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 목사 설교

[설교동영상/본문] 제325회 하나님의 뜻대로

홍성필 2022. 2. 9.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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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5회 하나님의 뜻대로
2022년 1월 30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kirin.kr
kirin@kirin.kr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28節
“28. 神を愛する人たち、すなわち、神のご計画にしたがって召された人たちのためには、すべてのことがともに働いて益となることを、私たちは知っ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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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한 달에 1,000원>
<물 한 그릇 선교후원>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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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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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70번째 시간으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神のご計画にしたがって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 기억이 있습니다만 주일학교 다닐 시절, 여러 개 적어준 성경구절 중에서 하나를 외워가면 스티커를 하나씩 붙여주었습니다. 그래서 거기 종이에 다 붙이면 선물을 주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는 거의 빠짐없이 들어가는 구절이 바로 오늘 구절, 로마서 8장 28절이었습니다.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28節
“28. 神を愛する人たち、すなわち、神のご計画にしたがって召された人たちのためには、すべてのことがともに働いて益となることを、私たちは知っています。”

참 읽으면 읽을수록 은혜가 가는 말씀 아닙니까.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말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릴게요.

참 이 구절, 읽으면 읽을수록 은혜가 된다고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께서는 이 말씀, 읽으면 읽을수록 은혜가 되는 것처럼 여겨 지십니까.

자,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경구절, 로마서 8장 28절보다도 더 유명한 구절이 있지요.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외우시는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神は、実に、そのひとり子をお与えになったほどに世を愛された。それは御子を信じる者が、一人として滅びることなく、永遠のいのちを持つためである。

이 말씀도 역시 참 읽으면 읽을수록 은혜를 받는다……는 말씀 많이 들으셨지요?

아직 신앙이 없거나 아니면 초신자인 분이 여러분께 이 구절의 뜻, 특별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부분의 뜻을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으면서 조심해야 되는 부분은 무엇이냐 하면 대충 짐작으로 넘어가는 것, 나는 잘 모르지만 남들이 이렇다고 하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것, 사실 이 부분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마치 나는 사실 잘 모르는데,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예전에 제가 IT 관련 회사에 다닐 때 보면, 저는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에 관해서 잘 알지 못하니까 그것에 대해서 좀 물어보려 가잖아요? 그러면 대부분 친절하게 잘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이쪽이 물어보는데 갑자기 큰 소리를 내는 경우가 있어요. 그리고 또 어떤 때 보면, 내가 물어본 것에 대해서 말해주지는 않고, 막 이런저런 어려운 이야기를 해요.

저는 맨 처음에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몰랐는데, 누가 이런 설명을 해주더군요.

친절하게 잘 가르쳐줄 때를 보면 자기가 아는 질문이라는 거예요. 자기가 아는 것이라면 친절하게 잘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 갑자기 큰 소리로 화를 내거나, 아니면 막 이런저런 어려운 이야기를 할 때는 뭐냐 하면, 제가 한 질문에 대한 답을 자기도 모를 때라는 것입니다.


제가 한 질문을 자기도 모르는데, 모른다고 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하니까, 아이 참 지금 바쁜데 그런 걸 물어 가지고 귀찮게 구냐고 한다거나, 아니면 무슨 전혀 상관 없는 복잡한 이야기를 해가면서, 자기는 이런 어려운 것도 아는 사람이라고 과시를 하려고 한다거나 하는 거죠.

이런 경우, 교회에도 보면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겪었다기 보다는 주위에서 가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어요. 성경에 대해서 질문을 했더니만 막 화를 내면서 왜 성경을 의심하느냐고, 성경말씀은 의심하지 말고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막 혼이 났다는 것이에요.


글쎄요. 뭐, 그 분은 전도사님이었다고 하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몰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자기도 그런 식으로 배워 오셔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니, 질문을 하는 것이 잘못이에요? 비판 하자는 것이 아니고, 제대로 알기 위해서 질문을 하는 것인데, 그걸 가지고 왜 의심을 한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는 일이지요.

그리고 전도사님이 아니라 목사이라 하더라도 성경에 대해서 어떻게 100% 다 알 수 있겠습니까. 한평생 성경만을 연구한 신학대 교수들도 모르는 일들이 많은데, 모른다고 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자기가 모르는 내용이었다고 한다면, 솔직하게 아, 이 부분은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한 번 제가 자료를 찾아보겠습니다……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수치예요? 아닙니다.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요. 다만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주일학교 때 이야기로 돌아간다면, 그 외워오라고 준 그 프린트에 적힌 성경구절의 뜻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들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냥 외워오라는 거예요. 외워오면 그 종이, 지금도 생각 나는데, 포도 송이에 번호가 붙어 있는 종이에요. 그 번호가 붙여진 포도송이 위에 하나씩 스티커를 붙여주고, 다 채우면 선물을 줘요.

성경구절 의미도 잘 몰랐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질문도 안 했습니다. 괜히 나서는 것 같고,, 그리고 또 질문을 한다고 혼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질문을 했다가 혼이 나면 어떡해요. 그래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는 그냥 외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어른이 되어까지도 역시 그 정도라면 곤란하겠지요. 모르는 것은 우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대한 모든 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읽고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도 모르면 물어 봐야지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도 모르는 것이 많아요. 제가 모른다고 한다면 역시 저도 자료를 찾아보고 해서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다시 오늘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으로 돌아오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神は、実に、そのひとり子をお与えになったほどに世を愛された。

이게 무슨 뜻이에요. 특히 ‘이처럼 사랑하사’ 중에서 ‘이처럼’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 지시대명사인데, 그렇다면 ‘이처럼’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냐는 것이지요. 누군가가 이 점에 대해서 물으시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사실 이는 한국어 번역이 좀 매끄럽지 않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한글 개역개정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라고 되어 있는데, 외국어 성경들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일본어 성경 신개역 2017 판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神は、実に、そのひとり子をお与えになったほどに世を愛された。”


이를 번역하면 “하나님은 실로 독생자를 주셨을 정도로 세상을 사랑하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 번역도 이런 식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은, 알기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죄 많은 우리를 위해 그 아끼시는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달리게 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뜻인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주일학교에서도 좀 이렇게 알기 쉽게 성경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는 분이 계셨더라면, 이 성경의 참 맛을 조금 더 일찍 알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이는 좀 더 심각할 수가 있어요.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すべてのことがともに働いて益となる

이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든 게 다 우리에게 득이 된다……이게 맞습니까 틀립니까.

한 가지 다른 말씀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すべて疲れた人、重荷を負っている人はわたしのもとに来なさい。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休ませてあげます。

이 말씀도 역시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여러분께서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이에 아무 것도 안 하고 편안하게 쉬기만 하면 된다?

예전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 해 놓으셨으니까 우리는 이제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는 것이에요. 예수님께서는 그럼 우리더러 아무 일도 안 해도 된다고 말씀 하셨나요?

성경구절을 외우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렇게 반 토막을 내어서 부분적으로 외우기만 한다면 여기에는 큰 잘못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すべて疲れた人、重荷を負っている人はわたしのもとに来なさい。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休ませてあげます。


이 구절 뒤에는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30절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わたしは心が柔和でへりくだっているから、あなたがたもわたしのくびきを負って、わたしから学びなさい。そうすれば、たましいに安らぎを得ます。
わたしのくびきは負いやすく、わたしの荷は軽いからです。」

예수님을 믿는다는 그저 아무 것도 안 하고 아멘~ 할렐루야~만 하고 있으라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워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세상 속에서 세상의 법칙 대로 힘겹게 살아왔으나,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법칙대로 살게 된다면, 그게 훨씬 쉬운 일이요, 우리가 쉼을 얻게 될 것이요, 진정한 자유와 소망을 얻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예수님께 배울 수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배울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마태복음 11장 28절, 우리를 쉬게 하신다는 말씀만 믿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멍에를 메라는 말씀은 안 믿으시겠습니까?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쉬고 싶어요?

그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반쪽짜리 믿음이지요. 반쪽짜리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안 믿는 거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신명기 18장 13절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あなたは、あなたの神、主のもとで全き者でなければならな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리 힘으로는 완전하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하고,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으로부터 배우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멍에를 메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28節
“28. 神を愛する人たち、すなわち、神のご計画にしたがって召された人たちのためには、すべてのことがともに働いて益となることを、私たちは知っています。”

이 말씀은 무조건 모든 일이 다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왜 반쪽만 읽고 자기 편한 대로 해석을 하려고 합니까. 그것은 예를 들어서 내가 지금 과식을 해서 배탈이 났는데 안약을 눈에 한 방울 넣으면 이 배탈이 나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믿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입니까. 아니에요. 그것은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면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그냥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다 좋은 일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이는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어야 하고, 둘째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조건입니다.


어떤 사람이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원서를 냈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봐서 붙었어요.

그 사람보다 좋은 학교를 나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보다 능력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 떨어졌는데 이 사람만 붙었어요.

그러면 단순하게 생각해보겠습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해서 회사에 붙을 수가 있었을까요.

이건 어렵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회사에서 그 사람을 뽑았기 때문인 것이지요.

이것은 실제로 예전에 제가 다녔던 회사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 해 신입사원시험을 봤는데, 그 중에서 한 여자 응시생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제가 실제로 그 사람을 만나지는 못해서 정확하게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만, 아무튼 면접관들의 말에 의하면 사람은 정말 참 괜찮대요. 그런데 이 사람을 쓸 곳이 마땅치 않다는 거예요.

아니, 무슨 대단한 경력직 임원을 뽑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신입사원인데 무슨 뜻일까 했습니다만, 저는 당시 말단이었기 때문에 제가 뭐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인사부 담당자의 그런 말에 어떤 부장님이 관심을 보였어요.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라면 내가 한 번 만나봐도 되겠냐고 했던 거지요. 그래서 따로 그 여자 응시생한테 연락을 해서 그 부장님이 면접을 봤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기하죠. 면접을 본 이 부장님의 말이 똑 같은 거예요. 사람은 참 괜찮은데 막상 쓸 자리가 마땅치 않다는 거예요. 저는 여전히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제가 신기할 정도이니 다른 사람들도 신기했나 보죠. 마침 제가 당시 근무했던 기획실의 실장님이 또 관심을 보였어요. 그래서, 아니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라면 우리 기획실에서 써보면 되겠네 하시면서, 이번에는 자기가 만나보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세 번째로 그 사람을 불러내서 이번에는 기획실장이 면접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걸 어쩌면 좋습니까. 이 기획실장님도 역시 똑 같은 말을 하는 거예요. 아……정말 사람 참 괜찮은데……사장님 비서로 쓰면 딱 좋을 것 같은데……비서는 이미 있고……아……정말 마땅히 쓸 곳이 없네…….

이렇게 해서 그 사람은 세 번이나 면접을 보았습니다만, 결국 그 사람은 회사 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능력이 없어서요? 아니요. 능력이 없었다면 애초에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겠지요.

저는 그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기에 능력 있고 괜찮은 사람인데 세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면접을 봤는데도 다 떨어졌는지, 지금까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를 뒤집어본다면 반대로 붙은 사람들은 무엇입니까. 합격한 사람들 중에는 그 사람보다 능력이 좀 모자란 사람도 있었는지 모르지요.

하지만 붙었다는 것은 적어도 그 사람을 어디에 써야 하겠다. 어느 부서에 배치하면 좋겠다. 어떤 일을 맡기면 잘 하겠다 하는 회사 쪽의 명확한 계획이 있어서 아니겠습니까.

저는 지금까지 여러 시험을 봐왔습니다만, 그 중에서는 제가 왜 붙었는지, 제가 왜 떨어졌는지 이유를 모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그것은 제 의지가 아니라 저를 뽑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서 결정 되는 것이라고 하겠지요.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는 두 쌍둥이 아들이 있었습니다. 형의 이름은 에서이고 동생 이름은 야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서를 택하지 않으시고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창세기 25장을 보시겠습니다.

창세기 25장 21절~23절
“21.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22.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21.イサクは、自分の妻のために主に祈った。彼女が不妊の女だったからである。主は彼の祈りを聞き入れ、妻リベカは身ごもった。
22.子どもたちが彼女の腹の中でぶつかり合うようになったので、彼女は「こんなことでは、いったいどうなるのでしょう、私は」と言った。そして、主のみこころを求めに出て行った。
23.すると主は彼女に言われた。「二つの国があなたの胎内にあり、二つの国民があなたから分かれ出る。一つの国民は、もう一つの国民より強く、兄が弟に仕える。」


여기에 보면,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一つの国民は、もう一つの国民より強く、兄が弟に仕える。

라고 말씀하십니다. 큰 자는 형이요 작은 자는 동생이 되겠지요. 그러니까 이 말씀은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지금 에서와 야곱은 어디 있어요? 예,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어요. 엄마 뱃속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하나님께서는 에서가 아닌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성경에 나오나요? 예, 나옵니다.


말라기 1장 2절~3절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わたしはあなたがたを愛している。──主は言われる──しかし、あなたがたは言う。『どのように、あなたは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か』と。エサウはヤコブの兄ではなかったか。──主のことば──しかし、わたしはヤコブを愛した。
わたしはエサウを憎み、彼の山を荒れ果てた地とし、彼の相続地を荒野のジャッカルのものとした。

하나님이 야곱을 택하고 에서를 버린 이유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동생 야곱을 택하신 이유는 야곱을 사랑했기 때문이고, 형 에서를 버린 이유는 에서를 미워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무슨 착한 일을 해서요? 에서가 무슨 나쁜 짓을 해서요?

아니에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직 뱃속에 있을 때 이미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택하시고 에서를 버리셨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 결정에 따른 것입니다.

에이, 그런 엉터리가 어디 있어. 그러면 불공평 하잖아…… 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함께 모여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이미 그것 자체가 지극히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만한 착한 일을 했습니까. 아니에요. 우리는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고요? 아까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神は、実に、そのひとり子をお与えになったほどに世を愛された。

이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셨습니다. 얼마나 사랑하셨어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아끼시는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실 정도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매다시고, 피를 흘려서 죽이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해 주시려고 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해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28節
“28. 神を愛する人たち、すなわち、神のご計画にしたがって召された人たちのためには、すべてのことがともに働いて益となることを、私たちは知っています。”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를 일본어 성경에 의하면 神のご計画にしたがって(하나님의 계획에 따라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아, 그냥 부르기로 했으니까 불렀다……가 아니에요.

성경에 보면 우리를 ‘그릇’으로 비유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절~21절
“20.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大きな家には、金や銀の器だけでなく、木や土の器もあります。ある物は尊いことに、ある物は卑しいことに用いられます。
ですから、だれでもこれらのことから離れて自分自身をきよめるなら、その人は尊いことに用いられる器となります。すなわち、聖なるものとされ、主人にとって役に立つもの、あらゆる良い働きに備えられたものとなるのです。

‘그릇’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이유 없이 만들지 않습니다. 분명히 목적대로 사용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 그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뽑으신 이유는, 우리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착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남들보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를 하나님의 그릇으로서 쓰실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회사에 들어가면 말하지 않았는데도 책상도 주고 의자도 주고 컴퓨터도 주고 그 외에 필요한 것들을 다 준비해줍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회사로부터 맡겨진 일을 하라고 하기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정작 회사에서는 맨날 졸거나 딴짓만 하면서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하나도 안 해요. 그러면서 이걸 달라 저걸 달라 하면 주겠습니까.

주기는커녕 머지않아 회사에서 쫓겨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계획이 있으십니다. 우리를 쓰실 계획이 있으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시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이, 그저 딴짓만 하면서 이걸 달라 저걸 달라,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줄 테니까 나는 아무런 걱정도 없다……하면 주님께서 어찌 기뻐하시겠습니까.


이사야 43장 1절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だが今、主はこう言われる。ヤコブよ、あなたを創造した方、イスラエルよ、あなたを形造った方が。「恐れるな。わたしがあなたを贖ったからだ。わたしはあなたの名を呼んだ。あなたは、わたしのもの。

하나님은 우리를 대충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막연하게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우리 이름을 지명하여 부르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우리를 정확하게 부르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 주님께서 주시는 가벼운 멍에를 메고, 온전히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의 삶 속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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