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 목사 설교

[설교동영상/본문] 제61회 응답하시는 하나님

홍성필 2021. 6. 27.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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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회 응답하시는 하나님
2017년 1월 22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Last Update 2019. 5. 21

열왕기상 18장 36절~40절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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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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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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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부분은 이른바 갈멜산의 대결, 또는 갈멜산 전투라는 제목으로 일컬어지는 대목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우상인 바알을 섬기는 왕이었습니다만, 그가 시돈 땅에서 왕비로 데려온 이세벨 또한 바알과 아세라라고 하는 우상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을 데려왔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이기까지 했었습니다. 참으로 믿음을 지키기 힘든 시대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아니면 이 세상 권력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다른 말로 하자면,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아니면 왕이나 대통령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교회에서 물으면 대부분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하겠지요. 그렇죠. 그게 정답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우리가 두려워할 이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 이 세상 권세를 잡은 권력자들이 아니라,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만군의 여호와, 온 세상의 통치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섬깁니다.
안타깝게도 그 중에는 기존 교회 지도자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의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는 말만 하고, 돈 많이 주는 사람들 편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거룩한 교회 강단에서 그들의 말만 대변하고, 약한 사람들을 학대하고 비판하기도 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그게 편합니다. 권력자들의 편에 서기만 하면 많은 특혜를 누릴 수도 있고 이 세상 부귀영화도 누릴 수 있을지 모릅니다. 돈 많은 사람들 뒤를 따라다니면 거기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불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길이라면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상을 섬기는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가 득세를 합니다. 지저분한 우상을 섬기는 이들은 어깨에 힘을 주고 거리를 활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믿음을 지키는 이들은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거나, 아니면 숨어서 지냅니다. 이와 갈은 암흑과도 같은 시대였던 것입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엘리야를 예비하셨습니다. 과감하게도 엘리야가 아합 왕 앞에 서서 담대하게 말합니다.
열왕기상 18장 19절,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
이제 400명과 450명, 총 850명과 엘리야 1명과의 대결이 시작됩니다. 이 모습을 구경하러 모인 많은 백성들에게 엘리야는 외칩니다.
열왕기상 18장 21절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이 얼마나 딱하기 그지없는 백성들의 모습입니까. 하나님을 믿을 것이냐, 바알을 믿을 것이냐 하는 물음에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고 이 세상 권세 잡은 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머뭇머뭇 거리면서 한 마디도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제 엘리야가 바알 선자자와 백성들에게 제안을 합니다. 말하자면 대결 방법을 제안하는 것이죠.
열왕기상 18장 23절~24절,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이제 송아지 두 마리를 가져 와라. 그리고 각을 떠서 나무 위에다 올려 놓고 기도해라. 너희들은 바알 이름을 부르고 기도하고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고 기도할 것이다. 둘 중에서 응답하시는 쪽이 진정한 하나님이다. 이렇게 제안을 하니, 당연히 이를 들은 백성들은 그래, OK, 좋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에게 말합니다.
열왕기상 18장 25절,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붙이지 말라”
너희들이 많으니까 너희들 먼저 해봐라. 그랬더니 이제 바알 선지자들이 송아지를 각을 뜨고 난 다음에 신이 나서 기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이 다음 구절입니다.
열왕기상 18장 26절,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이제 우상들을 향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말하자면 통성기도를 합니다. 얼마나 했대요? 아침부터 낮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도 없었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도 답답했나보죠?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우상이 응답을 하겠어요? 이 모습을 보면서 엘리야가 그들에게 말을 합니다.

열왕기상 18장 27절,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이보쇼, 거 응답이 없은 걸 보니 더 큰 소리로 하셔야겠네. 혹시 지금 묵상하고 있는지, 아니면 잠깐 외출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졸고 있는지 알어? 좀 더 큰 소리로 해봐.
이렇게 말을 하니까, 정말 그런 줄 알았는지, 아니면 자존심이 상했는지 모르지만, 더 기를 쓰고 난리를 치기 시작합니다.
본문 28절~29절,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이제 자기 몸까지 상하게 하면서 저녁 때까지 미친 듯이 떠들어댑니다. 그런데 뭐래요?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도 돌아보는 자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죠. 응답이 있으면 바알이 신이게요? 하지만 우상은 응답을 하지 않습니다. 우상한테 하루 종일 미친 듯이 소리치며 외쳐보십시오. 응답은 없고 몸만 피곤할 뿐입니다.
이제 엘리야가 일어섭니다.
30절~35절까지 봅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여호와의 제단을 쌓습니다. 이스라엘의 지파의 이름으로 돌들을 쌓아서 여호와의 제단을 만들고, 나무를 벌여놓고서 송아지를 각을 떠서 올려놓고는, 거기에 물을 부으라고 합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번제물과 나무에 불을 부으라고 해요.
여러분 중에서도 캠핑 같은 데에 가서, 장작불 같은 데에 불을 붙여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냥 나무에 불을 붙이려고 해도 잘 붙지 않습니다. 그래서 종이에 불을 붙이고는 그걸 넣어보기도 하고 해도, 기술이 없으면 잘 안 되요.
그렇게 그냥 붙여도 불이 제대로 붙을까 말까인데, 이제 통 넷에 물을 채워서 세 번을 부으라는 것입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겠어요. 물이 펑펑 흘러서 나무고 번제물이고 간에 모두 물에 흠뻑 젖은 상태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의 힘으로는 불을 붙일래야 붙일 수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본문 36절~37절입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우상들을 향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소리 지르고 난리 쳤던 그들한테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습니다만, 엘리야는 이제 단 한번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응답하소서, 저들이 하나님은 여호와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라고 단 한 마디 기도를 드렸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 본문 38절,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하늘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불길이 내려오더니 번제물과 나무만이 아니라, 거기 있던 돌과 흙을 태우고는, 그것도 모자라서 도랑의 물까지 모조리 불살라버렸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역사입니까.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응답하지 않으신다……하면서 탄식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시편 94장 9절,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여호와 하나님만이 진정한 하나님이시요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진정한 하나님이십니다. 그 외의 다른 신은 없는 줄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정초에 보면 일본에서는 올해에도 많은 사람들이 절이나 신사를 찾아서 이른바 하츠모데에 가서 돈을 던지고 두 손을 모아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우상한테 아무리 돈을 던지고 기도해봐야 소용 없는데. 절대로 응답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이는 마치 배가 고픈 사람이 음식 사진이 찍힌 요리책을 보거나 텔레비전으로 요리방송을 보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 걸 아무리 본다고 배가 불러오나요. 우상을 섬기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죽을 힘을 다해서, 온 재산 다 털어서 우상을 섬겨봤자 헛것입니다.
우상을 만들어놓고는 거기에 대고 절을 하면서 비는 것에 대한 허망함을 이사야서에서는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4장 13절~17절에 보면,
“목공은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곡선자로 그어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집에 두게 하며 그는 자기를 위하여 백향목을 베며 디르사 나무와 상수리나무를 취하며 숲의 나무들 가운데에서 자기를 위하여 한 나무를 정하며 나무를 심고 비를 맞고 자라게도 하느니라 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 그 중의 절반은 불에 사르고 그 절반으로는 고기를 구워 먹고 배불리며 또 몸을 덥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이 얼마나 허망합니까. 나무를 베어서 어떤 것은 땔감으로 쓰고, 어떤 것으로는 고기를 굽고, 또 남은 것으로는 보기 좋게 조각을 하고는 그 앞에 엎드려서 내 소원을 들어 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을 보니, 흥미로운 방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유명 연예인들이 나와서 좋은 것과 안 좋은 것을 구분하는 방송이었습니다. 제가 보았던 방송에서는, 첫번째 문제는 100만엔짜리 포도주, 또 한 쪽은 5천엔짜리 포도주를 구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문제는 한쪽은 일본산 최고급 소고기를 요리한 것이고, 다른 한쪽은 수입산 냉동 소고기를 요리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먹어보거나 마셔보고 비싼 쪽을 A와 B 중에서 고르라는 것이지요. 거기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은 워낙 유명 연예인들이기 때문에 평소에 좋은 것도 많이 먹고 마시고 하는 사람들이니까 모두 알아맞힐 것도 같은데, 어이없게도 틀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또 이런 문제도 있었습니다. 바이올린 두 대와 첼로 한 대로 3중주를 하는데, 그 악기를 합한 가격이 한쪽은 25억엔이고, 다른 한쪽은 80만엔입니다만, 그 소리를 구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인데, 이는 이른바 소리로 먹고 사는 현역 유명 가수들도 틀리고 했습니다.
어떠세요? 우리는 맞힐 수 있을까요? 알고 보면 이게 참 힘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맞힐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런 문제를 당할 일이 없으니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혹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아닙니다. 우리는 수시로 이런 문제 앞에 놓이게 됩니다.
여러분께서는 하나님을 알아 보십니까. 하나님을 알아보실 자신이 있으십니까. 하나님 마음을 알아보실 자신이 있으십니까. 하나님 음성을 알아보실 자신이 있으십니까. 우리가 살다 보면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어느 쪽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지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이를 알아보는 몇가지 방법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첫 번째는 성경입니다. 성경 말씀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성령님이 사도들을 통해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기도입니다. 내가 어떤 것을 두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응답이 안 옵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답답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나요?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많이 한다고 무조건 응답하십니까? 아니면 기도를 크게 한다고 무조건 응답하십니까? 아닙니다. 그 기도가 하나님 마음에 맞아야 응답됩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다면 중언부언 기도를 할 필요도 없고, 목이 쉬도록 힘들게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는, 기도하는 내 자신이 피곤하지도 않습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마음에 평안이 다가옵니다.
기도는 내 생각을 주구장창 늘어놓는 것이 기도가 아닙니다. 내 고집을 굽히지 않고 예수님 앞에 떼를 쓰는 것이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이 때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지금 내 옆에 예수님이 계셔서, 지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주님께 물으면 어떻게 말씀하실까. 이것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따라 나아갈 때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주신 놀라운 응답과 축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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