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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목사 설교

[설교동영상/본문] 제300회 성장하는 믿음

by 홍 성필 2021.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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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회 성장하는 믿음
2021년 8월 15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6장 15절~16절
“15.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6章15節~16節
“15. では、どうなのでしょう。私たちは律法の下にではなく、恵みの下にあるのだから、罪を犯そう、となるのでしょうか。決して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
16.あなたがたは知らないのですか。あなたがたが自分自身を奴隷として献げて服従すれば、その服従する相手の奴隷となるのです。つまり、罪の奴隷となって死に至り、あるいは従順の奴隷となって義に至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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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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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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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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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46번째 시간으로서 “성장하는 믿음” 成長する信仰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먼저 15절을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6장 15절
“15.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では、どうなのでしょう。私たちは律法の下にではなく、恵みの下にあるのだから、罪を犯そう、となるのでしょうか。決して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

율법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 불완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율법은 완전하지만 이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구원에 이를 힘이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로마서 3장 23절~24절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すべての人は罪を犯して、神の栄光を受けることができず、
神の恵みにより、キリスト・イエスによる贖いを通して、価なしに義と認められるからです。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영광, 구원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예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예수님의 이름,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을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기만 하면 값 없이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이제 우리는 값 없이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값 없이 율법 아래에서 은혜 아래로 옮겨졌습니다. 이는 우리의 힘이나 우리의 노력이 아니요 전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이루어진 놀라운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은혜 아래에 있는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하겠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은혜 아래에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까.

오늘 말씀 중에서 16절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6장 16절
“16.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6.あなたがたは知らないのですか。あなたがたが自分自身を奴隷として献げて服従すれば、その服従する相手の奴隷となるのです。つまり、罪の奴隷となって死に至り、あるいは従順の奴隷となって義に至ります。


우리가 누군가의 말을 듣고 따르게 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종, 그 사람의 부하가 되는 것이지요. 내가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사람을 상사로 둔 부하직원이 되는 것이고, 그리고 그 회사나 단체에 속한 일원이 되는 것이지요.

내가 A라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면 당연히 A 회사의 직장 상사나 A 회사의 사장님의 지시나 방침을 따라야 하는데, 오히려 자기 회사 상사 말은 듣지 않고 다른 회사 지시를 따르고 있어요? 이렇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 집니다.

A 회사 직원이라면 당연히 A 회사 상사나 회사 방침을 따라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일반 사람이나 선지자도 아닌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감당해 주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해주셨기에 우리가 값 없이 구원을 얻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이제 죄에 순종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께 순종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이와 같은 말씀이 적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는 은혜 아래 있다고 하면서, 주님 안에 있다고 하면서, 한 쪽 다리는 여전히 죄에 담그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한 마디로 ‘죄인’이라고 하면 여러분께서는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계십니까. 나쁜 사람? 예, 뭐, 죄를 짓는 사람이니까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면 그 외에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까.

혹시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 없으십니까. 죄인. 범인, 범죄자……라고 하면 왠지 어디 싸우다가 큰 상처라도 난 적이 있다거나, 아니면 인상이 대단히 험악하게 생긴 그런 사람을 떠올리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일본 어느 방송에서 보니까 교도소에서 근무했던 교도관이 나와서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은 교도관으로 근무할 때 주로 흉악범, 특히 살인을 저질러서 사형판결을 받은 사형수를 담당 했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사형수들을 보면 정말 무섭게 생겼다거나 하는 사람을 떠올리기 십상인데, 사실 실제로 보면, 정말 저 사람이 그렇게 무서운 범죄를 저질렀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평범하게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어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신문 기사를 읽었는데, 이 사람 주변에서 몇 명이 사망했냐 하면 무려 12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12명을 모두 살해한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 적어도 8명은 자신이 살해했다고 인정을 했습니다.

그와 같은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당연히 사형판결이 내려졌지요. 그리고 지난 달 7월 21일자로 그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정말 우리가 생각하기에 얼굴도 험악하게 생기고 힘도 센 젊은 남자냐 하면, 아니에요. 2021년 8월 현재 74살 먹은 왜소한 할머니입니다. 그러면 왜 그 많은 사람들을 살해했냐 하면, 결국 목적은 돈이었습니다.


돈 많은 남자와 결혼을 하거나 사귀거나 하다가 그 사람들을 살해하고 재산을 빼앗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10년 동안 빼앗은 돈만 따져봐도 대략 10억엔 정도가 되었다고 하니 참 놀랍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합니다.

그 사람은 그 많은 돈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체포되었을 당시 그 할머니의 은행 통장은 거의 비어 있었다고 합니다. 주식이나 선물거래, 부동산 투자, 하다못해 다단계 판매까지 해봤지만 결국 돈을 다 날려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한 마디로 ‘죄인’이라고 하면 무서운 사람이나 힘이 센 사람이라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합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 그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자신이 죄를 지음으로 인해서 자신의 생활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하나님께 순종하기 보다는 죄에 순종하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 그리고 그와 같은 성경 말씀, 하나님 말씀을 몰랐기 때문에 죄를 저지르고 말았던 불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잠언 1장 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主を恐れることは知識の初め。愚か者は知恵と訓戒を蔑(さげす)む。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식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모르고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합니다. 그런 사람을 성경은 ‘미련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미련한 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의지합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6장 52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そのとき、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剣をもとに収めなさい。剣を取る者はみな剣で滅びます。

이는 예수님께서 제사장들이 보낸 사람들에게 잡혀가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칼을 빼어서 저항했을 때에 하셨던 말씀입니다만, 여기서 ‘칼’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힘, 자신의 능력입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이 많습니까. 사회적 지위가 높습니까. 공부를 많이 해서 학위를 많이 받았습니까. 뛰어난 기술이 있습니까.

아니,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을 가지고 축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돈이 있어야 주님도 섬기고 교회도 섬기고 이웃도 섬기고 그럴 것 아닙니까. 물론 돈이 꼭 있어야지만 주님이나 교회나 이웃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로 섬길 수가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 인생에 있어서 돈은 필요하지요.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또는 열심히 일을 해서 어려운 시험에 합격도 하고, 회사나 조직에서 큰 책임을 맡는 위치까지 올라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돈을 얻기 위해서 또는 출세하기 위해서 죄를 짓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약에 돈을 얻기 위해서 또는 출세를 위해서 죄를 지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왜 죄를 지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 죄를 짓는 한이 있더라도 돈을 모으고 출세를 할 수 있다면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얼마나 미련한 일입니까.

그러나 이와 같은 미련한 일들이 지금도 이 세상에서는 여기저기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의 지식의 근본은 뭐였지요?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잠시 화제를 바꾸어 볼까요?

어떤 사람이 막 큰 목소리로 기도를 합니다. 기도원 같은데 가시면 뭐 그런 경우 있잖아요. 내가 꼭 들으려고 듣는 게 아니라, 하도 큰 소리로 기도를 하니까 들려와서 본의 아니게 남의 기도를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 그런데 그 사람의 기도를 보니까, 이건 뭐 한 두 번 해본 기도 솜씨가 아니에요. 기도가 그냥 막힘 없이 줄줄줄줄 나옵니다. 그런데 그 기도 내용을 들어보니까, 아~주님~제게 집을 주시옵소서, 돈을 주시옵소서, 차를 주시옵소서, 재산을 주시옵소서……하면서 이것을 주시옵소서, 저것을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를 계속합니다. 그리고 뭐 틈틈이 방언인지 아닌지 모르는 기도까지 막 해요.

보통 이런 식의 기도를 하시는 분들 보면 신앙 경력이 1~2년은 아니겠지요. 교회에도 오랫동안 다니셨을 것이고, 아마도 받으신 직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기도,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좋은 기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여기서 오해를 하시면 안 되는 게 있는데, 주님께 이것을 달라 저것을 해달라 하는 기도가 나쁘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어요.

요한복음 14장 14절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あなたがたが、わたしの名によって何かをわたしに求めるなら、わたしがそれをしてあげます。

요한복음 16장 24절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今まで、あなたがたは、わたしの名によって何も求めたことがありません。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受けます。あなたがたの喜びが満ちあふれ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

이처럼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자,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한 번 우리 함께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우리가 뭔가 필요한 게 있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무언가를 사달라고 합니다. 부모님한테 뭘 사달라고 한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전제조건을 달아보겠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하나는, 부모님은 재산이 넉넉하다는 점, 또 하나는 부모님이 그 자녀들을 많이 사랑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자녀가 부모에게 뭘 사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 아이는 눈에 보이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이것을 사달라 저것을 사달라 합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자기가 갖고 싶어서 사달라고 해요. 안 사주면 큰일 납니다. 돈이 많은데 왜 안 사 주냐고 온갖 떼를 쓰고 울고 불며 사달라고 난리를 피워요.

그런데 다른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구해야 할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왜 그것이 필요한지를 아버지 어머니에게 설명을 합니다. 이것은 부모님을 위해서, 우리 가족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이것이 있으면 이러이러하게 사용하고자 합니다. 이런 식으로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부모님이 어느 쪽 요구를 들어주겠습니까. 물론 어린 아이, 그야말로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아이라면 정말 그야말로 보이는 대로 과자도 사달라 장난감도 사달라 하고 떼를 쓸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때로는 부모님도 못 이기는 척하고 사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이도 이제 스무 살을 넘어서 성년이 됐는데도 아직도 눈에 보이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이걸 달라 저걸 사달라, 그런 식으로 부모님한테 요구를 한다면, 아무리 부모님이 돈이 많다고 해도 그렇지, 그것을 다 사주겠습니까? 아니에요. 안 사줍니다. 그것은 자기 자식이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요구를 다 들어주는 것이 오히려 자녀에게 좋지 않기 때문에 들어주지 않는 것이지요.


살다 보면 돈도 필요하고 차도 필요하고 집도 필요하고 땅도 필요하지요. 재산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하지만, 그걸 달라고 주님께 기도를 드렸을 때, “그게 지금 너한테 왜 필요한데?” 라고 물으시면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아니, 주님, 제가 지금 돈 들어가야 할 곳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잖아요. 집도 오래되어서 이사도 해야 되고, 차도 지금 낡아서 굴러가는 것이 기적이에요. 언제까지 돈 걱정하면서 살게 하실 거예요. 돈도 좀 주시고 집도 재산도 좀 주세요!

자, 입장 바꿔 생각해보세요. 여러분께서 하나님이시면 이런 기도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저 같으면 아마 이러지 않을까 합니다.

“얘야, 너 지금 나한테 맡겨 놓은 돈 있니?”

그러지 않겠습니까. 무슨 이유도 없어요. 막무가내예요. 이것 달라 저것 달라 하면 그 기도가 어떻게 응답을 받겠습니까.

이와 같은 기도는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얼마나 높은 직분도 받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는 어디로 보나 아직 걸음마 단계의 신앙에 불과합니다. 아직 젖꼭지를 물고 아기턱받이를 하고 있는 단계의 믿음인 것입니다.

초신자일 때는 괜찮아요. 생각해보세요. 어린 아이가 이것저것 사달라고 하는 게 큰 잘못입니까. 아니에요. 어렸을 때는 괜찮아요. 오히려 그 모습이 귀여울 수도 있겠지요.

처음으로 교회에 다니는 계기가 무엇입니까. 성경의 삼위일체에 대해서 공부하기 위해서 나와요? 조직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교회에 나옵니까. 글쎄요. 그런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반적으로 보면 어떠세요?

무슨 가난해지고 싶어서 교회 나오시는 분 계세요? 병에 걸리고 싶어서 교회 나오시는 분 계세요? 문제가 생겼으면 하는 생각에 교회에 나오시는 분 계세요?

아니에요. 우리가 생각하는 축복이 별것입니까. 다 부자 되고 싶어서, 치료받고 싶어서, 문제 해결 받고 싶어서 나오기 시작하는 분들도 많으시잖아요.

그것만이 아니라,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 또는 뭐 젊은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남친 여친을 만들기 위해서, 또는 뭐 결혼상대를 찾기 위해서 나오기 시작하는 분들도 계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래 목적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것이 처음에 교회에 나오는 계기가 될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무슨 죄를 지으려는 것도 아닌데, 괜찮아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우리의 신앙이 그대로라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났는데, 기도해서 응답 받고 돈이 잘 벌리면 신앙생활은 나 몰라라 하고 돈만 벌어요. 성경은 히브리서나 갈라디아서가 구약인지 신약인지도 모른 채, 여전히 몇 년째 남친 여친, 결혼 상대만 찾고 있어요.

이와 같은 신앙은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그야말로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 없는 신앙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12절~14절
“12.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あなたがたは、年数からすれば教師になっ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にもかかわらず、神が告げたことばの初歩を、もう一度だれかに教えてもらう必要があります。あなたがたは固い食物ではなく、乳が必要になっています。
乳を飲んでいる者はみな、義の教えに通じてはいません。幼子なのです。
固い食物は、善と悪を見分ける感覚を経験によって訓練された大人のものです。

지금까지 주님이 얼마나 보살펴 주셨고 인도해 주셨는데, 이제 네가 영적으로 어른이 되어서 감당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도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분간 하지도 못하면서, 이거 사줘 저거 사줘, 그러고 있다면 주님께서는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고린도전서 3장 1절~3절
“1.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兄弟たち。私はあなたがたに、御霊に属する人に対するようには語ることができずに、肉に属する人、キリストにある幼子に対するように語りました。
私はあなたがたには乳を飲ませ、固い食物を与えませんでした。あなたがたには、まだ無理だったからです。実は、今でもまだ無理なのです。
あなたがたは、まだ肉の人だからです。あなたがたの間にはねたみや争いがあるのですから、あなたがたは肉の人であり、ただの人として歩んでいることにならないでしょうか。

갓난 아기 때는 밥을 먹지 못합니다. 밥을 먹으면 소화를 못 시켜요. 그래서 젖을 먹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조금씩 커감에 따라서, 네 발로 기어 다니다가도 두 발로 서서 걷기 시작합니다. 점차 근육이 생겨가면서, 처음에는 가벼운 것만 들다가 이제 조금씩 무거운 것도 들 수 있게 됩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작을 때에는 조금만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감당할 수가 없어요. 금새 넘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초신자가 기도를 할 줄 알아요? 무엇을 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것을 달라 저것을 달라 기도를 하지요.

하지만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면 어떻게 됩니까. 이제 성경 말씀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크고 작은 시련들을 이겨내면서 믿음의 근육이 성장해 감에 따라 진정한 신앙을 갖게 됩니다.

로마서 5장 3절~4절
“3.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それだけではなく、苦難さえも喜んでいます。それは、苦難が忍耐を生み出し、
忍耐が練られた品性を生み出し、練られた品性が希望を生み出すと、私たちは知っているからです。

이렇게 되면 이제 내가 믿음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구해야 할지를 알게 되고, 믿음이 작을 때에는 환난이 오면 좌절하기 바빴는데, 이제 믿음의 근육이 성장하니까 오히려 환난이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어서 소망을 이루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편이 무엇입니까. 시편 23편 아니겠습니까. 시편 23편이 어떻게 시작해요.


시편 23편 1절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主は私の羊飼い。 私は乏しいことがありません。

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편 23편 1절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主は私の羊飼い。 私は乏しいことがありません。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시편 23편 1절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主は私の羊飼い。 私は乏しいことがありません。

이 시는 다윗이 지은 시인데, 이는 다윗이 왕위에 올라서 객관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을 때 지은 시가 아니에요. 오히려 사울왕으로부터 쫓기고 있을 때 지은 시입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당시 부족한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동굴에서 숨어 살면서, 죽음의 손길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니까 낮이나 밤이나 위태로움 속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다윗이 뭐라고 고백합니까. 그렇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무슨 뜻입니까. 사실 나한테 부족한 것이 많지만, 인간승리, 정신력으로 버티자는 거예요? 아닙니다. 내게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러나 누가 목자이시니요? 그렇습니다. 여호와가 내 목자가 되어 주신다면, 여호와가 내 목자가 되어 주시기 때문에 나에게 부족함이 없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에 몇 년 다니셨다면 이 말씀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런데 사람들은 뭐라고 해요? 그렇습니다. 이것도 부족하다. 저것도 부족하다. 이러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 이 나이에 입에는 장난감 젖꼭지를 물고 턱받이를 하고 우유병을 들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얼마나 웃긴 모습이겠습니까.

하지만 믿음이라는 거울에 우리 모습을 비쳐본다면, 어쩌면 그 거울 속에 비친 우리는 그와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내 힘대로 하려는 것은 이는 악한 것이라기보다는 미련한 것입니다. 죄를 짓게 되고 결국 죄의 종이 되고 말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의 숙적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골리앗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는 키가 2미터 80이 넘는, 거의 3미터에 육박할 정도로 큰 용사였습니다. 반면에 당시 다윗은 아직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전쟁에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쟁에 나간 형들한테 도시락을 가져다 주러 갔었는데, 거기서 골리앗 장군을 보게 된 것입니다.

골리앗은 큰 소리로 하나님을 모욕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면서, 누구든지 1대1로 붙자고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이 때 어린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서게 됩니다. 인간적으로 본다면 승산은 1%도 아니에요. 0%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현역 군인들도 감히 나가지 못하는데, 아직 전쟁터에 나갈 자격도 안 되는 어린 애가,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골리앗 장군과 1대1로 싸운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전투가 시작하면 1분도 지나지 않아 골리앗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 당하는 다윗의 모습을 누구나가 상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육체적인 나이는 미성년이었지만 영적인 나이는 이스라엘의 그 누고보다도 어른이었습니다.


소년 다윗은 골리앗 장군을 향해 말합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47절
“45.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ダビデはペリシテ人に言った。「おまえは、剣と槍と投げ槍を持って私に向かって来るが、私は、おまえがそしったイスラエルの戦陣の神、万軍の主の御名によって、おまえに立ち向かう。
今日、主はおまえを私の手に渡される。私はおまえを殺しておまえの頭を胴体から離し、今日、ペリシテ人の軍勢の屍を、空の鳥、地の獣に与えてやる。すべての国は、イスラエルに神がおられることを知るだろう。
ここに集まっているすべての者も、剣や槍がなくても、主が救いをもたらすことを知るだろう。この戦いは主の戦いだ。主は、おまえたちをわれわれの手に渡される。」


소년 다윗은 말합니다. 너는 지금 무시무시한 무기를 가지고 나한테 오지만,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너한테 간다. 너는 오늘 죽었어. 오늘이 너 제삿날……임종 예배 드리는 날이야!

그러면서 겁도 없이 당당하게 골리앗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와 같은 그야말로 어른 중의 어른, 용사 중의 용사와도 같은 믿음을 가졌는데 하나님이 어찌 구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제 전투가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사무엘상 17장 48절~49절
“48.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そのとき、そのペリシテ人はダビデの方に近づき始めた。ダビデは、すばやく戦場を走って行き、ペリシテ人に立ち向かった。
ダビデは手を袋の中に入れて、石を一つ取り、石投げでそれを放って、ペリシテ人の額を撃った。石は額に食い込み、彼はうつぶせに地面に倒れた。

많은 사람들의 예상이 하나는 맞고 하나는 빗나갔습니다. 맞은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본문 기록에 의한다면 아마도 승부는 1분도 안 되어서 끝났습니다.

그렇다면 빗나간 것은요? 그것은 소년 다윗이 쓰러질 줄 알았는데, 반대로 숙적 골리앗 장군이 쓰러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시편 23편을 보면 5절에서 다윗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시편 23편 5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私の敵をよそに あなたは私の前に食卓を整え 頭に香油を注いでくださいます。 私の杯は あふれています。

다윗은 지금 내 잔이 텅텅 비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내 잔을 채워 주셔서 지금 내 잔이 넘친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없는 것에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 감사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으면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없는 것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러나 있는 것을 찾아보십시오. 우리에게는 우리가 가진 이 귀한 몸도 주셨습니다. 시간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생명도 주셨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私を強くしてくださる方によって、私はどんなことでもできるのです。


우리는 더 이상 죄에 순종하는 죄인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세상의 힘, 자신의 힘만을 의지하는 어리석고 미련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의지하는, 은혜 아래에 있는 자로서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법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아래에 있는 자로서, 우리에게 없는 것, 할 수 없는 것을 찾아서 불평 불만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것,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넘치는 은혜 가운데에서 놀랍게 성장하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순종하는 종으로 거듭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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