구해왔던 통일장이론을 완성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사카구치 안고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ㅎㅎ물론 이건 제 개인적인 상상입니다.

이렇게 깨끗하게 책상을 치우고 나니까, 제 마음에 무슨 마음이 드냐 하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이렇게 넓은 책상이 나한테 주어지다니 얼마나 감사한가……. 내 인생 중에서 가장 큰 책상을 얻은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제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큰 책상. 하지만 제게 필요했던 것, 큰 책상을 얻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은, 큰 책상을 살 수 있는 돈이나, 큰 책상을 놓을 수 있는 큰 집이 아니라, 책상을 치우려고 하는 제 마음가짐이었던 것입니다.

혹시 본인의 책상이 좁다고 생각하시는 분께서는 저처럼 한 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건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라고 하는 마음을 언제 느낄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무엇인가에 대해서 불만이 있거나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는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저는 참 정리를 잘 못하는 편인데, 그 이유를 제 스스로가 알고 있습니다.

뭐냐 하면 잘 버리질 못해요. 분명 당장은 쓸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왠지 나중에 필요해질 것 같아요. 그래서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욕심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갚고 싶다는 것이 바로 욕심이지요. 물론 필요하다면 가지고 있어야지요. 슈퍼에 가서 식사거리도 사야죠.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나한테 있어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의 몇 배, 몇 십 배, 나아가서는 몇 백 배나 몇 천 배도 더 갖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욕심인 것입니다.

욕심은 마치 소금물과도 같습니다.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감사가 자리잡을 곳이 없습니다. 아직 내 욕심이 충족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감사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주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마태복음 6장 31절~33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ですから、何を食べようか、何を飲もうか、何を着ようかと言って、心配しなくてよいのです。
これらのものはすべて、異邦人が切に求めているものです。あなたがたにこれらのものすべてが必要であることは、あなたがたの天の父が知っておられます。
まず神の国と神の義を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これらのものはすべて、それに加えて与えられます。

이 말씀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들은 작은 것에 대해서 전전긍긍 하지 말라. 너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런 사소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라.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 일을 하면서 살아라, 그렇게만 한다면 그런 사소한 것들은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다 책임져 주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얼마나 감사한 말씀입니까.

예를 들어서 우리가 회사 사장인데, 지금 어떤 회사와 큰 계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돈이 몇 십억 몇 백억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입니다. 이를 위해서 이제 협상을 하고 전략을 짜고 해야 합니다. 까딱 잘못하면 회사의 운명이 하루 아침에 바뀔 수도 있는 거대한 프로젝트입니다.

사장님이신 여러분은 어떤 한 직원한테 이 일의 실무를 맡겼습니다.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지요. 그런데 이 직원이 맨날 걱정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물어봤어요. 이봐, 자네는 뭐가 그렇게 걱정이 많아? 그랬더니 이 직원이 말합니다.

아휴……이거 맨날 스테이플러 심이 부족해요. 포스트잇도 부족하고, 볼펜도 맨날 부족해요……일을 하다가 펜이나 종이가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게 제 걱정입니다……

만약에 이 직원이 그랬다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야, 이 친구야. 지금 그거 걱정할 때야? 지금 몇 십억, 몇 백억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을 맡겼는데 기껏해야 지금 볼펜이나 종이가 떨어지는 것 걱정하고 있어? 그런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채워줄테니 내가 하라고 한 일이나 신경 써……

이러지 않겠습니까? 사장님이 그렇게 말을 했으면 들어야지, 그래도 계속해서 중요한 건 뒷전으로 미루고 볼펜 걱정 종이 걱정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일을 계속 그 직원한테 맡기겠습니까? 아니요. 그 직원한테서 일을 빼앗고 다른 사람한테 맡길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실 때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누가복음 9장 3절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ルカの福音書
「旅には何も持って行かないようにしなさい。杖も袋もパンも金もです。また下着も、それぞれ二枚持ってはいけません。

이는 단순히 물건을 가지고 가지 말라는 것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도 역시 사소한 일들을 위해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다 알아서 채워줄 테니 너는 내가 맡긴 일에만 신경 쓰면 된다는 것입니다.

여행을 많이 해본 사람과 많이 안 해본 사람들을 보면 금방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어떻게 차이가 나냐 하면, 여행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짐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가져가야 하고 저것도 가져가야 하니까 당연히 짐이 무거워질 수밖에요. 그런데 어떤 분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여행에 갈 때, 특히 장기 여행을 갈 때에는 이렇게 짐을 싸면 된대요. 잘 생각해서 필요한 물건만을 모아보래요. 정말로 이건 없으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되는 물건들만을 모아서, 마지막에는 그 중에서 딱 절반만 가져가라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현지에서 조달하면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다 하나하나 가져가려고 하니 짐이 무거우니까 움직일 때마다 고생인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연예인이 이런 말을 했어요. 이 분이 가수인지 텔런트인지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자기가 지금까지 모아놓은 레코드나 CD, DVD가 참 많다는 것이에요. 얼마나 많은지 집에 둘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한 결과, 유료 창고를 하나 빌렸대요. 그래서 돈을 내고 그 창고에 자신이 그 동안 모아놓은 CD나 DVD를 보관하기로 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아, 이게 바로 츠타야구나……말하자면 CD, DVD 대여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에는 CD, DVD 대여점들이 참 많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구하기 힘든 희귀한 것들도 있기야 하겠지만, 대부분은 그런 대여점에 가면 언제든지 빌릴 수 있는 것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자기가 다 지고 다니면서, 결국 둘 곳이 없으니까 돈을 내고 창고를 빌려야 할 정도까지 되었다는 것인데, 그럴 필요 없이, 필요하다면 대여점에 가서 빌리면 된다는 것이에요. 어차피 보관하기 위해 창고를 빌리나, 아니면 대여점에서 빌리나 돈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앞서 아인슈타인이나 소설가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그런 교수나 작가들의 집은 어떻겠어요? 아마도 책들이 여기저기 많이 싸여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는 물론 쉽게 구할 수 없는 책들도 많겠지요. 하지만 그걸 꼭 다 갖고 있어야 하나요? 솔직히 아무리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 하더라도 거기 있는 책 중에서 항상 곁에 두고 있어야 할 정도로 자주 보는 책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정말 중요한 책들만 집에 두고 그 외의 것들은 차라리 필요할 때 도서관에 가서 보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냐 하면 감사가 사라지게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감사는 언제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첫째로, 감사는 내가 낮아질 때 드릴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충실한 종인지 아닌지를 말씀하실 때 다윗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윗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기에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겸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 대한 축복을 말씀하셨을 때 그가 한 말을 보십시오.

역대상 17장 16절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에게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ダビデ王は主の前に出て、座して言った。「神、主よ、私は何者でしょうか。私の家はいったい何なのでしょうか。あなたが私をここまで導いてくださったとは。

내가 정말 이와 같은 큰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이렇게 채워주시니 감사합니다 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항상 겸손했습니다. 작은 것을 주셔도 감사, 큰 것을 주셔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처럼 나 자신을 낮추면 그것은 곧 하나님을 높이는 일이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계속 부어주시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감사는 믿음입니다. 내가 지금 없어요. 하지만 내게 필요할 때 주님께서 채워주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초대교회 때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4절~47절
44.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信者となった人々はみな一つになって、一切の物を共有し、
財産や所有物を売っては、それぞれの必要に応じて、皆に分配していた。
そして、毎日心を一つにして宮に集まり、家々でパンを裂き、喜びと真心をもって食事をともにし、
神を賛美し、民全体から好意を持たれていた。主は毎日、救われる人々を加えて一つにしてくださった。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을 모두 팔아서 교회에 바치면, 이를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그대로 베끼려고 한 것이 바로 공산주의 이론이라고 합니다. 개인재산을 모두 몰수하고, 국민은 국가가 부여하는 노동을 합니다. 그리고 돈이 필요하면 그 필요를 따라 나누어준다는 것이지요. 여러 가지 복잡한 이론은 있습니다만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더 쉽게 말하자면, 8시간 노동을 하고, 돈은 개인이 필요한 만큼 사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개인은 경제적인 걱정 없이 마음 편히 일을 하고 나라도 발전한다……는 것인데, 그게 실제로 가능하겠습니까.

여기 계신 분들은 안 그렇겠지만, 단순하게 말해서 10만원어치 일을 하고 100만원, 1000만원을 갖고 싶어하는 게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국가에서 만족시켜줄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누가 얼마만큼 필요한지를 사람이 판단한다고 하는데, 그건 불가능한 것이지요.

하지만 누구는 아세요? 예, 주님은 아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계시고, 필요에 따라 채워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믿음이 있으면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넓은 책상이 필요하신가요? 우리한테는 넓은 책상을 살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넓은 책상을 놓을 만한 큰 집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이미 그 책상은 여러분이 가지셨습니다. 다만 안 보일 뿐입니다. 왜요? 그렇습니다. <욕심>이라고 하는 잡동사니들에 가려서 안 보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욕심>이라고 하는 여러 가지 잡동사니를 깨끗하게 치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셨던 넓은 책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신 넘치는 축복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열심히 일만 하다가 어떤 사고를 당해서 며칠 동안 집에서 요양을 했던 사람의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가끔 목발을 짚고 동네를 산책해보았더니, 그곳에 그렇게 오랫동안 살았는데도 자기 동네에 그렇게 꽃이 많이 피었고 새가 많이 우는 것을 처음 알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그러면 가족이 보입니다. 이웃이 보입니다. 가끔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감사를 드린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그렇게 큰 축복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나요? 아니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결심을 하면 뭘합니까. 금방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세상 속에서 세상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감사와 믿음은 사라지고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힙니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축복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감사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5절~8절 신약성경 266페이지
5.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アポロとは何なのでしょう。パウロとは何なのでしょう。あなたがたが信じるために用いられた奉仕者であって、主がそれぞれに与えられたとおりのことをしたのです。
私が植えて、アポロが水を注ぎました。しかし、成長させたのは神です。
ですから、大切なのは、植える者でも水を注ぐ者でもなく、成長させてくださる神です。
植える者と水を注ぐ者は一つとなって働き、それぞれ自分の労苦に応じて自分の報酬を受けるのです。

사람이 아무리 심고 물을 주더라도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지 않으시면 모든 일은 헛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あなたがたを召された方は真実ですから、そのようにしてくださいます。

하나님은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내게 없는 것을 보지 말고 내가 가진 것, 주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보고 감사 드려야 하고, 또한 장차 주님께서 채워주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낮아짐으로 하나님을 높이면서 감사를 드리고, 우리에게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감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우리의 모든 삶을 감사함으로 채워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155회 죄를 다스리라 →

← 제153회 주님을 의지해야 하는 이유

 
이카호중앙교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