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 목사 설교

[설교동영상/본문] 제71회 응답을 받는 지름길

홍성필 2021. 6. 27.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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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회 응답을 받는 지름길
2017년 4월 2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14장 12절~14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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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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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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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성경소설 <요셉의 재회> 다운로드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응답을 받는 지름길”答えを得る近道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기도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벽기도다 철야기도다 금식기도다 하면서 여러 형식으로 주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맞습니다. 이는 매우 바람직한 말씀이지요.

요한복음 1장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しかし、この方を受け入れた人々、すなわち、その名を信じた人々には、神の子どもとされる特権をお与えになった。

하나님을 믿고, 우리의 구주 되신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영접하는 우리에게 있어서 이제 하나님과 나는 머나먼 존재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아버지와 딸의 관계처럼 매우 가까운 분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누구의 공로예요? 우리가 잘 나서요? 우리의 행실이 선해서요? 아니요, 그렇지가 않지요? 우리가 의지할 것은 우리의 선함도 아니요, 우리의 공로도 아닙니다.

로마서 3장 25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神は、キリスト・イエスを、その血による、また信仰による、なだめの供え物として、公にお示しになりました。それは、ご自身の義を現わすためです。というのは、今までに犯されて 来た罪を神の忍耐をもって見のがして来られたからです。

요한1서 2장 2절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この方こそ、私たちの罪のための、―私たちの罪だけでなく全世界のための、―なだめの供え物なのです。


오직 우리의 구주 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화목제물이 되어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모두 해결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자녀가 되었는데, 아무런 대화도 없이, 아무런 교제도 없어진다면, 이는 십자가를 부정하는 것이요, 예수님을 부정하는 일이 되고 맙니다.

아니, 그렇잖습니까?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징계를 받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해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얻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는 것은, 이는 예수님의 공로를 무시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가까이 지내야 합니다. 그리고 가까이 지내는 비결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7절~8절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与えられます。捜しなさい。そうすれば見つかります。たたきなさい。そうすれば開かれます。だれであれ、求める者は受け、捜す者は見つけ出し、たたく者には開かれます。

마가복음 11장 24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だからあなたがたに言うのです。祈って求めるものは何でも、すでに受けたと信じなさい。そうすれば、そのとおりになります。


요한복음 14장 14절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あなたがたが、わたしの名によって何かをわたしに求めるなら、わたしはそれをしましょう。

맞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는 이유는, 주님께서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는 우표나 다름이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편지를 썼다 하더라도, 우표를 붙이지 않으면 그 편지는 배달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드릴 때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자, 좋아요. 우리가 구하는 것을 모두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구하면 주실 것이고, 찾으면 찾아낼 것이고, 문을 두드리면 열린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예, 아멘. 그렇습니다.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것도 아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아멘으로 받아야죠.

하지만 그런데 이 아멘을 하면서도 왜 우리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할까요? 그런 것 없으세요? 좀 불편한 마음. 믿습니다~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글쎄요…잘 모르겠는데요…”라고 하는 마음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내가 기도를 해봤는데 응답이 안 되는 것이 지금까지 너무나도 많았다.” 라고 하는 생각 때문인 것입니다.

분명 이것도 기도해봤는데 안 됐어, 저것도 기도해봤는데 안 들어주셨어……이렇게 하나하나 열거를 하다 보면 아무래도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성경 말씀을 믿었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아니, 믿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의 능력을 시험해보고자 했습니다. 그가 읽었던 구절은 이 구절입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イエスは言われた。「あなたがたの信仰が薄いからです。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告げます。もし、からし種ほどの信仰があったら、この山に、『ここからあそこに移れ。』と言えば移るのです。どんなことでも、あなたがたにできないことはありません。


이 말씀을 읽었습니다. 겨자씨에 대해서 제가 검색해보니까 겨자씨 크기는 정말 1~2미리 정도 되는 크기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이 청년이 이 말씀을 보고, 그래, 내가 믿음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겨자씨 정도 믿음은 되지 않겠나, 어디 한 번 기도의 능력을 시험해보자.

그러고는 이제 그날부터 자기 집 뒤에 있는 산을 보고는,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저리로 옮겨지라!”…하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겠어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신가요? 그리고 그 결과가 궁금하시다면, 언제 한 번 시간 갈 때에 우리도 한 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했더니 기도를 드리는 순간 산들이 막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면서 저쪽으로 옮겨졌을까요?
안타깝게도 산은 전혀 꿈쩍도 안 하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 이 청년은 그래도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외쳤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저리로 옮겨지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저리로 옮겨지라!”
하지만 아무리 외쳐도 산은 꿈쩍도 안 합니다. 그래도 있어요. 그렇다면 성경이 잘 못 된 건가요? 예수님이 거짓말을 하신 건가요? 아니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이 자꾸 이렇게 외치니까 이런 마음이 들더랍니다.

“그걸 옮겨서 뭘 어쩌려구?”

이런 생각이 마음에 들어요. 그래, 저 산을 내가 옮겨봤자 그걸 어쩌려구?

우리가 기도를 합니다. 이것을 주시옵소서, 저것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부모가 아무리 그 자녀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 부모에게 아무리 그 자녀가 원하는 것을 사줄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사달라, 저것을 사달라 하면 모든 것을 들어주나요? 모든 것을 사주나요? 만약에 그렇게 되면 그 아이가 올바로 자랄 수 있을까요? 아니요. 오히려 자기만을 알게 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내 시점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나이는 몇 살 정도가 될까요? 10살? 5살? 어떤 심리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어떤 도형이 놓여져 있고, 나한테서 저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 저 사람이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 또는 저 사람한테서 내가 안 보일 수 있는 위치를 분간하는 능력은 이미 3살에서 4살 정도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3~4살 정도의 지능이 있다고 한다면, 내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이미 조금씩 생겨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간혹 3~4살은커녕 어른이 된지도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 생각만 고집하고 내 입장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려고 하는 경향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 똑 같은 구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에 들었던 목사님의 간증입니다만, 이 목사님은 미국에서 기도원을 운영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목사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기도원을 운영하기 위하여 부지를 찾게 되었는데, 어떻게 기회가 닿게 되어서 정말 넓은 땅을 매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만이 아니라 은행으로부터 융자도 얻기도 했지요. 미국을 본다고 한다면, 땅은 참 넓습니다. 동부 쪽은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밀집되어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서부 쪽을 보면 남아도는 땅들이 아직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제가 있던 캘리포니아나 네바다 쪽만 보더라도 조금 도시를 벗어나면 광활한 벌판들이 남아돕니다.
이 목사님도 도시가 아닌 외곽 쪽에 땅을 매입하게 되었는데, 땅은 벌판만이 아니라 산까지도 같이 붙어 있는 부지였다고 해요. 그러니 얼마나 넓습니까. 그런데 이게 도무지 운영이 안 됩니다. 그리고 은행 이자는 늘어만 가지요. 참으로 어려움에 처했었다고 해요.
참 답답한 마음에 밖에 나가서 바라보면 저기 산이 보인데요. 그래서, 아…정말 저 산이라도 팔아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니, 지금 거긴 도시도 아니고 남아도는 평지만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데, 누가 산을 사겠습니까. 그래서 이 목사님이 어느 날 밤에 기도를 했답니다. 뭐라고 기도를 하셨냐 하면 저 산이 어딘가로 좀 옮겨져서 평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성경말씀대로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저리로 옮겨지라!”라고 열심히 기도를 하셨답니다. 아주 열심히 기도를 하고 다음날 아침에 밖에 나가서 산을 바라보았다고 해요. 그랬더니 그 산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 여전히 거기 있었더랍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요? 예, 다시 기도를 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저리로 옮겨지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저리로 옮겨지라!”
하지만 아무리 기도를 하더라도 그 산은 꿈쩍도 안 하더랍니다. 그래서 낙심하고 있었더니, 하루는 어떤 양복을 입은 나이 든 미국 신사가 젊은 사람을 하나 데리고 찾아 왔더래요.
그래서 하는 말이, 내가 탄광산업을 하는 사람이고,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조사를 해봤는데, 당신이 가지고 있는 저 산에서 대단히 희귀한 광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 산을 자신한테 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시하는 가격이, 평지보다도 훨씬 더 비싼 값으로 사겠다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일이지요? 그래서 이 목사님이 어떻게 하셨겠어요. 아, 좋다. 그리고 계약을 하고 팔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지요? 그 돈으로 은행 빚을 다 갚고 기도원도 가꾸고 했다고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참 놀라운 일입니다만,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몇 개월 후에 다시 그 탄광회사 사장이 젊은 사람을 데리고 찾아왔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 사장님 모습이 예전보다도 몰골이 많이 초췌해 졌더래요. 그 모습을 보고는 이 목사님이 가슴이 철렁하더랍니다. 아이구, 계약을 취소하자면 어떡하나, 돈을 다시 내놓으라면 어떡하나 하고 무척이나 불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장님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내가 분명히 철저하게 연구도 하고 조사도 해서 당신한테 그 산을 샀는데, 아무리 땅을 파봐도 이상하게 그 희귀한 광물이 더 이상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라 당신한테 이 산을 사고 난 다음부터 자신한테 너무나도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해서, 이런저런 어려움이 말이 아니라고 하소연을 합니다.

여기까지 말을 들은 목사님 심정은 어떠셨겠어요. 이거 그 때 받은 돈은 이미 빚도 갚고 기도원 시설도 정비하고 하느라고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어떡하나……하고 불안했었다고 하는데, 이 사장님이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제발 부탁이니 이 산을 다시 가져가달라. 돈을 필요 없으니까, 그냥 가져가달라”고 간절하게 부탁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어떻게 됐어요? 그 산이 저쪽으로 옮겨간 덕분에 자금도 생겼습니다만, 그뿐만이 아니라 기도원 부지 중 하나였던 그 산이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산이 옮겨진 역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생각해보세요. 아무런 생각 없이 산더러 옮겨지라고 말만 하면 여기저기 옮겨진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 얼마나 난리가 났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거짓말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 산더러 명하여 저리로 옮겨지라고 하면 산도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와 같은 놀라운 응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합니다. 갈렙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위해서 모세가 12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러나 그들이 와서 한 보고를 들어보면, 그 땅은 모두 훌륭한 땅이라고 하는 데에는 모두 같은 내용이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은 모두가 우리는 그 땅을 취할 수 없다, 그 땅을 사는 이들은 너무나도 강한 민족이다. 우리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이렇게 부정적인 보고만을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공포에 떨게 됩니다. 민수기 14장 1절을 보면, 이 보고를 듣고 백성들이 밤새도록 통곡을 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땠습니까.


민수기 14장 6절~8절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すると、その地を探って来た者のうち、ヌンの子ヨシュアとエフネの子カレブとは自分たちの着物を引き裂いて、イスラエル人の全会衆 に向かって次のように言った。「私たちが巡り歩いて探った地は、すばらしく良い地だった。もし、私たちが主の御心にかなえば、私たちをあの地に導き入れ、それを私たちに下さるだろう。あの地には、乳と蜜とが流れている。

그러나 이미 백성들은 부정적인 것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좌절합니다. 실망합니다. 낙심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좌절이나 실망이나 낙심 속에서는 절대로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디서 역사하십니까.

누가복음 5장 20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彼らの信仰を見て、イエスは「友よ。あなたの罪は赦されました。」と言われた。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보셨다고요? 예, 믿음을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망과 낙심과 좌절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 속에서 역사하시는 줄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좌절과 실망과 낙심에 빠진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더 이상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십니까.


민수기 14장 26절~35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v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v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v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主はモーセとアロンに告げて仰せられた。「いつまでこの悪い会衆は、わたしにつぶやいているのか。わたしはイスラエル人が、わたしにつぶやいているつぶやきを、もう聞いている。あなたは彼らに言え。これは主の御告げである。わたしは生きている。わたしは必ずあなたがたに、わたしの耳に告げたそのとおりをしよう。この荒野であなたがたは
v死体となって倒れる。わたしにつぶやいた者で、二十歳以上 の登録され数えられた者たちはみな倒れて死ぬ。ただエフネの子カレブと、ヌンの子ヨシュアのほかは、あなたがたを住まわせるとわたしが誓った地に、だれも決してはいることはできない。さらわれてしまうと、あなたがたが言ったあなたがたの子どもたちを、わたしは導き
v入れよう。彼らはあなたがたが拒んだ地を知るようになる。しかし、あなたがたは死体となってこの荒野に倒れなければならない。あなたがたの子どもたちは、この荒野で 四十年 の間羊を飼う者となり、あなたがたが死体となってこの荒野で倒れてしまうまで、あなたがたの背信の罪を負わなければならない。あなたがたが、かの地を探った日数は四十日であった。その一日を一年と数えて、 四十年の間あなたがたは自分の
v咎を負わなければならない。こうしてわたしへの反抗が何かを思い知ろう。主であるわたしが言う。一つになってわたしに逆らったこの悪い会衆のすべてに対して、わたしは必ず次のことを行なう。この荒野で彼らはひとり残らず死ななければならない。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이스라엘 민족들을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방황하게 만들고 그 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거역하는 회중들은 광야에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순종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때요? 하나님께서 주셔서 살게 하리라고 한 땅에 반드시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신명기 1장 36절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ただエフネの子カレブだけがそれを見ることができる。彼が踏んだ地を、わたしは彼とその子孫に与えよう。彼は主に従い通したからだ。」

이와 같은 약속의 말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갈렙은 기억했습니다. 그는 그리고 45년 동안 평생을 순종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고 하나님의 종 여호수아를 보필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한테 요구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4장 7절~9절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v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主のしもべモーセがこの地を偵察するために、私をカデシュ・バルネアから遣わしたとき、私は四十歳でした。そのとき、私は自分の心の中にあるとおりを彼に報告しました。私といっしょに上って行った私の身内の者たちは、民の心をくじいたのですが、私は私の神、
v主に従い通しました。そこでその日、モーセは誓って、『あなたの足が踏み行く地は、必ず永久に、あなたとあなたの子孫の相続地 となる。あなたが、私の神、主に従い通したからである。』と言いました。

갈렙이 이렇게 그 어느 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결론이 오늘 말씀 중


여호수아 14장 13절~14절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それでヨシュアは、エフネの子カレブを祝福し、彼にヘブロンを相続地として与えた。それで、ヘブロンは、ケナズ人エフネの子カレブの相続地 となった。今日もそうである。それは、彼がイスラエルの神、主に従い通したからである。

갈렙이 약속의 땅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으로 기도 응답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기도를 드립니다. 이것을 주세요, 저것을 주세요. 이것을 해주세요. 저것을 해주세요. 이것을 들어주세요. 저것을 들어주세요.

내가 기도를 드릴 때, 내가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물으실 것입니다.

“내가 왜 너의 기도를 들어줘야 하는데? 그 이유를 설명해봐.”

이 질문에 갈렙처럼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우리 모두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을 충성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한 산지를 차지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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