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잘 되어야 합니다”恵ま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얼마 전 어떤 한 기독교 신문에 보니까 한국의 어떤 목사님께서 인터넷에 흥미로운 글을 올렸다고 하는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그 제목이
참 재미있습니다.
“목사가 에쿠스를 타도 되는가”
입니다. 참고로 에쿠스는 한국에서 가장 비싼 차로 알려져 있습니다. 외제차는 아닙니다만 최고급 승용차지요. 인터넷에서 가격을 보니까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고로 비싼 것이 한국 돈으로 1억 5천 정도 하는 것 같습니다.
에쿠스……라고 하면 우리처럼 외국에 살고 있는 분들한테는 좀 낯설지 모르겠습니다만, 뭐, 알기 쉽게 해보죠.
“목사가 벤츠를 타도 되는가”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앞서 말씀 드린 그 기사, 어떤 목사님께서 그와 같은 글의 제목을 인터넷에 올렸다고 하는 신문기사에서, 본문을 읽기 전에 이미 그
제목 만을 보고도 그 동안 제 안에 있었던 상당히 많은 의문이 풀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전에 제가 한국에서 교회에 다닐 때, 그 교회 목사님이 하신 몇 가지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벌써 그게 한 20년 전인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그 때 그 목사님이 뭐라고 하셨냐 하면, 요즘 기독교계에 문제가 많이 일어나는데, 그게 충분히 그럴 만 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거룩하게 구별된 것으로 하라고 했는데, 자기가 이렇게 보면, 아이들 셋이 있는
집안에서는, 제일 공부 잘하는 아이는 의대 보내고, 그 다음에는 법대를 보내고, 그리고 나중에 제일 공부 못 하는 애를 신학교
보내겠다고 기도해달라고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계에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느냐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무슨 박사학위 논문 표절이다 설교 표절이다 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정말 낯뜨거운 기사들도 많이 뉴스를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저기에 메일을 보내기 위해서 한국 교회 홈페이지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요, 여러 가지 뉴스 기사도 함께 보입니다. 그럼 정말
참 끔찍하고 민망한 사건들이 교회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돈문제입니다. 목회자들의 금전감각에 대해서 저도 예전부터 의문을 가져왔습니다. 정말 교회 돈을 무슨 자기
주머니돈 쓰듯이 쓰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건 단순히 제 생각이 아니라 그런 내용이 신문에 실립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 목회자라면
조금 검소하고 다른 사람들을 살피고 그러면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왜 그렇게 돈을 많이 쓰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이 실리는 목사님들을 보면 처음에는 다들 유명하신 분들이요, 큰 교회 목사님이라고 소문났던 분들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런저런 일이 터지니까 그런 안 좋은 말들이 돌기 시작하고 일부 언론들이 그런 보도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렇다면 반대로 목회자들은 그럼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도 예전에 한국에서 섬기던 그 교회 목사님께서 해주신 말씀이신데, 전도사 시절 전쟁이 끝나고 당시 서울 외곽 쪽에 천막교회를
차려놓고 목회를 시작했는데, 그 주변에는 정말 참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전도를 하고 있는데,
전도가 잘 안 되더라는 거예요. 예수를 믿고 구원 받으라고 해봤는데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어떤 가난한 동네 아주머니를 전도하면서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 예수를 안 믿으면 지옥에 갑니다” 라고 하니까, 그
아주머니가 뭐라고 하냐 하면 “지옥에 간다고? 웃기는 소리. 이렇게 가난에 시달리는 지금이 지옥이다” 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도무지
전도가 안 되더래요.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어떤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대요. 그래서 아까 그 아주머니 집에 찾아가서 이렇게 말씀을 전했다고 해요.
“아주머니, 예수를 믿고 교회에 가면 팔자가 바뀝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이 아주머니가 “뭐? 팔자가 바뀐다고?” 해서 자기를 따라 오더래요. 그래서 그 아주머니랑 같이 그 천막교회에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가 교회에 도착하고 천막 안으로 들어가니까, 거기가 어때요? 천막 안에 의자는 없고, 강대상 쪽에 보니까
사과상자 하나 엎어놓은 것이 있고, 십자가는 나무 두 개를 새끼줄로 묶어놓은 것을 매달아놓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이 아주머니가 깔깔대고 웃더래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이,
“지 팔자나 내 팔자나”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뭐? 예수를 믿으면 팔자가 바뀌어?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예수를 안 믿는 내
팔자나, 예수를 믿고 목회를 한다는 니 팔자나 그게 그거 아니야? 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본 일본 코미디가 생각났습니다. 일본에는 이른바 파워스팟이라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런 거죠.
어디어디에 가면 무슨 신사 같은 게 있는데, 거기 가면 무슨 기를 받는다고 하는 장소를 이른바 ‘파워 스팟’이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뭐
다 미신지요.
그런데 이 코미디에 보니까, 가운데에 큰 바위가 있어요. 그리고 그 옆에 경비원이 서 있어서,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 돌을
만지려고 하면 만지지 못하도록 막는 것입니다.
마침 그 때 한 청년이 와요. 이 청년은 소문을 듣고 그 바위한테서 좋은 기운을 받아서 자신의 운명을 고쳐보려고 멀리서부터 찾아
왔다는 것입니다. 이 청년이 경비원한테 질문을 해요. 와, 사람이 정말 많네요.라고 하면서, 자기는 오늘 처음 왔는데 여기는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냐고 묻습니다. 그러니까 경비원이 하는 말이, “그렇습니다. 이 바위는 근처에만 가더라도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제가 여기서 5년 동안 아르바이트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왔습니다. 그래서 만지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여기 서서 만지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청년이 이 말을 듣고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경비원을 쳐다봅니다. “5년 동안 근무를 하셨어요?” 그러니까 “예, 5년 동안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 종일 이 바위 옆에 서서 근무했습니다.”
“저……실례지만, 아르바이트로 계속이요?”
“예, 그렇습니다. 5년 동안 아르바이트로 근무했습니다.
“계속 이 바위 옆에 서서요?”
“예, 바로 이 자리에서 쭉 근무했었지요.”
“저……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예, 마흔 한 살입니다.”
“그럼 마흔 할 살인데, 지금까지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계시다는 건가요? 여기가 파워스팟인데요?
“예, 그렇습니다. 5년 동안 바로 이 자리에서 근무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 바위 곁에 잠깐 와서 기를 받기만 해도 팔자가 바뀐다고, 운명이 바뀐다고 해서 몰려들고
있는데, 이 사람은 하루 종일 그 바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5년이나 계속 서 있었지만, 그 나이가 되도록 정규직은 고사하고
아르바이트 신세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입니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웃자고 만든 코미디입니다만, 제가 이 코미디를 보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시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악 중에서 건져내시고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주시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십자가에만 달리셨나요? 그것으로 끝이었어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천국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어디 그 뿐인가요?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고쳐달라고 오는 사람들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로
나아가면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의 눈이 열립니다. 못 걸었던 사람들이 일어납니다. 각종 질병에 걸렸던 사람들이 회복됩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죽은 사람도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좀 이상하게 들리실지는 모릅니다만,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서 오셨다면 그냥 십자가에 달리시면 되지. 뭣하러
병을 고쳐주셨던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하셨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 17절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この時から、イエスは宣教を開始して、言われた。「悔い改めなさい。天の御国が近づいたから。」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가시는 곳, 예수님께서 계신
곳이 바로 천국이었던 것입니다. 좀 이상한 말이겠습니다만, 내가 죽은 다음에 하늘나라에 갔는데, 거기가 천국이래요. 그런데 예수님이
안 계셔요. 그럼 그게 천국이에요? 아닙니다.
천국이라고 하는 곳은 예수님이 계신 곳이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7장 20절~21절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さて、神の国はいつ来るのか、とパリサイ人たちに尋ねられたとき、イエスは答えて言われた。「神の国は、人の目で認められるようにして来
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そら、ここにある。』とか、『あそこにある。』とか言えるよう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いいですか。神の国は、あなたがたのただ中にあるのです。」
그렇기 때문에 이 교회에 예수님께서 임하시면 그 곳이 천국인 것이요, 우리 마음 안에 예수님께서 임하시면 우리 안에 천국이 있는
것이요, 하나님 나라가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11장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이사야 11장 6절~8절,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狼は子羊とともに宿り、ひょうは子やぎとともに伏し、子牛、若獅子、肥えた家畜が共にいて、小さい子どもがこれを追っていく。雌牛
と熊とは共に草をはみ、その子らは共に伏し、獅子も牛のようにわらを食う。乳飲み子はコブラの穴の上で戯れ、乳離れした子はまむしの子に手を伸べる。
모든 질병이 사라지고, 모든 공포가 사라지고, 모든 문제가 사라지고, 모든 다툼이 사라지고, 기쁨과 감사와 찬송으로 넘치는 곳이 바로
천국,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임하시면 이와 같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건 예수 믿은 사람들 중에서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거나, 선택 받은 일부에게만 일어나는 기적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믿는 우리 모두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받아야 하는 놀라운 축복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점을 말씀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천국이 임하게 된다면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질병들도 모두 사라진다는 것을 말씀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 질병뿐인가요? 아닙니다.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문제 중에 가난도 있습니다.
금전적인 문제가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내가 이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 중
그래도 제일 믿음이 좋을 거라고 생각을 해서 목사님을 찾아가봤는데, 그 목사님은 월세집 반지하 단칸방에서, 빚쟁이들한테 쫓기면서 살고
있고, 밥값이 없어서 하루에 한 끼 밖에 못 먹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예수 믿고 싶어 집니까?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그럼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내가 몸이 안 좋아요. 그래서 근처에 사는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의사 선생님이 알고 보니까 온갖 질병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그 의사한테 치료를 맡기고 싶어지겠습니까? 누가
그런 사람한테 치료를 맡기겠습니까.
오해하지 마십시오. 교회가 무슨 병 고치기 위해서 다니는 곳이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슨 부자 되기 위해서 믿는 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병이 나으면 교회에 다니지 말아야죠. 부자가 되었다면 더 이상 예수님을 믿지
말아야죠.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마음 안에 예수님을 모셔드린다는 것이고, 우리 마음 안에 예수님이
오시게 되면 천국이 임하게 된다는 것이고, 우리 마음 안에 천국이 임하게 된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에서는 목사가 돈이 많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대형교회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서울로 친다면
목사님은 강남에 살면 안 되나요? 그러면 강남이 아닌 동작구나 용산 정도면 괜찮아요? 그것도 사치인가요? 그렇다면 장로님이나 집사님은
괜찮은가요? 장로님이나 집사님은 돈이 많아도 되고 목사님은 돈이 많으면 안 되나요? 그것은 자신들이 낸 헌금이기 때문에 그런가요?
예전에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낸 헌금으로 생활을 하기 때문에 항상 그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 자녀들을 유학 보내고 그런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만, 제가 앞서 언급한 <목사는 에쿠스를
타도 되는가>라는 제목을 보니까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목사님이 돈이 많아도 돈이 많다는 것이 알려지면 안 됩니다. 돈이 많다는 사실을 숨겨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요?
자신의 생활에 여유가 있으니까 자녀들에게도 좀 교육에 투자도 하고 싶고, 차도 사주고 싶고 하지만 교인들의 눈치가 보여요. 그래서
아예 눈에 안 띄게 유학을 보내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글에서 재미있는 단어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바로 <예수 코스프레>라는 말입니다. 코스프레라고 하는 것은 코스튬플레이를 줄인
말로서, 무슨 만화 주인공이나 어떤 사람을 흉내내서 옷을 입거나 변장을 하면서 즐기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예수 코스프레……라고
하는 말은 예수님 잘 믿는 척을 한다는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가 됩니다.
사실 예수 코스프레……라는 말보다는 저는 <크리스천 코스프레>라고 하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합니다. 무슨 믿음이 좋은 척,
신실한 척을 하면서 이를 과시하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또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나 교회 성도들이 꼭 고급차를 타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좋은 집에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에 보면 자신의 형편은 전혀 아닌데, 빚내고 할부로 해서 억지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고급차를 타거나 좋은 집에 사는 사람들도
실제로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욱 심각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믿음이 좋은 척, 신실한 척을 하면서 자신의
믿음을 과시하고 자신의 청빈함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했던 사람들이 성경에서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이 좋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기도 시간만 되면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 가서 큰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금식할 때에는 불쌍한 표정, 괴로운 표정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신실한 크리스천 코스프레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교회나 목사님들이 가난해야 하나요? 그래야 믿음이 좋은 건가요? 그건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교회나 목회자분들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유명한 강사님이 있는데, 그 분을
강사로 모시고 싶어요. 그렇다고 아무 교회에서나 모실 수가 있어요? 아니에요, 못 모십시다. 일단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갑니까.
강사료도 그렇습니다만, 교통비와 숙식비만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하지만 목회자에게 경제력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어느 날 전화가 옵니다. 멀리서 자신을 강사로 모시고 싶어한대요. 그런데 그 교회는
경제적으로 열악해서 사례비를 못 드릴 것 같다는 거예요. 그럴 경우에 목사님이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어떻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 정도 여유는 있습니다. 사례비나 교통비 숙식비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가겠습니다……이럴 수 있지 않겠어요?
교회도 마찬가지죠. 교회 재정이 불안불안한데 어떻게 주님의 일을 마음껏 하면서 선교사도 파송하고 교회도 짓고 그럴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 마태복음 10장 10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旅行用の袋も、二枚目の下着も、くつも、杖も持たずに行きなさい。働く者が食べ物を与えられるのは当然だからです。
목회자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사양한다는 것은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교만입니다. 그리고 이는 교회나 목회자만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목회자이건 평신도이건 예수님을 믿는 성도님들은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잘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잘 되고 강건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잘 되어야지 남들도 우리를 보고 예수를 믿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잘 안 돼보세요. 누가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주님 안에서 모든 질병이 치료받고, 주님 안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게 되는 축복이 넘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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