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 목사 설교

[설교동영상/본문] 제29회 묵묵히 주목하시는 하나님

홍성필 2021. 6. 2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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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묵묵히 바라보시는 하나님
2016년 6월 12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24장 10절~27절
“이에 종이 그 주인의 낙타 중 열 필을 끌고 떠났는데 곧 그의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 그 낙타를 성 밖 우물 곁에 꿇렸으니 저녁 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였더라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서 있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더라 그가 우물로 내려가서 물을 그 물동이에 채워가지고 올라오는지라 종이 마주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네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그가 이르되 내 주여 마시소서 하며 급히 그 물동이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고 마시게 하기를 다하고 이르되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서도 물을 길어 그것들도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급히 물동이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낙타를 위하여 긷는지라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낙타가 마시기를 다하매 그가 반 세겔 무게의 금 코걸이 한 개와 열 세겔 무게의 금 손목고리 한 쌍을 그에게 주며 이르되 네가 누구의 딸이냐 청하건대 내게 말하라 네 아버지의 집에 우리가 유숙할 곳이 있느냐 그 여자가 그에게 이르되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 또 이르되 우리에게 짚과 사료가 족하며 유숙할 곳도 있나이다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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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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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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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묵묵히 주목하시는 하나님’ 黙って見つめる神様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한국에서 있을 때, 일본어를 가르치고 그러다 보니 제가 무척 어학에 소질이 있고 재능이 있고 그렇게 생각하셔서 그런지, 제가 간혹 수업 때, “아, 저는 어학에 소질이 없습니다”는 말을 하면 다들 놀라시기도 하고, 지나친 겸손이라고 하기도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정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몇 년 살다왔기 때문에 그나마 외국 사람과 영어로 몇 마디 말할 수 있는 것이지, 미국에 가기 전에는 솔직히 엄무도 못 냈습니다.
어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모두 어학에 소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가 언제 알았냐 하면, 한국에서 제 수업을 듣는 분 중에 한 분이 있었는데, 이 분은 학원에서 영어 토익을 가르치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이 영어 선생님이 저더러 하는 말이, 도대체 일본어 단어가 안 외워진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잘 외워지냐고 저한테 질문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죠. 선생님이 영어를 가르칠 때 수업에서 학생들한테 말하는 식 그대로 하면 됩니다, 라고 했더니 맞다고 하면서 웃으십니다. 자기는 수업 때 학생들한테 말은 하면서도, 막상 자기가 하려니까 힘든 거예요.
듣기에는 요즘은 영어를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다고 하는데, 저 때까지만 하더라도 영어는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것 참 어렵더군요. 뭐가 어렵냐 하면 일단 단어부터 외우는 게 문제입니다. 영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단어 외우는 것도 재미있다고 하는데, 저는 문법이나 독해는 고사하고 단어 외우는 게 정말 어려웠습니다.
다른 과목, 이른바 암기과목들은, 예를 들어서 A를 외웠는데, A가 시험 때 나오면 점수를 딸 수 있잖아요? 그런데 단어시험이 아니라면, 영어 단어 하나 외운다고 점수가 몇 점 오르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럴 때면 영어선생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모두 같습니다. 맨 처음에는 아무리 단어를 외워도, 아무리 공부를 하더라도 좀처럼 점수가 오르지 않지만, 어느 순간에 그 효과가 팍 나타난다는 것이죠.
사실 이 말씀이 정확합니다. 단어 몇 개 외운다고 그 나라 말을 이해할 수 있나요. 하지만 거기서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단어를 외우다보면, 나중에는 그 단어들 하나하나가 서로 결합되어져서 갑자기 이해가 되는 시점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그토록 갈망하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건강하게 성장하고 이제 결혼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혼상대를 구해올 임무를 맡기게 되는데,

창세기 24장 2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そのころ、アブラハムは、自分の全財産を管理している家の最年長のしもべに、こう言った。

라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이 종을 불러서 이삭의 결혼상대를 구해오는 막중한 임무를 맡기는데 아무한테나 맡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데리고 있는 종들 중에서 자신의 전재산을 관리하고 있는 종…그러니 얼마나 아브라함이 신뢰하는 충성된 종이겠습니까. 이 종에게 이 중차대한 임무를 맡깁니다.
당시 아브라함이 머물고 있던 가나안 땅에도 여인들은 있었습니다만, 아브라함은 창세기 24장 3절~4절에서 자신의 종에게 하는 명령을 보면,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私はあなたに、天の神、地の神である主にかけて誓わせる。私がいっしょに住んでいるカナン人の娘の中から、私の息子の妻をめとってはならない。
あなたは私の生まれ故郷に行き、私の息子イサクのために妻を迎えなさい。」

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을 한 것은 단순히 다른 민족과 피가 섞이는 것을 우려했던 것이 아니라 믿음의 순결성을 상징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킬 것인가, 또는 세상과 타협할 것인가의 사이에서 고민할 때의 답은 명확합니다. 아브라함은 힘이 들더라도 믿음의 순결성을 지킬 것을 선택하였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이 충성된 종은 이제 가나안을 출발하여, 낙타 열 마리를 끌고 아브라함의 고향인 메소보다미아까지의 먼 길을 떠납니다. 마침내 도착한 다음에는 자 이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신부감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그 종한테 말하기를 자기 고향에서 신부감을 찾으라고만 말했을 뿐, 어떻게 찾으라고 하는, 그 방법까지는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자, 이제 목적지에 도착하고 찾아야 하는데,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글쎄요, 그 지역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샅샅이 뒤져가며 거기 사는 젊은 여인들을 보고 다닐 수도 있었겠고, 또 다른 방법이라면, 아브라함은 돈도 많았을 것이고, 뒤에 보니 선물도 넉넉하게 가져갔었으니, 좀 더 스케일이 크게 미스 코리아가 아닌, 미스 메소보다미아 대회라도 열어서 괜찮은 여성을 뽑았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아브라함의 종은 어떻게 했어요? 오늘 말씀 11절~14절에 보니,

“그 낙타를 성 밖 우물 곁에 꿇렸으니 저녁 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였더라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서 있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彼は夕暮れ時、女たちが水を汲みに出て来 るころ、町の外の井戸のところに、らくだを伏させた。そうして言った。「私の主人アブラハムの神、主よ。きょう、私のためにどうか取 り計らってください。私の主人アブラハムに恵みを施してください。ご覧ください。私は泉のほとりに立っています。この町の人々の娘 たちが、水を汲みに出てまいりましょう。私が娘に『どうかあなたの水がめを傾けて私に飲ませてください。』と言い、その娘 が『お飲みください。私はあなたのらくだにも水を飲ませましょう。』と言ったなら、その娘 こそ、あなたがしもべイサクのために定めておられたのです。このことで私は、あなたが私の主人に恵みを施されたことを知る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

이제 아브라함의 고향인 메소보다미야에 있는 나홀 성에 도착해서, 낙타들을 성 밖 우물 곁에 꿇렸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처음으로 무엇을 했어요? 예, 그렇죠. 기도를 했습니다. 과연 아브라함의 충성된 종 다운 모습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를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당시 우물에 물을 길으러 가는 일은 여성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만, 자기가 이제 그 여인들 중에 한 소녀한테 그 물을 좀 마시게 해다오, 하고 부탁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보통 그렇게 하면 대부분 승낙을 하겠죠. 여기 있어요, 자 마시세요. 그 정도는 누구나 할 것이기 때문에 이 종은 거기에 조건을 더 답니다. 자기한테만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데리고 온 낙타들한테도 물을 마시게 하겠다고 말하면, 그 여성이 바로 하나님이 낙점하신 사람이라고 알겠습니다 하고 기도를 한 것입니다.
18절~20절에 보니까,
“그가 이르되 내 주여 마시소서 하며 급히 그 물동이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고 마시게 하기를 다하고 이르되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서도 물을 길어 그것들도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급히 물동이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낙타를 위하여 긷는지라”
すると彼女は、「どうぞ、お飲みください。だんなさま。」と言って、すばやく、その手に水がめを取り降ろし、彼に飲ませた。彼に水を飲ませ終わると、彼女 は、「あなたのらくだのためにも、それが飲み終わるまで、水を汲んで差し上げましょう。」と言った。彼女 は急いで水がめの水を水ぶねにあけ、水を汲むためにまた井戸のところまで走って行き、その全部のらくだのために水を汲んだ。

일단 사람이 먼저니까 그 아브라함의 종한테 물을 마시게 하고, 그 다음에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이 종이 기도한 것과 같이 낙타를 위해서도 물을 마시게 하겠다고 하고는 준비를 시작합니다. 여기에 보면 <급히>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이 종에게 물을 줄 때에도 <급히>라고 하고, 낙타들한테 물을 줄 때에도 <급히>라고 합니다. 왜 리브가는 이렇게 서둘렀을까요?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한테 물을 달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목이 마른 상태일까”라고 상대방의 마음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서둘러서 준비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도 누군가가 내게 부탁을 할 때에는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리고 이제 낙타들한테 물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말씀만 들으면, 아, 그런가보다, 기특한 일을 했네, 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여기서 생각해보세요. 당시에 긴 여행 때에는 반드시 낙타를 데리고 갔던 이유가, 여러분도 다 아시는 것처럼 물을 몸 안에 저장해둘 수 있어서, 오랫동안 물을 먹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번 물을 마시면 그만큼 많은 물을 마시겠죠. 자, 지금 이 열 마리 낙타들은 지금 방금 오랜 여행 끝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목이 마른 상태겠어요. 제가 인터넷에서 살펴보니까 낙타 한 마리가 물을 마실 때에는 보통 50리터 정도를 마시는데 목마를 때 마시는 양은 대략 120리터에서 200리터까지도 마신다고 합니다. 잘 감이 안 오시죠? 알기 쉽게 말하자면, 낙타 한 마리 당 물을 드럼 통 하나만큼 마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낙타가 몇 마리였어요? 예, 열 마리였습니다. 이 열 마리가 얼마나 목이 말랐겠어요.
이제 물을 퍼오기 시작합니다. 드럼통 열 통이나 되는 물을 한 번에 퍼올 수 있었겠어요? 그래서 한 번 퍼오니까, 잔뜩 목이 말랐던 낙타들이 얼마나 허겁지겁 마셨겠어요. 그러니까 물동이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물을 길러와서는 다시 붓고 또 다시 달려가서 물을 길러와서 다시 붓고…아마 이 일을 몇 번이고 했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되는 물이었죠? 예, 드럼통 열 통이나 되는 물을 혼자서 이렇게 낑낑 대면서 길러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리브가가 힘이 장사였어요? 아주 무슨 여장부처럼 힘이 좋았나요?
16절에 보면 리브가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심히 아름답다”고 합니다. 물론 힘이 좋은 여성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만약에 체력이 좋게 생겼다면 그와 같은 묘사가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 어디에도 체격이 좋다거나 힘이 셌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리브가가 이렇게 열심히 베풀었다는 것은 바로 그 마음씨가 그야말로 “심히 아름다웠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도, 외모보다도 우리 마음씨가 “심히 아름다운”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이렇게 심히 아름다운 리브가가 열심히 우물과 낙타를 허겁지겁 왔다갔다 하면서 물을 날으고 있을 때, 이 아브라함의 충성된 종은 무엇을 하고 있었어요? 리브가를 도왔나요? 물론 2절에 보면 <늙은 종>이라는 말씀은 있습니다만, 아니, 그래도 빈 물통이라도 날라준다거나 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그런데도 이 종은 뭘 하고 있었다고 해요?

21절에 보니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この人は、主が自分の旅を成功させてくださったかどうかを知ろうと、黙って彼女を見つめていた。

리브가가 일하는 모습을 묵묵히 주목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 매정하죠? 제가 만약에 리브가였다면 그랬을 것 같습니다. “아니, 내가 지금 남의 낙타한테 물을 주는 것도 아니고 당신 낙타한테 물을 주고 있는데, 좀 도와주는 시늉이라도 해요” 그랬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이렇게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는 종한테는 아랑곳 하지 않고 리브가는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합니다.
그렇다면 이 아브라함의 종은 왜 가만히 묵묵히 리브가를 보고만 있었던 것일까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그것은 바로 <리브가에게 줄 축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종이 리브가를 보았을 때, 그 임무를 끝까지 완수하느냐 안 하느냐는 큰 고비였습니다. 그 임무를 끝내게 된다면 그녀는 영광스러운 아브라함의 족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믿음의 족보에 들어가는 크나큰 축복을 받게 될 것이요, 만약에 그 임무를 도중에 포기한다면 그 축복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말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리브가가 우물과 낙타 사이를 몇 번 왔다갔다 했는지는 기록에 나오지 않습니다만, 예를 들어서 열 번이라고 한다면, 7번이나 8번쯤 됐을 때, 자신이 받을 축복을 조금이라도 들을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9번째에라도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었을까요? 아니요.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왜요? 이 충성된 종은 그저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침내 그 종이 데려왔던 낙타한테 물을 다 마시게 한다는 임무를 완수했을 때 어떻게 됐습니까.

22절에 보면,
“낙타가 마시기를 다하매 그가 반 세겔 무게의 금 코걸이 한 개와 열 세겔 무게의 금 손목고리 한 쌍을 그에게 주며”
らくだが水を飲み終わったとき、その人は、重さ一ベカの金の飾り輪と、彼女の腕のために、重さ十シェケルの二つの金の腕輪を取り、

모든 임무를 끝까지 완수하니까 그제서야 비로소 상을 받게 되고, 그 뿐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족보에 들어갈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 6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민족이 여리고 성을 공략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너희들이 6일 동안은 여리고성 주위를 하루에 한 바퀴씩만 돌고, 7일째에는 성 주변을 일곱 번 돌고 큰 소리로 외치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첫째날, 둘째날, 세째날…이렇게 돌고 있는데, 그럼 조금씩 성벽이 무너져 내렸나요? 아니요. 작은 금 하나 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다섯째날도 여섯째날, 그리고 일곱째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동안 하나님은 다른 데에서 볼일 보고 계셨어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묵묵히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왜죠?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의 충성된 종이 허겁지겁 일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을 때처럼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실 축복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내리셨던 명령을 이스라엘 민족이 모두 완수하고 마지막 날에 큰 소리로 외칠 때, 그 때까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든 그 단단한 여리고 성의 성벽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비단 과거만의 일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에 보면,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聞きなさい。私はあなたがたに奥義を告げましょう。私たちはみなが眠ってしまうのではなく、みな変えられるのです。

이제 다가올 마지막 날에도 구원받은 우리는 천천히가 아니라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한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 축복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가 고통 받거나 힘들어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묵묵히 바라보는 하나님,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기 위해, 우리가 끝까지 믿음을 놓지 않기를 가슴 졸이면서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 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私たちすべてのために、ご自分の御子をさえ惜しまずに死に渡された方が、どうして、御子といっしょにすべてのものを、私たちに恵 んでくださらないことがありましょう。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나를 위해서 1억, 2억을 주셨는데, 그런 사람이 나를 위해서 천원, 2천원을 아끼시겠어요? 하물며 하나님은 1억, 2억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님까지도 아끼지 않으신 분이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지금 우리에게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아무리 기도를 해도, 아무리 봉사를 해도 응답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기 때문인가요? 하나님이 바빠서 다른 곳에 가 계시기 때문인가요? 하나님이 피곤해서 주무시기 때문인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나요? 그렇습니다. 우리를 묵묵히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빨리 응답을 해주지거나 도와주시지 않고 그저 묵묵히 지켜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실 크나큰 축복이 있기 때문일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4장 13절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しかし、最後まで耐え忍ぶ者は救われます。

묵묵히 바라보는 아브라함의 종 앞에서 낙타 열 마리 중 일곱마리한테만 물을 마시게 하고 포기했다면, 여덟마리, 아니, 아홉마리한테만 물을 마시게 하고 포기했다면 리브가는 그 축복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시나요? 묵묵히 바라보고만 계시나요? 축하드립니다. 하나님의 큰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고 견디고 인내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큰 축복, 주님이 주시는 크나큰 축복을 바라보고, 마침내 큰 상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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