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 목사 설교

[설교동영상/본문] 제84회 현재진행형인 믿음

홍성필 2021. 6. 27.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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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회 현재진행형인 믿음
2017년 7월 2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에스겔 33장 12절~16절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공의가 구원하지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말미암아 살지 못하리라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공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곧 그 안에서 죽으리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정의와 공의로 행하여 저당물을 도로 주며 강탈한 물건을 돌려 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여 죄악을 범하지 아니하면 그가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지라 그가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반드시 살리라 이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음이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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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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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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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현재진행형인 믿음”現在進行形の信仰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얼마 전에 한 기독교 신문을 보니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기사 제목은 “목회자 10명 중 5명 “구원 잃어버릴 수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보니 간략하게 소개해드리면, 이는 한국의 총신대학교 실천목회연구과정이 약 1년 동안에 걸쳐 실시한 조사결과라고 하는데, 목회자 약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았더니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하다>고 대답한 분들은 52.5%, 그리고 <구원을 중간에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는 분들이 47.5%였다고 합니다.

저도 가끔 다른 목회자분들이 말씀을 전하는 것을 듣거나, 아니면 그분들의 글을 읽거나 합니다만, 이를 통해서 저도 많이 배우기도 하고 은혜도 많이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간혹 보면 안타깝게도 <과연 이 분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과 내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같은 것일까> 라고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하다>가 52.5%
<구원을 중간에 잃어버릴 수도 있다>가 47.5%

제가 이 기사를 보고 한편으로는 대단히 충격적이었습니다만, 왜 충격적이었을까요. 우리가 한 번 주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으면, 이제 그 구원은 잃어버릴 수가 없는 것인가요? 아니면 구원을 중간에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인가요?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말씀을 드리기 전에 먼저 오늘 본문을 다시 살펴볼까 합니다.

에스겔 33장 12절~13절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공의가 구원하지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말미암아 살지 못하리라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공의를
v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곧 그 안에서 죽으리라”

人の子よ。あなたの民の者たちに言え。正しい人の正しさも、彼がそむきの罪を犯したら、それは彼を救うことはできない。悪者の悪も、彼がその悪から立 ち返るとき、その悪は彼を倒すことはできない。正しい人でも、罪を犯すとき、彼は自分の正しさによって生きることはできない。わたしが正し
vい人に、『あなたは必ず生きる。』と言っても、もし彼が自分の正しさに拠り頼 み、不正をするなら、彼の正しい行ないは何一つ覚えられず、彼は自分の行なった不正によって死ななければならない。

성경에서 기록된 <의> 라고 하는 것은 세상적인 의미와 차이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뜻을 말하는 것이고,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의로운 행위라고 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고, 이를 하는 사람이 바로 <의인>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산다> 또는 <죽는다>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이 세상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100년도 못 사는 이런 짧은 생명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어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을 <생명> 또는 <산다>고 하는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지옥으로 떨어져서 영원한 고통 속에 몸부림을 치는 것이 <사망> <죽는다> 그리고 <멸망>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의인이었던 사람도 그 사람이 범죄하는 날에는 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우리가 못 알아들을까 봐 성경은 더욱 자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3절만을 다시 한번 봅니다.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공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곧 그 안에서 죽으리라”
わたしが正しい人に、『あなたは必ず生きる。』と言っても、もし彼が自分の正しさに拠り頼 み、不正をするなら、彼の正しい行ないは何一つ覚えられず、彼は自分の行なった不正によって死ななければならない。

이게 무슨 뜻입니까. 어떤 의인,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너는 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이 시점으로 볼 때 이 사람은 분명히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거짓일 수 있겠습니까? 그는 적어도 그 순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의인이 그 때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말씀만을 믿고 죄악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한 번 받은 구원이 영원하다고 한다면, 그가 나중에 아무리 죄악을 행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는 구원 받은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아무리 구원을 받았던 의인이라 하더라도 죄악을 행하면, 뭐래요? 과거에 행했던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곧 그 안에서 죽으리라”

彼の正しい行ないは何一つ覚えられず、彼は自分の行なった不正によって死ななければならない。

즉, 과거에 구원을 받았다고 해도 그것만 믿고 죄악을 행했다고 한다면 그는 죄악 가운데에서 죽으리라, 즉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영원한 사망이요, 영원한 멸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누구 말씀이에요? 제가 말한 건가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은 구절이 너무나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 중에서 몇 군데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간혹 <울며 이를 갈리라>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는 단순한 슬픔이나 분노가 아니라 너무나도 강한 억울함과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감정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무슨 시험을 봤다고 쳐요. 결과 발표를 보니까 불합격이었어요. 만약에 그 시험을 위해서 어차피 공부도 열심히 안 했고 준비도 부족했기 때문에 일단 시험을 치긴 했지만, 합격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불합격이라 한다 하더라도 별로 아쉽지도 않겠지요. 어차피 기대하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자기는 그 동안 자기 생각으로는 열심히 준비도 했고, 시험을 볼 때도 나름 많이 맞춘 것 같아서 틀림없이 합격할 줄 알았습니다. 그 시험에 합격하고 난 후의 계획도 다 짜놨습니다. 주변 사람들한테는 이번 시험에 틀림없이 합격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과 발표를 보니 불합격이었어요. 그렇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안타깝겠습니까. 바로 그럴 때 울며 이를 가는 것이 되겠지요.

마태복음에 보면 <울며 이를 갈리라>라는 구절이 3군데 나옵니다. 시간 관계상 그 중에서 두 군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마태복음 13장 47절~50절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また、天の御国 は、海におろしてあらゆる種類の魚を集める地引き網のようなものです。網がいっぱいになると岸に引き上げ、すわり込んで、良いものは器に入れ、悪いものは捨てるのです。この世の終わりにもそのようになります。御使いたちが 来て、正しい者の中から悪い者をえり分け、火の燃え
vる炉に投げ込みます。彼らはそこで泣いて歯ぎしりするのです。

여기서 보면 “의인 같은 사람 중에서”가 아닙니다. “의인 중에서”라고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뭐겠습니까. 과거에 의인이었던 사람들, 자기는 구원 받을 줄 알았던 사람들입니다. 남들은 몰라도 자기는 구원의 날에 주님께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구원의 날, 심판의 날에 정작 자신은 구원을 받지 못하고, 구원은커녕 풀무 불에 던져졌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하겠습니까. 그래서 울며 이를 갈았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도 봅니다.

마태복음 24장 47절~51절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告げます。その主人は彼に自分の全財産 を任せるようになります。ところが、それが悪いしもべで、『主人はまだまだ帰るまい。』と心の中で思い、その仲間を打ちたたき、酒飲 みたちと飲んだり食べたりし始めていると、そのしもべの主人は、思いがけない日の思わぬ時間に
v帰って来ます。そして、彼をきびしく罰して、その報いを偽善者たちと同じにするに違いありません。しもべはそこで泣いて歯ぎしりするのです。


여기 보면 주인과 종입니다. 종은 어디에 삽니까. 예, 주인의 집에 살고 있습니다. 주인이 소유한 집에 종도 함께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주인이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겼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지혜로운 주인도 있는 반면에 지혜롭지 못한 주인도 있습니다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비유에 등장하는 주인은 지혜로운 주인입니다. 그 이유는 그 주인이 바로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종도 하나님 집에 있었다는 뜻이지요. 신앙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 불의한 사람에게 소유를 맡기겠습니까? 아니지요. 그러실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그 시점에 있어서 그 종은 의로운 종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종을 축복했습니다. 그 종을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모든 소유를 그 종에게 맡겼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종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많은 소유를 맡게 된 그 종은 악하게 변했습니다. 주인은 이제 멀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났다. 언제 올지도 몰라 이제 내 세상이다, 그러고는 동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술친구들을 불러서 먹고 마시고 돈도 펑펑 쓰면서 놀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종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날, 생각지도 못한 시각에 주인이 갑자기 돌아옵니다. 돌아와보니 집 꼴이 어떻게 되어 있었겠습니까. 온 집은 엉망진창이고 음식이다 쓰레기다 하는 것이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널려 있고, 냄새는 진동을 하고, 온갖 나쁜 놈들은 들어와서 술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금고를 열어보았더니, 주인 돈을 다 써버리고 텅텅 비어있어요.

“아니, 주인님, 왜 벌써 오셨어요? 멀리 가셨다면서요? 몇 년 동안 계셨다가 오시는 것 아니었어요?” 라고 말할 시간도 없습니다. 당장 엄히 때리고 감옥에 던져 넣습니다.

그런데 왜 종은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았을까요? 자기가 잘못했잖아요? 그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내가 옛날에 잘해줬잖아. 말 잘 들었잖아. 아니, 그걸 기억 좀 해주지. 옛날 생각은 안 하고 지금 좀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렇게 해? 라면서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분하다고 억울하다고 소리쳐봤자 소용없습니다.

그가 과거에 순종했던 것만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않는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과거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의로운 종이었다 하더라도 지금 그 순간 죄악을 행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구원을 받으면 이제 어떤 일이 있더라도 구원이 번복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일본의 어떤 유명한 목사님이 계신데, 이분이 바로 그런 분이에요. 그런데 하루는 이 분의 요한계시록 강해말씀을 들어보았습니다. 총 40회에 나누어서 말씀을 전하고 계셨는데, 그날은 요한계시록 2장을 다루는 시간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은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내용이 나옵니다만, 그 날은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주제로 말씀을 전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매우 관심 있게 그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왜냐 하면,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이 목사님은 한 번 구원을 받으면 그 구원은 영원하다고 주장하는 분이었는데, 이 주장을 완전히 부정하는 구절 중 하나가 바로 이 요한계시록 2장에 등장하거든요.

요한계시록 2장 4절~5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しかし、あなたには非難すべきことがある。あなたは初めの愛から離れてしまった。それで、あなたは、どこから落 ちたかを思い出し、悔い改めて、初めの行ないをしなさい。もしそうでなく、悔い改めることをしないならば、わたしは、あなたのところに行って、あなたの燭台 をその置かれた所から取りはずしてしまおう。

이는 일곱 교회 중 첫번째로 등장하는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에베소 교회는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인내하고 게으르지 않는 것을 안다고 칭찬을 하시면서, 그 다음에 책망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첫사랑을 버렸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시면서,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님이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촛대를 옮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는 심판의 날에 주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서 더 늦기 전에 주님에 대한 첫사랑을 회복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을 거두고 축복을 거두어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엄하게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한 번 구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영원한 구원이다>라고 주장할래야 주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이 또 워낙 꼼꼼하게 해설을 하시는 분이니까, 이 부분을 어떻게 설명하실까 하고 귀를 기울여서 듣고 있었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분이 어떻게 하셨을까요?

예, 문제의 요한계시록 2장 5절,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それで、あなたは、どこから落 ちたかを思い出し、悔い改めて、初めの行ないをしなさい。もしそうでなく、悔い改めることをしないならば、わたしは、あなたのところに行って、あなたの燭台 をその置かれた所から取りはずしてしまおう。

라는 부분을 건너뛰어버렸습니다.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버린 것입니다. 제가 이 분 말씀을 들으면서도 참 은혜도 많이 받고 그랬습니다만, 이런 걸 보면 정말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기 주장과 안 맞았기 때문에 일부러 건너뛴 것일까요? 그것은 그분 본인만 아시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부러 성경은 왜곡해서 자신의 구미에 맞게 끼워 맞췄다고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일까요. 여러가지 이유는 있겠습니다만, 저는 아마도 안 보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분명히 성경에 적혀 있는데 보이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것도 자기가 혼자서 성경을 읽으면서 혼자서 잘못 이해하고 끝난다 하더라도 안타까운 노릇인데, 그것을 가지고 성도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습니까.

누가복음 6장 39절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イエスはまた一つのたとえを話された。「いったい、盲人に盲人の手引きができるでしょうか。ふたりとも穴に落ち込まないでしょうか。

그러나 이제 이런 분들을 보아도 놀라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앞서 살펴본 대로, 평신도도 아닌 답변한 목회자 중의 절반 이상인 52.5%가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하다>라고 생각한다잖아요?

제 솔직한 생각을 말씀드릴까요? 정말로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찌 되었건 한 번 구원을 받았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든 간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면 참 속 편할 것입니다. 요즘 인터넷에 뜨는 광고처럼 <먹고 싶은 것 다 먹으면서 살 뺄 수 있다>, <운동을 안 해도 이것을 입기만 하면 근육질이 될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그냥 듣기만 해도 영어가 는다>……. 이런 광고 여러분도 보신 적이 있으시죠? 그래요. 뭐 사실인지 아닌지 제가 알 바는 아니지만, 예를 들어서, 이것만 보면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내 말만 들으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이 말만 믿었다가 다른 것은 안 하고 그냥 죽어라고 그 책 한 권만 봤다거나, 아니면 다른 공부는 안 하고 오로지 그 선생님 말만 듣고 그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했다고 칩시다. 그렇게 해서 정말로 합격을 하면 다행입니다만, 만약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세상 시험이야 다음 기회도 있겠습니다만, 한 번만 구원 받으면 이제 구원에 대한 걱정은 필요 없다면서 속 편하게 살다가, 마지막 심판대에 섰을 때, 그 때가 되어서, 구원을 못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야말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 신세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23절을 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
v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わたしに向かって、『主よ、主よ。』と言う者がみな天の御国 にはいるのではなく、天におられるわたしの父のみこころを行なう者がはいるのです。その日には、大ぜいの者がわたしに言うでしょう。『主よ、主よ。私たちはあなたの名によって預言をし、あなたの名によって悪霊を追い出し、あ
vなたの名によって奇蹟をたくさん行なったではありませんか。』しかし、その時、わたしは彼らにこう宣告します。『わたしはあなたがたを全然知らない。不法 をなす者ども。わたしから離れて行け。』

생각해보십시오. 그냥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예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는 사람이 구원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그와 같은 놀라운 권능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냈던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과거형>, 그러니까 옛날에는 그랬었다, 옛날에는 믿음이 좋았었다……이처럼 지나간 추억의 믿음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아무리 의인이고 주님의 뜻에 순종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바로 지금!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옛날에 민법을 공부하다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 받지 못한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자신이 아무리 권리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제대로 행사하지 않으면 그 권리가 죽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어느 땅을 가지고 있어요. 그 땅은 분명히 내 소유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자기 멋대로 내 땅에서 장사를 시작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요? 아니, 여보쇼. 지금 뭐하고 있는 거요? 어서 나가요. 여긴 내 땅입니다. 당장 나가세요……라고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어차피 거긴 내 땅인데 뭘, 상관 없어……라고 그냥 내버려뒀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냐 하면 그 상태로 10년이 지나면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쉽게 말하면 땅을 빼앗기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 때 가서 “아니, 거긴 분명히 내 땅이에요”라고 구청이나 시청에 가서 아무리 주장해봤자 소용 없어요. 거기가 당신 땅이라면 당신 권리를 행사했어야죠. 행사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그 권리를 빼앗긴 겁니다……라고 담당직원이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원 받아야 합니다. 구원은 무엇입니까.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승리가 무엇입니까. 성경에는 승리에 대해서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5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世に勝つ者とはだれでしょう。イエスを神の御子と信じる者ではありませんか。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선물로 받은 우리는 이제 구원은 우리의 권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죄악이 들어오면 그것을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쳐야죠. 그렇지 않고, 나는 구원 받은 사람이니까 괜찮아……하고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그 구원을 빼앗기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믿음은 과거형이 아닙니다. 믿음은 추억이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은 그 위에 편안하게 잠자기만 해도 보호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바로 지금 현재, 우리 마음 속에 살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들지 않는 믿음, 퇴색하지 않는 믿음을 주님 앞에 서는 그 날,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까지 간직하고,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의 말씀을 붙들면서, 우리의 믿음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기쁨과 찬양 속에 주님 품에 안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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