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 목사 설교

[설교동영상/본문] 제143회 안식일과 예배

홍성필 2021. 6. 29. 01:55
반응형
제143회 안식일과 예배
2018년 9월 2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 1절~3절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한국어 동영상


일본어 동영상

 

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한 달에 1,000원>
<물 한 그릇 선교후원>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KB 국민은행
079-21-0736-251
홍성필



성경소설 <요셉의 재회> 다운로드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안식일과 예배” 安息日と礼拝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에는 안식일에 대해서 두 번으로 나누어서 말씀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입니다.

교회에 어느 정도 다녀보시고 성경에 대한 지식도 갖게 되고 그러신 분들 중에는 간혹 의문을 갖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이 안식일 문제입니다. 정통 복음주의와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기독교 교회에서는 예배를 주일, 그러니까 일요일에 드립니다. 하지만 구약에서의 안식일은 언제냐 하면 토요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말씀을 지키는 우리도 예배를 토요일에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보다 더 하나님 말씀에 맞는 예배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신 분들이 어쩌면 계실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틈을 타서 일부 종교단체……자신들은 교회라고 하지만, 교회는 어디까지나 하나님 말씀, 성경 말씀을 올바로 따르는 곳이 교회이지, 그렇지 않은 곳은 자신들이 아무리 교회라고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종교단체라고 저는 생각해서 오늘도 이와 같은 이름을 쓰기로 합니다만, 일부 종교단체에서는 토요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복음주의 교회를 가리켜 이는 잘못되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을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자신들이야말로 성경을 지키는 곳이니 자기네들한테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교회에 다니면 구원을 못 받는데요. 여러분께서는 이런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본인이 아니더라도 만약에 누군가가 이 문제를 가지고 상담을 해왔어요. 그렇다면 여러분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확실한 답을 내놓으실 수 있으신가요? 아니면, 어? 그러고 보니 그러네……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이번에는 안식일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우선 안식일에 대한 오해를 풀고, 그리고 이 안식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먼저 오늘은 오해를 푸는 시간입니다.

안식일의 시작은 창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가지요.

오늘 말씀 창세기 2장 1절~3절까지를 보시겠습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こうして天と地とその万象が完成した。
神は第七日に、なさっていたわざを完成し、第七日に、なさっていたすべてのわざをやめられた。
神は第七日を祝福し、この日を聖なるものとされた。その日に神が、なさっていたすべての創造のわざをやめられたからである。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만물을 모두 창조하시고 마지막 7일째에 안식을 취하십니다. 안식을 취하다……그러니까 쉬셨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 안식일에 대한 규정은, 쉽게 말하자면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해서 대단히 엄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말씀 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우선 안식일에 대한 성경 내용을 먼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31장 13절~17절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
14.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15.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16.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17.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

「あなたはイスラエルの子らに告げよ。あなたがたは、必ずわたしの安息を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これは、代々にわたり、わたしとあなたがたとの間のしるしである。わたしが主であり、あなたがたを聖別する者であることを、あなたがたが知るためである。
あなたがたは、この安息を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これは、あなたがたにとって聖なるものだからである。これを汚す者は必ず殺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この安息中 に仕事をする者はだれでも、自分の民の間から断ち切られる。
六日間は仕事をする。しかし、七日目は主の聖なる全き安息である。安息日に仕事をする者は、だれでも必ず殺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
イスラエルの子らはこの安息を守り、永遠の契約として、代々にわたり、この安息を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
これは永遠に、わたしとイスラエルの子らとの間のしるしである。それは主が六日間で天と地を造り、七日目にやめて、休息したからである。」


출애굽기 35장 2절~3절
2.엿새 동안은 일하고 일곱째 날은 너희를 위한 거룩한 날이니 여호와께 엄숙한 안식일이라 누구든지 이 날에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
3.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

六日間は仕事をする。しかし、七日目は、あなたがたにとって主の聖なる全き安息である。この日に仕事をする者は、だれでも殺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
安息日には、あなたがたの住まいのどこであっても、火をたいてはならない。」

이 말씀을 들으면 여러분께서는 어떠세요? 아니, 무슨 하라는 일을 안 하면 벌을 내린다, 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뭐, 이렇다면 좀 그나마 이해가 갈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안식일? 아니, 그거 쉬는 거잖아요. 그런데 쉬라고 했는데 쉬지 않으면 어떻게 하래요? 예, 반드시 죽이라고 하십니다. 정말 엄하게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범하는 일을 엄히 금지하셨기 때문에, 아직도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종교단체에서는, 자신들이야말로 올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있고,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잘못되었다고 비판을 합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구약에서의 안식일은 분명 토요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안식일을 범하는 자는 죽이라고까지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다음 주부터는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우리더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을 한다면, 저는 이렇게 반박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여전히 속건제, 속죄제를 드리십니까. 소제나 요제를 드리십니까. 양이나 동물을 잡아서 불에 태워서 제사를 드리십니까. 그렇게 물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에서는 아직도 그와 같은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만, 예수님을 논하면서도 토요일에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곳에서 그런 제사를 드린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구약시대, 예수님께서 아직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는 가장 큰 명절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유월절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애굽에서 살면서 오랫동안 종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보내서 애굽을 탈출시키셨을 때 행하셨던 마지막 이적, 그 땅에 있는 모든 가족 중에서 장자들은 하나도 남김 없이 죽였으나, 문 인방과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놓은 집은 죽음의 사자가 들어가지 않고 건너갔기에 무사했다고 하는 절기입니다. 이 유월절이 구약에서는 가장 큰 명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어떻습니까.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에 규정된 공식절기를 보더라도 핵심은 모두 신약 절기입니다. 성탄절도 그렇고, 고난주간도 그렇습니다. 성령강림주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복음주의 교회에서 가장 큰 절기는 무엇입니까? 유월절이에요? 아닙니다. 바로 부활절입니다.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을 믿을 필요도 없고, 부활이 없다면 구원도 없고, 부활이 없다면 믿음도 없고, 부활이 없다면 죄사함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이 있나요? 예, 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을 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를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2절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ところで、キリストは死者の中からよみがえられたと宣べ伝えられているのに、どうして、あなたがたの中に、死者の復活はないと言う人たちがいるのですか。

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채찍을 맞게 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시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인하여 우리의 죄는 모두 해결되었습니다. 말로 해서 안 되니까 처참하게 십자가에 달리시는 모습을 사람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하셨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부활 또한 말로 해서 안 되니까 예수님께서 직접 부활을 해서 보여주셨습니다.

부활은 오로지 죄사함을 받은 자에게만 허락되는 것입니다. 죄인한테는 부활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철저한 죄인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활을 허락해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게 된 이유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안식일 다음 날인 일요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해서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부활을 갈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유일한 길은 구원이요, 구원은 오직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의지하는 길 밖에는 없다는 것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결박을 푸셨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1절~14절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さらに、祭司がみな、毎日立って礼拝の務めをなし、同じいけにえを繰り返し献げても、それらは決して罪を除き去ることができませんが、
キリストは、罪のために一つのいけにえを献げた後、永遠に神の右の座に着き、
あとは、敵がご自分の足台とされるのを待っておられます。
なぜなら、キリストは聖なるものとされる人々を、一つのささげ物によって永遠に完成されたからです。

이제 우리는 짐승들을 잡아서 하나님께 불완전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예수님께서 완벽한 제사들 드려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문제가 되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할례에 관한 논쟁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하느냐 안 받아도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로마서 2장 28절~29절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外見上のユダヤ人がユダヤ人ではなく、また、外見上のからだの割礼が割礼ではないからです。
かえって人目に隠れたユダヤ人がユダヤ人であり、文字ではなく、御霊による心の割礼こそ割礼だからです。その人への称賛は人からではなく、神から来ます。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할례도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위한 할례는 그 마음에 하면 족하다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3장 6절~7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アブラハムは神を信じた。それで、それが彼の義と認められた」とあるとおりです。
ですから、信仰によって生きる人々こそアブラハムの子である、と知りなさい。

인간적으로 본다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해요? 예, 아브라함의 자녀로 태어나야죠. 아무리 입양을 했다고 하더라도 유전자적으로 본다면 이는 완전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하시고 그의 자손에게도 복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축복은 아브라함의 자손들, 말하자면 이스라엘 민족이나 유대인들한테만 주어지는 축복인가요?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녀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모든 축복을 우리도 똑같이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이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입니까.

하지만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존 교회에서도 이스라엘 유대인들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우리는 여전히 이방인이라고 말하고 계신 분들도 있으니, 참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무슨 요한계시록을 보면 몇 년에 이스라엘에서 무슨 전쟁이 터시고 여기에 또 어떻게 되고 어떻게 되어서 중동에서 3차대전이 터지고……이러면서 자기가 무슨 선지자라도 되어서 대단한 예언이라도 하듯이, 저기 멀리 떨어진 이스라엘 걱정을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분들께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저 멀리 떨어진 이스라엘 걱정하실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 이웃 걱정이나 하세요……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장 8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しかし、聖霊があなたがたの上に臨むとき、あなたがたは力 を受けます。そして、エルサレム、ユダヤとサマリアの全土、さらに地の果てまで、わたしの証人となります。」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여기서 말씀하신 땅끝이라고 하는 것은 지구를 한 바퀴 삥 돌아서 예루살렘이 바로 땅끝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전도가 시급하다는 것입니다. 혹시 그런 말씀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왜 성경을 그렇게 멋대로 해석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존 교회에서 그렇게 마음대로 해석을 하니, 이른바 희한한 종교단체 같은 곳에서 그 틈을 타서 치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땅끝이 어디입니까. 여러분, 내 이웃, 우리 이웃을 돌아보십시오. 거기 안 믿는 이웃이 있나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 있나요? 복음을 전해야 할 이웃이 있나요? 바로 그곳, 복음을 전해야 할 바로 그 곳이 땅끝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결박을 모두 풀어주셨습니다. 완벽한 제사를 드려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레위기 11장에는 먹으면 안 된다고 했던 돼지고기도 먹어도 됩니다. 비늘이 없는 물고기는 먹지 말라고 하지만, 이제 제가 좋아하는 오징어도 먹어도 됩니다.

누가복음 23장 45절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太陽は光を失っていた。すると神殿の幕が真ん中から裂けた。

그 때까지는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던 휘장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우리의 죄를 모두 해결해주셨을 때, 그 두꺼웠던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이제 우리의 모든 죄가 해결되어서 하나님께로 나아갈 길이 열린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니야. 아직 우리는 안돼. 우리는 율법을 지켜야 돼……이렇게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약성경 히브리서를 봅니다.

히브리서 6장 4절~6절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一度光に照らされ、天からの賜物を味わい、聖霊にあずかる者となって、
神のすばらしいみことばと、来たるべき世の力を味わったうえで、
堕落してしまうなら、そういう人たちをもう一度悔い改めに立ち返らせることはできません。彼らは、自分で神の子をもう一度十字架 にかけて、さらしものにする者たちだからです。

여기서 빛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타락한 자들>이라는 뜻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면, 그럼 단순히 믿었다가 안 믿게 된 사람을 가리키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본문이 기록된 히브리서 자체가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였냐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신학자들의 의견에 의하면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적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유대인들 중에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온 성장배경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지켜왔던 율법도 따라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겠지요. 그래서 이와 같은 사람들을 훈계하는 내용이 많이 등장합니다.

따라서 히브리서 6장 6절에서의 “타락한 자들”이라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안 믿게 되었다기 보다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과거 율법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신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럼으로 인하여 우리의 죄는 모두 해결 되었어요. 그 동안 차고 있던 수갑을 풀고 교도소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교도관이 교도소 문을 활짝 열고, 자, 이제 너의 죄는 다 해결 되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너의 죄를 모두 해결해 주셨다. 너는 자유다……이렇게 말하는데, 아니야. 난 못 나가. 내 죄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어……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선한 사람이에요? 겸손한 사람이에요? 양심적인 사람이에요? 세상적인 시각으로는 그럴 수도 있으나, 성경적으로 그런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이 아무리 십자가에 달렸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거예요. 내가 율법을 지키고 내가 내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런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용서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이제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되요. 그러면 반드시 일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하나요? 다른 요일에 예배를 드리면 큰 일 나나요? 그리고 또 일주일에 몇 번 예배를 드려야 하나요?

정답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언제 드려도 상관 없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몇 번 드려도 상관 없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기를 힘쓰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율법을 따른다면, 그 외의 시간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자유롭습니다. 새벽기도, 수요예배, 철야예배, 찬양예배 등등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예배를 드려도 괜찮습니다. 한국에서 제가 섬기던 교회는 일요일만이 아니라 토요일에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다고 이상한 교회예요? 아닙니다. 그 이유는 뭐냐 하면, 여건상 도저히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기 힘든 분들을 위해서 드리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씀 드린 일부 종교단체에서 토요일에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그 부분만 가지고는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자기들은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면서, 자기들만 옳고,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우리더러 성경을 따르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것은, 이는 가당치도 않는, 잘못돼도 보통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욕되게 하는 행동인 것입니다.

여러분,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이유가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마가복음 3장과 누가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쳤다는 이유로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죽일 방도를 의논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단 이유는,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려는 것도 아니고, 율법을 지키려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위협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까지 백성들한테는 자기들의 말이 옳다. 내 말 대로 하면 구원을 받고, 내 말을 어기면 저주를 받는다, 뭐 이런 식으로 백성들에게 말하면서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해왔는데,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자신들더러 잘못했다고 지적을 하시니, 자기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백성들의 이목이 있는데, 자기들 자존심을 구겼다고 해서 사형을 시키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명분으로 내건 것이 바로 안식일을 범했다는 것,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했다는 것을 빌미 삼아서 백성들을 충동시켰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오해하고 잘못 적용하면 하물며 예수님까지도 죽이는 일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あなたがたは真理を知り、真理はあなたがたを自由にします。」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주신 자유 안에서 참된 안식일의 의미를 깨닫고, 주님을 마음껏 예배하고, 주님을 마음껏 찬양하고, 주님께 마음껏 감사하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144회 안식이라는 선물 →

← 제142회 하나님 나라의 회복

 
이카호중앙교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