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 목사 설교

[설교동영상/본문] 제244회 활짝 열린 길 앞에서

홍성필 2021. 7. 2.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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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4회 활짝 열린 길 앞에서
20207월 26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37절~38절 신약 84페이지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マルコの福音書 15章37節~38節
“しかし、イエスは大声をあげて、息を引き取られた。すると、神殿の幕が上から下まで真っ二つに裂け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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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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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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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활짝 열린 길 앞에서” 大きくひらかれた道の前で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영혼이 떠나시자 성전 휘장이 찢어졌다고 하는데, 이 일은 공관복음인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사람들에게 대단히 인상 깊은 사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렇게 성전 휘장이 찢어졌다고 하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봄으로 인해서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모두 받으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먼저 우리는 이 휘장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나오는 휘장이라고 하는 것은 성전에서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이 성전에서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지성소인데, 지성소……라고 하면 잘 감이 안 오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를 풀어서 설명하자면 성소를 “거룩한 장소”라고 한다면 지성소는 “지극히 거룩한 장소”라고 하는 뜻이 됩니다.

이 지성소의 넓이는 대략 4.5미터 곱하기 4.5미터 정도, 평수로 대략 6평 정도 다타미 12조 정도 되는 정사각형 모양을 한, 가정집 기준으로 본다면 조금 넓은 방, 정도 되는 공간입니다. 그렇다면 거기는 왜 지성소 즉 “지극히 거룩한 장소”라고 불리느냐 하면, 거기에는 언약궤가 있습니다. 이 언약궤는 법궤 또는 증거궤라고도 하는데, 언약궤 안에는 일반적으로 돌판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돌판은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친히 쓰셔서 모세에게 주신 것입니다.

참고로 여기서 <일반적으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흥미로운 점은, 사실 이 언약궤 안에 정확히 무엇이 들어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좀 의견이 갈립니다.

언약궤 안에 들어있었던 것이 무엇인가라고 하면 보통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 외에, 만나가 들었던 금 항아리와, 싹이 난 아론의 지팡이라고 말합니다.

먼저 만나라고 하는 것은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광야에서 수 백만에 달하는 이스라엘 민족들을 하나님께서 놀라운 능력으로 무려 40년간이나 먹이셨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보관된 것입니다.

한편 아론의 지팡이라고 하는 것은, 민수기 16장에 보면 광야에서 모세의 형 아론을 제사장으로 삼고서는 백성들을 다스리는 모습을 보고서, 다른 지파 사람들이 시기를 합니다. 말하자면 쿠데타를 일으킨 거죠.

우리도 할 수 있는데, 왜 너희들만 해 먹느냐 이것이죠.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각 지파 족장들을 모아놓고 각각 자기 지팡이에 이름을 적어서 언약궤 앞에 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택한 자의 지팡이에서 싹이 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다음날 보니까 어떻게 되었냐 하면, 민수기 17장 8절을 보시겠습니다.

민수기 17장 8절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その翌日、モーセはあかしの天幕に入って行った。すると見よ。レビの家のためのアロンの杖が芽を出し、つぼみをつけ、花を咲かせて、アーモンドの実を結んでいた。

참 놀랍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일을 본 다른 지파 사람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을 택하시고 자기들은 택하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론의 지팡이도 보관하라고 모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아하, 언약궤 안에는 돌판과 만나가 든 금항아리와, 싹이 난 아론의 지팡이가 들어있었구나……하면 되는데, 그게 또 쉽지 않습니다. 열왕기상 8장 9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거든요.

열왕기상 8장 9절
“그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맺으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箱の中には、二枚の石の板のほかには何も入っていなかった。これは、イスラエルの子らがエジプトの地から出て来 たとき、主が彼らと契約を結ばれた際に、モーセがホレブでそこに納めたものである。

이와 같은 내용은 역대하 5장 10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그 안에는 두 돌판이 들어있을 뿐이었고,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아,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이 적힌 돌판만 들어있었구나 하고 끝나면 좋겠는데, 여기에도 또 문제가 있습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9장 3절~4절을 보시겠습니다.

히브리서 9장 3절~4절
“3.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4.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また、第二の垂れ幕のうしろには、至聖所と呼ばれる幕屋があり、
そこには金の香壇と、全面を金でおおわれた契約の箱があり、箱の中には、マナの入った金の壺、芽を出したアロンの杖、契約の板がありました。


참 이럴 때 보면 난감합니다. 우리의 성경에 대한 믿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경이야말로 유일하고도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성경에는 전혀 오류가 없다고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열왕기상 8장 9절에 보면 돌판만 들어있었다고 하는데, 히브리서 9장 3절~4절에 보면 돌판만이 아니라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지팡이까지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 번째 견해는 처음에는 언약궤 안에 금항아리와 아론의 지팡이도 함께 들어 있었지만, 나중에 없어졌다고 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4장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을 할 때 이 언약궤를 빼앗긴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 때 금항아리와 아론의 지팡이가 없어지고 돌판만 남았다는 견해입니다.

두 번째 견해는, 이는 성경을 잘 살펴보면 알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자, 여기서 돌판과 만나와 지팡이를 보관할 때의 기록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돌판에 대한 기록을 봅니다.

출애굽기 40장 20절
“그는 또 증거판을 궤 속에 넣고 채를 궤에 꿰고 속죄소를 궤 위에 두고”

また、さとしの板を取って箱に納め、棒を箱に付け、「宥(なだ)めの蓋」を箱の上に置き、


신명기 10장 5절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서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그 판을 내가 만든 궤에 넣었더니 지금까지 있느니라”

私は向き直って山を下り、それらの板を、私が作った箱の中に納めた。主が私に命じられたとおり、それらはそこにある。

이렇게 본다면 돌판을 언약궤 안에 넣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겠지요.

그렇다면 다음으로는 만나가 든 금 항아리입니다.

출애굽기 16장 32절~34절
“32.모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이것을 오멜에 채워서 너희의 대대 후손을 위하여 간수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인 양식을 그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니라 하셨다 하고
33.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34.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

モーセは言った。「主が命じられたことはこうだ。『それを一オメル分、あなたがたの子孫のために保存しなさい。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エジプトの地から導き出したときに、荒野であなたがたに食べさせたパンを、彼らが見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するためである。』」
モーセはアロンに言った。「壺を一つ持って来て、マナを一オメル分その中に入れ、それを主の前に置いて、あなたがたの子孫のために保存しなさい。」
主がモーセに命じられたとおり、アロンはそれを保存するために、さとしの板の前に置いた。


여기서는 언약궤 안에 보관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증거판 앞에” 두게 하였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론의 지팡이에 대해서 보면 민수기 17장 10절입니다.

민수기 17장 10절
“10.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主はモーセに言われた。「アロンの杖をあかしの箱の前に戻して、逆らう者たちへの戒めのために、しるしとせよ。彼らの不平をわたしから全くなくせ。彼らが死ぬことのないようにするためである。」

여기서 보면 이 또한 증거궤 안이 아니라 증거궤 앞으로 가져다가 보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구절들을 근거로 해서, 사실 언약궤 안에는 돌판만 들어 있었고,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지팡이는 언약궤 바깥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하게 되면, 그러면 히브리서 기록은 어떻게 되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히브리서는 분명히 언약궤 안에 모두 들어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신학자들은, 히브리서를 쓴 사람은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언약궤의 개념적인 설명이었기 때문에 세 가지를 하나로 묶어서 기록하였다고 주장을 합니다.

솔직히 이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예, 당장 그걸 한 번 열어보면 되잖아요. 하지만 이게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문제는, 사무엘상 6장 19절에 보면 벧세메스(ベテ・シェメシュ) 사람들이 이 궤를 들여다보았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러니까 함부로 열어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는, 지금은 이 언약궤가 어디에 있는지 행방불명입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자기들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지요. 그러니까 열어보고 싶어도 언약궤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열어볼 방법도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은 학문적으로는 흥미로울 수 있겠습니다만, 우리 믿음에 있어서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말씀이 조금 길어졌습니다만, 언약궤가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셨으리라 여겨집니다.

이 언약궤라고 하는 것은 단지 그 물건이 중요하다기 보다는, 그 언약궤가 가지고 있는 의미, 그리고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라는 장소가 바로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였다라고 하는 점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거기는 대단히 거룩한 장소였기 때문에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대제사장 뿐이었는데, 그 대제사장이라 하더라도 지성소에는 1년에 한 번만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었던 곳입니다.

이 지성소 입구에 있던 것이 바로 오늘의 핵심 내용인 휘장이었던 것이지요. 일반 사람들은 이 휘장 때문에 지성소 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 휘장의 크기에 대해서는 성경에 정확하게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만, 고대 문헌에 의하면 길이가 대략 22미터, 폭은 11미터 정도였다고 합니다. 평수로 따지자면 73평이나 됩니다. 아파트 중에서도 꽤 넓은 아파트가 되겠지요.

그런데 더 흥미로운 점은 이 넓이가 아니라 두께입니다. 많은 분들이 <휘장>이라고 하면 무슨 커튼 같은 얇은 것을 상상하기 쉽겠습니다만, 여러분께서는 이 휘장의 두께가 어느 정도였을 것이라고 짐작되십니까.

한번 여러분의 손바닥을 펼쳐보시기 바랍니다. 최대한 손가락 사이를 붙여서 한 번 펼쳐보세요. 이 폭이 바로 그 휘장 두께였다고 합니다. 대략 9센티에서 10센티 정도였다고 합니다. 두껍죠? 그렇다고 여기 안에 솜이나 스펀지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빽빽하고 단단한 구조였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넓은 아파트 한 채 정도 되는 크기의 카페트, 그리고 두께가 10센티 정도나 되는 카페트가 순식간에 찢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게 상상이 가십니까.

일반 가정집에서 사용하는 카페트는 어느 정도 두께예요? 아무리 두꺼워 봤자 1센티에서 2센티 정도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사람이 찢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요. 솔직히 일반 가위나 칼을 쓴다 하더라도 쉽게 자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1~2센티도 아니고 10센티라고 하면 이는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로 찢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이 휘장이 어떻게 찢어졌다고 합니까.

마가복음 15장 38절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すると、神殿の幕が上から下まで真っ二つに裂けた。”


앞서서 휘장은 높이가 22미터 정도였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백 보 양보를 해서, 정말 사사기에 나오는 삼손과도 같은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이 이 휘장을 찢었다고 해봅시다. 하지만 그럴 경우 휘장은 어떻게 찢어져야 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래에서 위로 찢어져야 했겠지요. 하지만 오늘 기록은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를 찢으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들이 애써 만들어놓은 휘장을 이렇게 찢으셔야만 했을까요.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화가 나서, 속이 상해서 찢으셨을까요?

이를 푸는 중요한 단서는 바로 이 휘장에 그려진 무늬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26장 31절~33절
“31.너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짜서 휘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 놓아서
32.금 갈고리를 네 기둥 위에 늘어뜨리되 그 네 기둥을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네 은 받침 위에 둘지며
33.그 휘장을 갈고리 아래에 늘어뜨린 후에 증거궤를 그 휘장 안에 들여놓으라 그 휘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리라”

また、青、紫、緋色の撚り糸、それに撚り糸で織った亜麻布を用いて、垂れ幕を作る。これに意匠を凝らしてケルビムを織り出す。
この垂れ幕を、金をかぶせたアカシヤ材の四本の柱に付ける。その鉤は金で、柱は四つの銀の台座の上に据えられる。
その垂れ幕を留め金の下に掛け、垂れ幕の内側に、あかしの箱を運び入れる。その垂れ幕は、あなたがたのために聖所と至聖所との仕切りとなる。

여기에 보면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에는 그룹(ケルビム)들을 수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모세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에요.

여러분께서는 혹시 예전에 제가 말씀 드렸던 천사의 구분에 대해서 기억하십니까. 성경에는 세 가지 종류의 천사가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일반 천사와 스랍천사(セラフィム), 그리고 그룹천사(ケルビム)였지요. 일반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를 실행하는 충실한 천사입니다. 성경에서는 천사장 미가엘(御使いのかしらミカエル), 가브리엘 천사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음으로 스랍천사(セラフィム)는 이사야 6장에만 등장하는데, 이는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입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천사가 바로 그룹천사(ケルビム)입니다. 그룹천사가 성경 어디에 처음 등장하는지 혹시 기억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창세기에 벌써 등장을 합니다. 천사들 중에서는 가장 먼저 성경에 기록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어디에 등장하느냐 하면,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에덴에서 쫓겨났다고 하는 사실은 기억하시지요?

그 때의 상황에서 이 그룹천사가 등장합니다.

창세기 3장 24절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こうして神は人を追放し、いのちの木への道を守るために、ケルビムと、輪を描いて回る炎の剣をエデンの園の東に置かれた。


즉 이 그룹천사의 역할은 하나님의 영역을 지키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덴에서는 누구로부터 지키고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담과 하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죄인 아담과 하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는 그룹 천사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성소를 가리고 있던 휘장에 새겨진 그룹 천사의 역할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성소 앞에 있는 휘장에 그룹 천사가 새겨진 이유는, 이 휘장의 역할을 잘 말 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인들이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그룹천사가 새겨진 그 크고 두꺼운 휘장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운명하시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그것도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는 그 때까지는 우리가 죄인이었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해서, 다시 말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인해서, 우리의 모든 죄가 해결되고, 우리 앞에 가로막혀 있던 그 두꺼운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는 친히 하나님께서 찢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휘장이 있는 동안에는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용서를 받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의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모두 해결해 주심으로 인해서, 우리의 모든 죄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이를 보면 모세 때의 홍해가 떠오릅니다.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습니다. 약 200만 명에 달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은 싸울 수 있는 무기도 없고, 싸우는 방법도 모릅니다. 태어날 때부터 노예였던 그들은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저 앉아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마치 그 두꺼운 휘장을 위에서 아래로 찢어주셨던 것처럼 홍해를 가르시고, 그 가운데로 남녀노소 수많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건너게 해주셨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추격해오는 애굽의 최정예 군대를 한 사람도 남김 없이 모두 홍해 바다 속으로 잠겨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람의 힘으로는 홍해 앞에서 애굽 군대에 의해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야만 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가로막힌 휘장 앞에서 죄인의 모습으로 죽어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홍해를 갈라서 길을 내 주시고, 휘장을 갈라서 길을 내주신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0장 19절~20절
“19.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こういうわけで、兄弟たち。私たちはイエスの血によって大胆に聖所に入ることができます。
イエスはご自分の肉体という垂れ幕を通して、私たちのために、この新しい生ける道を開いてくださいました。

휘장은 곧 예수님의 육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그 동안 우리를 가로막고 계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 예수님이 바로 찢어진 휘장, 즉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18절
14.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実に、キリストこそ私たちの平和です。キリストは私たち二つのものを一つにし、ご自分の肉において、隔ての壁である敵意を打ち壊し、
様々な規定から成る戒めの律法を廃棄されました。こうしてキリストは、この二つをご自分において新しい一人の人に造り上げて平和を実現し、
二つのものを一つのからだとして、十字架によって神と和解させ、敵意を十字架によって滅ぼされました。
また、キリストは来て、遠くにいたあなたがたに平和を、また近くにいた人々にも平和を、福音として伝えられました。
このキリストを通して、私たち二つのものが、一つの御霊によって御父に近づくことができるのです。

예수님께서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 된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라는 이름의 담을, 주님의 육체로 헐어버리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를 화평하게 하시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3장 23절~24절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すべての人は罪を犯して、神の栄光を受けることができず、
神の恵みにより、キリスト・イエスによる贖(あがな)いを通して、価(あたい)なしに義と認められるからです。

여러분,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죄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목사님이나 종교 지도자라 하더라도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실 수 없습니다. 사람 손으로 만든 우상이 우리의 죄를 해결해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홍해 바다를 1센티도 가르지 못합니다. 그 두꺼운 휘장을 1센티도 찢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만 믿으면 됩니다. 예수님만 의지하면 됩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우리 앞에 길이 열렸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냥 앉아서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하고만 계시겠습니까.

홍해가 갈라졌을 때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모습을 보고 할렐루야. 감사합니다……라고 하고만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역시 그들은 추격해오는 애굽 군대들에 의해 처참만 모습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살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살 수 있었습니까. 그렇죠. 눈앞에 열린 길을 과감하게 걸어갔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추격해오는 이들이 없습니까. 아니요.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身を慎み、目を覚ましていなさい。あなたがたの敵である悪魔が、吼えたける獅子のように、だれかを食い尽くそうと探し回っています。

마귀 사탄들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는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친히 열어주신 그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행함인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同じように、信仰も行いが伴わないなら、それだけでは死んだものです。

야고보서 2장 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からだが霊を欠いては死んでいるのと同じように、信仰も行いを欠いては死んでいるのです。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자, 믿음이 있어요. 하나님을 믿었어요. 그 결과 홍해가 갈라졌어요. 휘장이 찢어졌어요. 이제 홍해를 건널 수 있습니다. 지성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건너지 않고 가만히 있게 되면 이는 애굽 군대한테 죽든 마귀 사탄에게 삼킴을 당하든, 아무리 믿음이 있어봤자 행함이 없는 믿음만 가지고 있다면, 이는 역시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それからイエスは弟子たちに言われた。「だれでもわたしについて来たいと思うなら、自分を捨て、自分の十字架を負って、わたしに従って来なさい。

이 말씀을 들으면 참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이 말씀을 보면 뭐예요? 내가 하고 싶은 것 하지 못하고, 십자가를 지고 죽으러 가라는 말씀으로 들리지 않습니까?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고 싶은 말씀은 과연 그것이었나요?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죽으려고 가는 것입니까? 아니에요. 살려고 가는 것입니다.

먼저, 자기를 부인하는 것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내 생각보다 하나님 생각을 우선시하는 것입니다. 나는 원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면 안 하는 것이고, 내가 원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자기 부인인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도 자기부인을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를 앞둔 예수님의 기도를 기억하십니까.

누가복음 22장 42절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父よ、みこころなら、この杯をわたしから取り去ってください。しかし、わたしの願いではなく、みこころがなりますように。」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십자가마저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되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기를 부인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렇다고 거창한 일들만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일요일 아침에 교회에 가기 싫어요. 성경을 읽기 싫어요. 기도하기 싫어요. 봉사하기 싫어요. 전도하기 싫어요. 내가 미워하는 이웃과 화해하기 싫어요.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 때 내가 원하는 것보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실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은, 이는 죽으러 가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꼭 고생을 해야지만 복을 받는다는 것도 아니요, 꼭 누구처럼 일본 군마현에 있는 시골까지 선교를 하러 가야지만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로마서 12장 6절~8절
“6.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私たちは、与えられた恵みにしたがって、異なる賜物を持っているので、それが預言であれば、その信仰に応じて預言し、
奉仕であれば奉仕し、教える人であれば教え、
勧めをする人であれば勧め、分け与える人は惜しまずに分け与え、指導する人は熱心に指導し、慈善を行う人は喜んでそれを行いなさい。

이처럼 저에게 맡겨진 은사는 따로 있고 여러분께 맡겨진 은사는 따로 있습니다. 이 모든 행함이 하나가 되어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 우리에게 맡기진 사명을 감당하는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위해서, 우리가 받은 은사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면서, 주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 앞에 활짝 열린 믿음의 길을, 우리 주님과 함께 힘차게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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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호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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